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소리뉴스=VOICE OF WORLD]
가을이 깊어가고 있습니다.
색 바랜 낙엽이 어지러이 여기저기 널려 있습니다. 산벗나무의 잎들은 다른 나무에 비해 특히
많이 떨어져 빈 가지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오늘 아침 정발산 둘레길을 두어바퀴 걸었습니다. 마두도서관 쪽에서 바라본 풍경은 아직도
채색의 단풍으로 산에 가득합니다.
이슬에 젖은 죽은 색깔의 잎들은 떠오르는 아침 햇살에 생기(生氣)를 입고 반짝이는 풍경에 내 가슴이 환희 열립니다. 가슴에 뭔가 차오르는
아름다운 정경입니다.
둘레길을 걷는 사람들의 활기찬 모습과 깊이 내려앉은 가을의 풍경이 조화를 이뤄 어울리니, 바로
여기가 저 넘어의 지상 천국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두어 주 전에 설악산 대청봉에 올랐습니다. 정상 주변의 키 낮은 관목(灌木)들의 잎들은 이미 다 지고 마른 가지만 강풍에 출령거렸습니다. 전 날에는 눈까지 내려 관목 숲에는 녹다 만 잔설(殘雪)이 남아 있었지요.
그렇지만 설악산 중하부에는 가을 단풍이 심히 아름다웠습니다. 친구와 둘이서 우정의 산행을
건강히 마치고 내년 봄에 다시 오르기로 기약했습니다.
지난 주에는 선배 두 분과 함께 이미 잘 복원된 화성행궁(華城行宮)을 살펴보고 성곽도 한 바퀴 돌았습니다. 기중기 등 실학(實學)의 산물(産物)을 이용하여 축성된 성곽의 아름다움이 너무나 멋지고 유려(流麗)했습니다.
그러나 이 성을 축조한 정조대왕(正祖大王)이
갑자기 붕어(崩御)함으로써 대왕의 꿈인 조선의 중흥도, 실사구시(實事求是)의
실학사상도 더는 꽃을 피우지 못했습니다.
영조(英祖)의 계비(繼妃) 정순왕후의 노론(老論) 벽파(僻派)가 정국을
장악, 이후 반동젹인 세도정치와 조선 개국 이래 극심한 대기근과 흉년이 이어짐으로써 산물은 급격히 몰락하고
수원화성과 같은 건축물을 다시는 지을 수 없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엊그제에는 북한산을 찾았습니다. 우리 모임에서 수없이 갔던 그 굽은 오솔길과 깔딱 고개는
여전히 나를 반갑게 맞았고, 나는 천천히 숲의 정기(精氣)를 받으며 올랐습니다.
허위허위 오른 산정(山頂)의 너럭바위에 누워
파란 하늘에 떠가는 하얀 구름을 허허로이 응시하였습니다.
가을 숲 위로 흐르는 가느다란 바람에 지난 이곳에서의 추억들이 명멸하며 깊은 상념에 젖어들게 합니다.
우리의 일체의 유위법(有爲法)이 모두 여몽환포영(如夢幻泡影)이러니 여기면서도 홀로 있다는 상실감에 비애(悲愛)의 그림자가 가슴을 채움은 어찌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생의 심연에 자리잡은 애별리고(愛別離苦)의
괴로움이라 여기며, 지난 날의 형상과 흔적을 찾으며 회심의 발길을 돌려 나왔습니다.
어제 오랜 유년기의 친구와 점심과 차를 나누며 우리의 앞 길에 남은 인생을 어떻게 가져갈 것인가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추수가 끝난 텅빈 가을 들판을 달려 나오며 느낀 마음처럼 나 홀로 되어 간다는 쓸쓸함과, 더불어
기쁨과 즐거움을 함께 나누자는 친구 말에 전적으로 동감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더불어 기쁨과 줄거움을 나누는 친구, 인생노정(人生路程)에 마주하는 문제들에 대하여 고담준론(高談峻論)을 나눌 수 있는 친구, 외롭고
힘들 때 밥 한끼 술 한잔 편안히 나눌 수 있는 오래 묵은 친구, 여생(餘生)을 함께 할 참 좋은 친구들 입니다.
하루하루 깊어가는 가을 속에 역사의 영욕(榮辱)을
품고 있는 우리 옆의 한강은 유장(悠長)하게 흐르고, 우리들의 생(生)도 고락(苦樂)의 단층을 쌓으며 나아가고 있습니다.
쌓이는 연륜의 두께와 허무(虛無)의 낙엽을 바라보며
지난 날들의 삶을 추억하고, 이렇게 건강하게 일상을 살고있다는 감사함에 신발 끈을 다시 조여 맵니다.
김택중
국민교육혁신포럼 고문
현주 기자 sockopower@outloo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