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동 용 (수필가/인문학자)
젖먹이 아기들이 좋아하는 놀이 중에 ‘까꿍’이란 의성어로 표현되는 것이 있습니다. 손바닥으로 얼굴을 가렸다가 ‘까꿍’하고 드러내면 아기들은 좋아합니다. 안 보이던 것이 보이면 재밌는 현상으로 인식됩니다. 이전과 이후의 변화는 인식으로 이어져서 즐거운 것입니다.
그러다가 뛰어다닐 나이가 되면 아이들은 ‘숨바꼭질’을 하며 놉니다. 자기를 제대로 숨기기 위해, 또 상대방이 어디에 어떻게 숨었을까를 두고 고민을 거듭하며 주변을 관찰합니다. 자기를 숨겨줄 엄폐물을 찾기도 하고, 또 스스로 그런 사물을 연출해 내기도 합니다.
게다가 아이들은 변장을 좋아합니다. 여자 아이들은 겨울왕국의 겨울공주가 되어 망사 천으로 만들어진 치마를 입고서 즐거워합니다. 남자 아이들은 스파이더맨이나 배트맨 복장을 하고서 위풍당당한 걸음걸이를 흉내 내기도 합니다. 이 모두 재밌어서 하는 놀이입니다. 게다가 여자 아이가 남자 아이에게 ‘네가 아빠야!’ 하고 말하며 소꿉장난을 치기도 합니다.
내가 내가 아니라, 즉 자기가 자기가 아니라는 사실에 대해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재미를 느끼며 좋아합니다. 현상의 원리에 의해 한계가 정해져 있는 존재에서 그런 원리에 지배를 받지 않고 신적이거나 영웅적인, 혹은 초월적인 면모로 거듭난다는 것이 즐겁기만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죽을 때까지 이 질문을 하다가 삶의 마지막 현장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그때까지 사람들에게 주어진 것은 오로지 선택의 순간입니다. 울 수도 있고 웃을 수도 있습니다. 원망할 수도 있고 다 용서할 수도 있습니다.
가능하면 좋은 생각을 하며 죽고 싶습니다. 그런 생각이 이끈 세상은 천국이 되리라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가능성이 사람을 주눅 들게도 합니다. 말 그대로, 가능성은 무한하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사막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또 때로는 바다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이 넓은 가능성의 들판에서 외로움을 느끼기보다는 승리감을 맛보고 싶을 뿐입니다.
며칠 전 니체의 《아침놀》을 번역하여 마침내 세상에 내놓았습니다. 정말 기뻤습니다. 번역은 2020년 6월부터 12월까지 진행되었습니다. 그해 여름과 가을의 이미지가 번역 속에 담겼습니다. 2021년 7월에 추가 요구가 있어 〈옮긴이 서문〉과 〈작품 해설〉도 출판사로 넘겼습니다. 그런데 책은 이제야 나왔습니다. 산고의 시간은 그토록 길었다는 얘깁니다.
이 책에서 제일 좋아하는 구절은 “허물벗기. — 허물을 벗을 수 없는 뱀은 죽는다. 자신의 의견을 바꾸는 것을 방해하는 정신들도 마찬가지다. 그것들은 정신이기를 그만두고자 하기 때문이다”라는 잠언입니다. 대학생 시절이었던 것 같습니다. 책에서 거의 마지막에 등장하는 이 구절을 노트에 적어둔 것이. 그리고 그 구절의 이념대로 살아보려고 애를 쓴 적이.
허물을 벗고 새롭게 태어나기! 이것을 내 삶의 목적으로 여기고 살았습니다. 벗으려면 허물이 무엇인지부터 결정해야 했습니다. 안과 밖의 대립 속에서 지속적으로 갈등을 일삼기도 했지만 그저 좋기만 했습니다. 변신이 나의 의도대로 실현되기만을 염원했습니다. 새로운 얼굴로 무장한 나의 모습이 동경의 대상으로 다가왔습니다. 새로운 존재의 형상을 가질 수 있다는 확신 속에서 열심히 그 갈등에 임했습니다. 나 자신과의 즐거운 싸움이었습니다.
번역은 치열했습니다. 뱀이 등장하는 그 구절에 도달하기 위해 밤낮을 쉬지 않고 일했습니다. 때로는 노안이 일을 방해하기도 했지만 나의 의지를 꺾어 놓을 수는 없었습니다. 어느 날 아침을 여는 여명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길었던 어둠이 걷히고 있었습니다. 나를 괴롭혔던 환영들은 모두 사라지고 힘의 감정으로 충만하여 새로운 모습으로 즐겁게 변신을 거듭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습니다. 빛과 함께 빛의 존재로 중생을 실현시키고 있는 나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