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충무로단편영화제 심사위원장을 맡으며 대한민국 한류문화 예술대상을 수상한 바 있는 손영호 감독을 인터뷰하기 위해 충무로에서 만났다.
손영호 감독은 “영화감독으로서 필름 시대를 거쳐 디지털 미디어 환경에 적응하며 글로벌 문화 콘텐츠를 창조하는 것이 제일 보람 있습니다.” 라고 말했다. 중견 감독으로서 경험과 앞으로 목표를 향한 멘토가 있다면 누구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이에 대한 대답으로 망설임 없이 고 하길종 영화감독과 고 김기영 영화감독을 꼽았다.
영화인으로서 손영호 감독은 독특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은행권 금융기관 출신이라는 경력을 가졌는데 알고 보면 전자계산(EDPS)을 전공하고 1세대 정보통신 재원으로 활동한 IT 출신이다.
더구나 영화진흥공사 시절 시나리오 공모전을 통해 당선작 없는 가작으로 당당히 시나리오 작가로 등단했었다. 그런 손 감독은 그 이전에 ‘자유공간’ 시동인을 통해 시와 산문을 창작하며 ‘한맥문학’에서 장윤우 시인, 이창년 시인의 추천 심사를 거쳐 ‘시인상’을 수상했다.
‘그대 가는 강 건너 나라’ ‘불멸의 자화상’ ‘돌아온 황우석’ 등 장편소설을 발표한 이력 또한 가지고 있다. ‘연기학개론’, ‘연기아카데미’는 이미 연기자들 사이에서 전설의 베스트셀러가 됐고 지금도 출간이 되는 ‘살아있는 연기 텍스트북’ 이다.
충무로 초창기 시절을 말해 주시겠어요?
A) 한국소형영화동호회 8mm 영화제작 워크샵을 통해 충무로 영화와 인연이 됐었습니다. 그 당시 유현목 하길종 감독님을 뵙고, ‘영상, 인간구원의 메시지’라는 책을 통해 영화감독의 꿈을꾸게 됐어요. 물론 ‘자유공간’ 시동인을 통해 스토리가 있는 시를 창작하며 영화에 근접했지만 영진공 시절 시나리오 공모에서 입상하면서 본격적으로 충무로 입성을 하게 됩니다. 질풍노도와 같은 그 시절을 짧게 한 마디로 고백할 수 없지만 데뷔전을 혹독하게 치룹니다. 문여송 감독님이 경영했던 키네마서울을 통해 임꺽정이라는 사극을 만들었는데 그 때 후반작업을 마치고 개봉을 포기하게 됩니다. 그로부터 2년 KBS작가로 활동하다가 ‘거부하는 몸짓으로 저 하늘을(1993)’이라는 컬트무비 버전으로 재 데뷔를 시도했었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초창기는 고행의 연속이었습니다.
그 당시와 지금의 충무로 또는 제작 환경은 어떤가요?
A) 당시는 필름 매체 시대였었고 지금은 디지털 미디어 환경이잖아요. 마치 수공업 수준에서 전자공업 시대로 전환됐다고 봅니다. 다른 표현으로는 예술가 전문인 시대에서 대중들의 시대로 바뀌었지요. 그 당시는 거장, 대가들이 계셨다고 봅니다. 지금은 춘추전국시대와 흡사하지요. 하지만 현대적 의미의 시네마 천재 또는 글로벌 스타들이 탄생 할 가능성이 매우 높아졌다고 생각합니다. 박찬욱 봉준호 감독 또는 미지의 새로운 감독들의 활약을 기대해 봅니다. 제작환경은 글로벌 수준으로 성장가도에 있지만 진정한 영화예술가, 기획자와 프로듀서 그리고 미주 진출 까지 꾀하는 마케터, 제작자가 활동해야 한국영화가 살아납니다. 인재 양성에 초점을 맞추지 않으면 한국영화 위기설은 다시 터집니다.
새롭게 발표할 신작 영화 ‘블루 다이야(가제)’는 어떤 영화인가요?
A)
한마디로 ‘한류스타 분투기’ ‘한류스타 성공기’라고 볼 수 있습니다. 무명의 한 청년과 처녀가 충무로와 여의도, 상암, 일산, 뉴욕, 아프리카 등지에서 글로벌 스타, 세계적인 스타가 되는 절절한 과정을 겪게 되는 우여곡절을 드라마틱하게 구성했고, 멜로 액션을 기반으로 하지만 미스테리 장르와 결부시켜 극의 재미를 배가시켰습니다. 각본 감독으로 도전하는 현대판 엔터테인먼트 야사입니다.
하길종, 김기영 감독 그리고 백남준 비디오 아티스트를 멘토로 꼽으셨는데...?
A)
하길종 감독님은 제게는 선생님이십니다, 제 영화의 스승이시지요, 뿌리와 같습니다. 소형영화동호회 인연 뿐 만 아니라 하 선생님의 인생 동선을 따라 저도 미국 할리우드 영화계에 입문합니다. 90년대 2천 년대 두 차례에 걸쳐 미국 데뷔를 도전했었는데 이제는 스승님이 못 이룬 미완의 꿈을 저희 후학들도 반드시 이룩해야 한다고 봅니다.
이탈리아는 펠데리코 펠리니를 통해 마틴 스콜세지가 있잖습니까, 독일은 빔 벤더스, 프랑스는 장 뢱 고다르 등 한국인도 해내야지요. 김기영 감독님의 독특한 영화세계 구축과 같은 영화적 스타일이 확립되어야 됩니다. 마지막 유작이 됐던 영화 ‘천사여 악녀가 되어라’ 기술 시사를 그 당시 영진공 시사실에서 마치고 명동으로 내려와 햄버거 숍에 들려 햄버거를 사주시고 함께 먹었던 것이 김기영 감독님과는 마지막이 됐습니다.
또 세계적인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 선생과 같은 개성적인 비주얼 아트와 통합의 테크놀로지가 결합해야 합니다. 백 선생님이 어린 시절을 보낸 창신동, 숭인동이 제게는 고향입니다. 그래서 3인 3색의 멘토를 손꼽아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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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영호 한국영화감독협회 이사 겸 감독
♧ NBD문화콘텐츠 대표이사
♧ 국제문화콘텐츠진흥협의회 위원장
♧ (전) 시사뉴스저널 편집위원
♧ 클린콘텐츠국민연합 위원장
♧ 충무로단편영화제 심사위원장
♧ 동아방송예술대학 출강
♧ 겨레시단 하늘 시분과 회장
♧ 3.1운동 100주년 기념도서 집필위원
♧ 세계한인재단 한국한상인연합회 부회장
♧ 저 서 연기학개론/ 연기아카데미 이론서
창작집 거부하는 몸짓으로 저 하늘을
그대 가는 강 건너 나라
불멸의 자화상 / 돌아온 황우석
시 집 통일대한민국을위한서시 '들풀'
♧ 영 화 임꺽정
거부하는 몸짓으로 저 하늘을
최후의 만찬
야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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