[곽흥렬 칼럼] 삶의 모순

곽흥렬

다달이 갖는 문학동인 모임 자리에서였다. 왁자하니 세상살이의 한담들이 오가다, 무슨 말끝에 어느 분이 이런 이야기를 꺼낸다. 누구라도 다들 한두 번씩은 고민에 빠져 보았음 직한 경험담이었기에 귀가 쫑긋해졌다.

 

사연인즉슨, 이제껏 골프장 출입을 하기 전에는 그런 곳에 들락거리는 이들을 두고 팔자 좋은 사람들이라며 이죽거렸는데, 막상 자신이 골프에 맛을 들이고 보니 생각이 백팔십도로 바뀌더라는 고백이었다. 드넓게 펼쳐진 푸르른 잔디밭에서 싱그러운 공기 마시며, 반지르르 윤이 흐르는 백구白球의 경쾌한 파열음과 함께 세상잡사로 쌓인 스트레스를 날려 버리기에는 더없이 좋은 운동이 바로 골프가 아닐까 싶더라는 것이다.

 

듣고 보니 그 이야기가 영락없는 내 이야기였다. 내가 자동차를 가지기 전과 가지고 난 후의 심리 상태도 그와 하나도 다르지 않다. “안 그래도 비좁은 도로에 나까지 쓸데없이 자가용은 뭣 하려고?” 무슨 주의 주장이 그리 투철한 위인이라고 내처 이래 오다가, 어느 날 차를 부리게 되면서부터 삶의 틀이며 의식 자체가 완전히 달라져 버리고 말았으니……. 

 

‘없음’에서 ‘있음’으로의 이 간단한 변화가 많은 것을 바꾸어 놓았다. 무엇보다도 출퇴근 시간마다 콩나물시루 같은 만원 버스에 시달리지 않아서 좋았고, 어디를 목적하든 제시간에 닿지 못할까 봐 동동거리던 마음의 초조로부터 한결 자유로워졌다. 강아지조차 이따금 수가 틀리면 제 고집을 피우건만, 놈은 성화 한 번 부리지 않고 늘 살가웠다. 

 

그러니 마음만 먹으면 들로, 산으로, 바다로 훌쩍 나들이를 떠날 수 있어 마냥 행복에 겨웠다. 제법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며, 얼음판 위를 미끄러지듯 달려가는 재미에 시나브로 길들어져 버린 것이다. 누가 나를 향해 사람이 어찌 그리 이중적이냐며 비난의 화살을 날린대도, 나는 이제 와서 선뜻 내 차를 팽개칠 용기를 내진 못할 것 같다.

 

자동차를 가짐으로 하여 얻은 것도 많지만 잃은 것도 적지 않다. 속도를 얻은 대신 아기자기한 전경前景을 잃어버렸다. 생활의 편리를 얻은 대신 알콩달콩 부대끼며 살아가는 재미를 잃어버렸다. 차가운 금속성의 기계 소리를 얻은 대신 이웃들의 따스한 숨소리를 잃어버렸다. 그다지 가지지 않았어도 좋았을 것들을 가진 대신 결코 놓쳐서는 아니 될 소중한 것들을 놓치고 말았다.

 

안락함이란, 마약보다도 중독성이 강해서 거기다 한번 맛을 들였다 하면 끊기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그것은 암컷에게 몸을 뜯어먹혀 참혹한 죽음을 맞으면서도 쾌락의 황홀경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수컷 사마귀의 성애性愛처럼 매혹적인 것이기에.

 

그 반대급부로 망각의 그림자가 머릿속을 하얗게 지워 놓는다.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 못 하듯, 지난날의 그 불편해서 오히려 애틋했던 일들은 쉬이 잊게 만든다. 그러면서 마치 예전부터 유한계층이나 되었던 것인 양 착각에 빠져 거들먹거리게 함을 가르친다. 

 

으레 몸에 해가 되는 것은 달고 몸에 이가 되는 것은 쓰게 마련인가 보다. 그런 까닭에, 잠시 불편을 감수해 보려고 용기를 내다가도 해로운 줄 번연히 알면서 쫓기듯이 편리 쪽으로 다시 몸을 숨기고 만다. 신神이 맛도 있고 몸에도 이로운 것을 한꺼번에 주었으면 좀 좋으랴만, 입맛대로 다 만족하게끔 애당초 그렇게 설계를 해 두지는 않은 모양이다. 이것이 사람살이의 영원불변한 이법인가 한다. 

 

무엇에 길들어진다는 것은 그전의 질서와 단절하는 아픔이다. 그것은 사탕발림처럼 우리의 판단력을 무감각화시켜 버린다. 그래서 될 수만 있다면 거부의 울타리를 쳐 두고 당당히 버티고 싶다. 꼿꼿이 서서 혹독한 칼바람을 맞고 싶다. 온몸으로 맞고 싶다. 

 

하지만 편리라는 달콤함은, 헤어 나오려고 발버둥이치면 칠수록 더욱 깊이 빠져드는 늪처럼, 주어진 현실에의 안주로부터 탈출을 방해한다. 육신의 안온함이 들어 맑은 정신을 흐려 놓고 지혜의 눈을 멀게 만든다. “안 돼요 돼요 돼요 돼요 돼요 돼요 돼요 돼요 된다니까요”라고 노래하는 어느 대중가요 가사에서처럼, “싫어요, 싫어요” 입으로는 줄곧 거부의 말을 주워섬기면서도 몸은 이미 허물어지는, 사랑에 취한 여인의 혼란스런 심사와도 같이, 마음은 자꾸 ‘이래서는 안 되는데, 이래서는 안 되는데……’ 되뇌면서도 몸은 어느덧 그쪽으로 꺼둘려 간다. 

