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사의 미소, ‘솔개섬 상괭이가 죽었어요. 상괭이를 살려야 해요.’ 어느 환경지킴이의 애끓는 호소였다.
오래전에 소리도(솔개섬)에서 만난 상괭이 미순이를 떠올렸다. 솔개섬은 연도인데 소리도라고 부른다. 미순이는 사람을 좋아하는 지느러미 없는 돌고래이다. 매끈한 몸매에 작은 눈과 합죽한 입에 가득히 미소를 머금은 모습은 천사의 얼굴이었다. 여수시 소리도 (연도) 쌍굴과 솔팽이굴에 사는 상괭이는 멸종 위기의 보호 생물이다.
소리도는 내 소설 “소리도 등대”가 태어난 곳이다. 지난 그해 작업차 소리도에 머물면서 상괭이 미순이와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상괭이 미순이는 돌고랫과에 속하는 허파로 숨 쉬며 새끼를 낳는 치유동물이다. 소리도 쌍코굴에 서식하는데 가끔 해변 가까이 나와서 헤엄치며 놀았다. 먹이 사냥을 하려고 거친 바다로 나가서 배를 채우며 다시 돌아와서 쌍굴 주변에 평화롭게 놀았다. 미순인 새끼 보호 본능이 뛰어난 어미 상괭이다.
소리도 덕포엔 남해안에서 제일 큰 등대가 있다. 미순이 가족은 소리도 등대가 있는 덕포의 대룡단(大龍端) 솔팽이굴(상괭이굴)과 소룡단(小龍端) 쌍굴에 살고 있었다. 모두가 미소의 천사였다. 나는 등대 언덕에 올라 멀리 바다를 바라보며 글감을 찾고 있었다. 배들이 서쪽에서 동쪽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석양의 바다가 붉은 노을을 걷어가면 소리도 등대엔 불이 켜진다. 여수로 들어가는 배들과 부산으로 가는 배들의 항로를 밝혀주는 등대는 쉴 틈 없이 불빛을 쏟아내고 있었다. 이 뱃길엔 일본으로 가는 무역선도 있었다. 소리도 등대는 거문도 등대와 같이 남해안에서 먼 해도를 밝혀주는 길잡이였다.
나는 남해 고도의 소리도에 머물면서 하루에 한 번씩 소리도 등대 언덕에 올라 내리뻗은 대룡단과 소룡단의 단애 위를 걸으면서 깊은 상념에 젖곤 하였다. 해룡이 승천하다가 천둥에 놀라 바다로 떨어져 엎드린 형상이 대룡단 용머리와 소룡단 용 꼬리로 드러나 물속에 들이박혀 있었다. 금방 드센 기상으로 하늘로 솟을 것 같은데 대룡은 육지에 머릴 박고 물속에 꼬리를 담그고 있었다.
소룡단 쌍굴은 마치 사람의 코 같은 2개의 구멍이 뚫린 동굴이다. 해저로 뚫린 동굴은 끝이 어딘지 모른다. 대룡단 살팽이굴 역시 해저 동굴인데 그곳에 상괭이가 보금자릴 틀고 있었다. 어느 날 소룡단 해변에서 파도를 타며 춤추는 돌고래 상괭이 가족을 발견하였다. 돌고래는 물 위로 뛰어오르며 춤사위를 벌이고 있었다. 돌고래를 본다는 것은 운 좋은 날이다.
가까이 다가서서 돌고래 놀이를 구경하였다. 모두가 천사 같은 미소를 지닌 고래였다. 곱고 아름다운 곡선의 몸매에 짧은 코와 큰 입 그리고 까만 눈을 가진 어여쁜 여인 같은 자태였다. 그때 돌고래 중에서 가장 예쁘고 날씬한 종이 상괭이인데 녀석이 내게로 다가와서 미소를 가득 담은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저를 보려고 오셨나요? 네, 반가워요. 당신의 모습이 정말 아름답습니다. 저도 처음 만나는 당신이 좋습니다.’ 무언의 대화가 서로 오갔다. 상괭인 한참 내 앞에서 요염한 무도를 벌이다가 쌍굴 쪽으로 사라졌다.
