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르케고르와 생철학적 불안

이 동 용 (수필가/인문학자)

 

 

2022111일 화요일, 출판사 관계자가 키르케고르의 불안의 개념을 번역해 달라고 계약서를 들고 경복궁 근처에 위치한 철학아카데미로 직접 찾아왔습니다. 정말 영광이었습니다. 대학생 시절, 죽음에 이르는 병을 끼고 살았던 터라 더욱 감격스러웠습니다.

대학시절, 나는 기독교에 푹 빠져 지냈습니다. 교회의 분위기가 좋았습니다. 사랑, 사랑, 온통 사랑 이야기뿐이었습니다. 요즈음 매주 칼럼을 쓰다 보니 멀리 있는 친구들에게서도 연락이 닿고 있습니다. ‘실로암~!’을 함께 불렀던 친구가 추억을 공유해 주기도 했습니다.

우연이긴 하지만, 얼마 전 키르케고르의 책이 꿈에 나타나기도 했습니다. 두려움과 떨림이었습니다. 예전에 아버지가 소장하고 있던 책은 공포와 전율이라고 번역되었던 것 같습니다. 어쨌든 키르케고르와 나의 관계가 이렇게 운명이 되어 길을 밝혀 줍니다.

사실 이번 가을학기에 불안을 깔고 키르케고르와 함께 춤을이란 제목으로 불안의 개념을 강독하는 강의를 하고 있었습니다. 문장 하나하나, 철학자의 문장을 곱씹으면서 읽고 있었습니다. 불안을 무대로 삼으면 추지 못할 춤은 없을 것 같다는 인식을 목표로 삼아 열심히 전진을 거듭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철학자의 문장으로 생각이 춤춰 주기를 바라면서.

두려움과 떨림에서 철학자는 아브라함과 이삭의 이야기를 펼쳤습니다. 그리고 불안의 개념에서 그는 아담과 이브가 타락하여 죄를 짓는 이야기를 이어갑니다. 모두 성경 속 인물들입니다. 중세 천 년 동안 성경 말씀은 그냥 믿음의 대상으로만 여겨왔지만, 키르케고르는 그런 말씀으로 철학의 길을 터놓고 있는 것입니다. 지극히 인간적이고 현실적인 길을.

사실 쇼펜하우어가 처음으로 생에의 의지내지 삶에의 의지를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그가 살았던 시대는 낭만주의가 지배하던 때여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그의 철학적 마지막 메시지 또한 지극히 낭만적이었습니다. 돌이 별이 되는 이야기를 펼쳤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쇼펜하우어는 불교와 힌두교, 특히 산스크리트어를 철학서에 소개하는 최초의 인물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불교를 유럽에 소개한 철학자로 유명합니다. 사실 그의 철학은 당시에 환영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의 글을 이해하는 독자가 별로 없었기 때문입니다. 기독교의 틀 안에 갇혀 있는 정신으로는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이념이어서 더욱 그랬습니다.

이에 반해 키르케고르는 인류 역사상 최초로 생철학의 길을 터놓는 철학자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특히 불안의 개념이 출판되었던 1844년에는 생철학으로 별이 된 니체가 태어났습니다. 니체가 그의 글을 읽었는지는 확인할 수 없지만, 이들의 생각은 생철학이란 바다로 모이고 있습니다. 삶을 변호하고자 하는 그들의 열정은 지금 나에게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유학시절, 성탄절을 맞이하여 버스를 타고 뉘른베르크로 여행을 간 적이 있습니다. 바이로이트에서 새벽에 출발하여 한밤중에 돌아오는 그런 여정이었습니다. 그때 알브레히트 뒤러의 집에서 아담과 이브의 그림을 본 적이 있습니다. 왼쪽 창문을 통해 들어온 햇살은 그림을 환하게 비춰 주었습니다. 두 청춘 남녀의 홍조를 띤 얼굴과 살아 있는 듯한 눈빛 그리고 짝다리를 짚고 선 여유로운 자세는 보는 이로 하여금 전율을 일으켰습니다. 르네상스의 감동적인 시선이 역사라는 긴 전선을 타고 나의 가슴에 도달하는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나는 며칠 전부터 이어오고 있는 의식을 치르고 있습니다. 눈을 감고 눈에 힘을 모으고 있습니다. 책상 위에 불안의 개념을 펼쳐 놓고 아침부터 명상에 빠져 있습니다. 키르케고르의 글을 나의 생각 속에 담아내는 신성한 시간을 연출해 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성숙해져서 밖으로 나와 현존재의 의미로 빛을 밝혀주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작성 2022.11.14 09:29 수정 2022.11.14 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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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