 

옛말에 사람이 너무 편하면 못쓴다는 이야기가 있다. *삼현육각三絃六角 잡히고 시집간 사람 잘산 데 없다는 속담도 생겨났다. 처음부터 모든 것이 두루 갖추어진 삶은 하나 둘 불려가며 사는 재미를 모르게 하고 서릿발 같은 도전정신을 무디어지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러한 인과의 엄숙한 이치를 헤아려 보노라면, 금과옥조처럼 빛나는 보왕삼매론寶王三昧論의 가르침 한 구절이 가슴을 적셔 온다.

 

“세상살이에 곤란 없기를 바라지 말라. 세상살이에 곤란이 없으면 업신여기는 마음과 사치한 마음이 생기게 되나니, 그래서 성인이 말씀하시되 근심과 곤란으로써 세상을 살아가라 하셨느니라.”

 

우리네 인생사에서 모든 위대한 가치를 지닌 것들은 필시 극심한 고통 속에서 피어난 눈물꽃이다. 이러한 사실이 절대 진리일 수 있음에 대하여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당장 내 앞에 닥친 고통은 짐짓 외면하려 든다. 이것이 인간이라는 불완전한 존재가 지닌 삶의 모순인지도 모르겠다. 

 

지난날의 순수했던 정신은, 그것이 안락 쪽으로 방향을 트는 순간 간밤의 꿈처럼 달아나 버린다. 아무리 붙잡으려 안간힘을 써도 속수무책이다. 그래서일까, 아편에 취해 통제력을 잃어버리듯 안락의 달콤한 맛에 녹아 들어가는 자신을 발견할 때면 흠칫흠칫 놀라곤 한다. 

 

삶의 끈은 하나의 목표물을 정해 놓고 뜨겁게 세상을 헤쳐나갈 때 팽팽하다. 그러다가 목표 지점에 도달하는 순간 그 끈이 풀리면서 그만 치열함을 놓쳐 버린다. 깨끗하던 물이 한 곳에 고이게 되면 썩고 말듯이, 맑았던 마음도 주어진 현실에 길들어지면 흐려져 버리는 까닭이다. 

 

벌거벗은 자신의 실체와 마주 서게 되는 것은 언제나 감당하기 힘든 시련에 맞닥뜨렸을 때이다. 그에게는 이 시련이 더없이 귀한 약이 된다. 그래서 수행자는 일부러 육신의 고달픔을 감내하며 쉼 없이 고행 쪽으로 험난하고 외로운 발길을 터벅거리는 것인가 보다. 어느 시인이 절대자를 향해 애써 자신을 고독하게 만들어 달라고 간구했던 까닭을 어렴풋이나마 헤아릴 수 있을 것도 같다. 

 

제 배가 부르면 종의 굶주림을 깨닫지 못한다고 했다. 일신의 안락에 길들어지는 것은 마음의 눈을 멀게 하는 두려운 일이다. 그런 두려움 때문에 나름대로는 어설프게 수행자의 흉내라도 내어 보자는 심산으로 불편을 자청하며 어쩌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가 있다. 자꾸만 멀어져 가는 세상의 숨소리를 붙들고 싶은 어쭙잖은 몸짓이라고 해도 좋겠다. 그럴 때마다 마치 이방인이 된 듯 달라진 풍속도에 어리둥절해진다. 요금 계산 절차며 타고 내리는 방법이며 바뀐 노선 체계 같은 것들에 적잖이 당황하기 일쑤다. 그러면서 그동안 너무 세상의 바람을 등진 채 달팽이 껍데기 속에 틀어박혀 웅크리고 살아왔음을 뉘우친다. 

 

사람이란 순간순간마다 삶과 죽음의 경계선을 넘나드는 존재자라고 하지만, 어찌 보면 ‘불편해서 치열함’과 ‘편리해서 나타懶惰함’ 사이의 선택을 놓고 간단없이 고뇌하고 번민하는 유한자이기도 하다. 고통은 우리를 벼리는 용광로가 되지만 안락은 우리를 좀먹히는 벌레가 된다. 이러한 불변의 이치를 번연히 알면서도 불나방처럼 무모하게 안락 쪽으로 몸을 던지는 것이 또한 인간인가 한다. 

 

영원히 풀릴 것 같지 않은 이 삶의 모순 앞에서, 나는 오늘도 더듬이 잃은 방아깨비마냥 갈팡질팡 헤매며 살아간다.

 

 *삼현육각: 삼현과 육각의 갖가지 악기. 곧 거문고, 가야금, 향비파와 북, 장구, 해금, 피리 그리고 한 쌍의 태평소로 된 기악 편성. 여기서는 ‘성대하고 화려한 음악’이라는 뜻으로 풀이가 됨.

 

[곽흥렬]

1991년 《수필문학》, 1999년《대구문학》으로 등단

수필집 『우시장의 오후』를 비롯하여 총 12권 펴냄

교원문학상, 중봉 조헌문학상, 성호문학상, 

흑구문학상, 한국동서문학 작품상 등을 수상

2012년도 한국문화예술위원회로부터 창작기금을 받음

이메일 kwak-pogok@hanmail.net

 

작성 2022.10.25 07:40 수정 2022.10.25 0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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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