소리도 바다는 환상적인 물빛을 발산한다. 청색의 바다가 검은빛으로 보일 만큼 햇빛에 발광하는 청색 에너지가 강렬하여 검게 보인다. 검은 바다는 마치 거대한 우주같이 아름다웠다. 상괭이 가족이 사라지자 등댓불이 켜지기 시작하였다. 바다를 가르는 불빛은 멀리 퍼지고 등댓불 속에 갇히는 배들은 열심히 항로를 재촉하고 있었다.
어두워지자 난 숙소로 돌아왔다. 그리고 작업에 몰두하였다. 그때였다. “선생님, 주무세요. 밤바다, 파도 소리가 너무나 아름다워요. 나와서 막걸리나 한잔해요.” 이곳 초등학교 분교에 근무하는 김연수 선생님의 전화였다. “네, 나갈게요” 내가 소리에도 와서 알게 된 선생님이었다. 그녀의 자취 집으로 갔을 때 그녀는 따뜻한 조기 매운탕을 내놓았다.
“참조기 매운탕을 끓여봤어요. 좋아하실지 모르겠어요.”
“최고지요. 어디서 참조기 매운탕을 먹어봅니까?”
그녀는 여수 막걸리(개도)를 내놓았다.
“고맙습니다. 이런 대접을 받다니 영광입니다.”
우린 서로의 잔을 따랐다. 잔을 부딪친 후 마시고 매운탕의 참조기 살을 발라 먹었다. 막걸리 맛이 일품이었다.
“오늘도 솔팽이굴에 갔었어요?”
“네. 돌고래를 만나러 갔어요.”
“선생님의 소설 속의 주인공을 찾아다니는 것 같아요. 어떤 소설을 쓰세요?”
“등대요. 소리도 등대, 등대는 인생의 희로애락을 간파하는 불빛으로 희망을 갖게 하잖아요. 등대는 정말 좋은 소설의 소재예요.”
“등대는 희망이지요. 그래서 전 이곳에 왔답니다.”
“돌고래 춤을 소설 속에 담고 있었어요.”
“돌고래 춤, 참 재미난 소설이 되겠네요. 그런데 선생님, 그런데 그 고래는 돌고래가 아니고 상괭이랍니다.”
“상괭이요? 하하하, 몰랐네요.”
“상괭이는 미소의 천사예요. 미순인 내가 가장 사랑하는 고래랍니다.”
“미소 천사, 상괭이 이름이 미순이 참 좋은 이름이군요.”
“멸종 위기를 맞는 희귀종인데 솔팽이굴에 살아요. 복을 받은 섬이랍니다.”
소리도(솔개섬)에 귀중한 보물인 상괭이가 살고 있었다. 그녀는 미순일 걱정하고 있었다. 언제까지 이곳에서 살지 모르지만 종족을 불러 갔으면 좋겠다고 하였다. 그녀와 상괭이 미순일 닮았다. 술잔을 들이켜는 김연수 선생님의 옆 모습이 어쩐지 우수에 차 있었다. 그녀의 모습에서 내가 잃어버린 것 중에 소중한 하나를 찾은 기분이었다.
사실, 난 다도해 여수의 섬을 거의 다 돌아보았다. 내가 잃어버린 고향을 찾는 것은 추억 속에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었다. 그녀는 내가 찾는 부류의 사람 중의 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미혼인 그녀가 남들이 피하는 섬 근무를 자청한 이유가 무엇일까, 의문이었다.
“섬 근무가 어때요? 쓸쓸하진 않아요?”
“좋아요. 바다를 보면 마음이 한없이 편해지는걸요. 섬사람들도 그렇고요. 전 바다를 떠나선 살 수 없을 것 같아요.”
“사연이 있을 것 같군요.”
“사연은 무슨, 상괭이가 예쁘잖아요.”
그녀는 말꼬리를 돌렸다.
“정말 솔팽이굴엔 상괭이 가족이 살아요?”
“네, 내일 시간 나면 상괭이 무도를 구경 갈까요?”
“좋아요.”
다음날 우린 소룡단 단애 바위를 걷고 있었다. 공룡의 꼬리 같기도 하고 용의 꼬리 같기도 한 길게 뻗은 청암이 물속으로 내려앉았다. 꼬리에 돌 비닐이 날카롭게 솟아 있었다. 우린 상괭이가 노는 바다를 보았다. 멀리 상괭이 가족이 나타나서 즐겁게 놀았다. 우린 소룡단 아래로 내려갔다. 우리가 해변으로 다가서자 상괭이 한 마리가 물가로 다가왔다. 사람을 좋아하는 상괭이였다. 매끄럽고 고운 살결, 천사 같은 미소, 날씬하게 빠진 하체, 상상만 해도 아름다운 모습에 요염한 몸짓으로 미소를 지으며 춤을 추었다.
“사랑스럽지요. 저 녀석이 상괭이 엄마 미순이랍니다.”
그녀가 지은 이름이었다. 그녀는 이곳에 와서 자주 상괭이를 만났다. 상괭이 미순인 그녀의 유일한 친구였다.
그 후 나는 소룡단 쌍굴과 살팽이굴을 찾아와서 미소 천사 상괭이 가족들을 만나곤 하였다. 하나같이 예쁜 천사의 미소를 지닌 돌고래였다. 행운을 만난 것이다. 놀라지 않으면서도 경계하는 몸짓으로 거릴 두고 헤엄을 치고 놀았다. 정말 아름다운 미순의 가족이었다. 방긋방긋 웃으며 재롱을 떨다가 멀리 사라졌다. 난 녀석들 덕분에 행복하고 즐거웠다.
이별의 시간이 왔다. 짧은 시간이지만 상괭이 들과 재미나게 놀다가 솔개섬을 떠났다. 그리고 김연수 선생님도 그 후에 소리도를 떠나서 소식을 들을 수가 없었다. 난 소리도의 추억을 잊어버렸다.
10년이 지난 어느 날 소리도 상괭이가 죽어간다는 여수의 소식을 들었다. 부려서랴 짐을 싸 들고 소리도를 찾았다. 미순이 가족을 만날 양으로 숨차게 솔팽이굴 해변으로 내려갔다. 아무리 둘러보아도 미순이 가족은 없었다. 난 대룡단 소룡단을 오가며 미순일 찾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였다. 몽돌해변에서 젊은이들이 죽은 상괭이 한 마리를 들고나왔다. 환경지킴이 청년들이었다. 달려가 보았더니 그물에 걸려 죽은 상괭이였다.
‘누가 미소천사 상괭이를 죽였어요.’ 나도 모르게 소릴 쳤다. 온몸에 그물을 칭칭 감고 죽은 싱괭이가 해변에 밀려온 것이다. 난 시신을 휘감은 그물을 벗겨 내렸다. 나쁜 인간들...... 환경보호 청년들이 말했다. 어쩌면 솔개섬 상괭이를 볼 수 없을 거라고 했다. 바다 오염으로 죽고, 해저 설치 망에 걸려 죽고, 고래 고길 먹는 사람들에 잡혀서 죽고, 멸종 위기를 맞았다는 것이다. 살려야 한다. 솔개섬 상괭이를 살려야 한다고 작심해 본다.
상괭이는 번식률이 약하다. 암수가 만나서 2년에 한 번 정도 새끼 한두 마리를 낳는다. 그나마 환경이 좋아서 솔개섬은 상괭이들은 무한 번식으로 이어왔다. 세계적인 희귀 동물인 상괭이가 남해안 솔개섬에서 집단으로 서식한다고 좋아했는데 이제는 사라질 위기를 맞아 슬프다.
날씨가 좋으면 해변에 나와 햇빛을 받으며 무리 지어 노는 모습이 얼마나 예쁜지 모른다. 상괭이가 해변에 나올 땐 온 바다가 웃음꽃을 피운다. 10여 년 전 솔개섬엔 만여 마리의 상괭이가 집단 서식하고 있었는데 점점 죽어 천여 마리가 사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가끔 보일 정도였다. 어쩌면 좋은가, 머잖아 천사 같은 미소가 사라질 터인데...... 해변에 앉아 실의에 찬 모습으로 먼바다를 향하여 미소 천사 미순일 떠 올린다. 그리고 김연수 선생님은 어디에 계실까.
[김용필]
KBS 교육방송극작가
한국소설가협회 감사
한국문인협회 이사
한국문인협회 마포지부 회장
문공부 우수도서선정(화엄경)
한국소설작가상(대하소설-연해주 전5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