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는 의무인가... 기독교인이 의무로서의 용서를 대하는 태도

[대한민국청소년의회 뉴스 / 권효민 사무국 인턴기자] 기독교는 전통적으로 용서는 필요할 뿐만 아니라 인간의 의무라고 주장해왔다. 기독교는 치유로서의 용서나 미덕으로서의 용서보다는 신의 계명으로서의 용서를 강조한다. 구약 성서에서 지속적으로 죄를 짓는 이스라엘 민족을 벌하시는 동시에 항상 용서하시는 하나님의 태도와, 신약 성서에서 이 땅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심으로써 모든 인간을 용서하신 하나님의 구속사, 그리고 항상 용서를 강조하신 예수의 말씀을 그 근거로 든다. 


특히 용서에 대해 논할 때 자주 인용되는 성서 구절은 마태복음 18장 22절이다. 베드로가 예수께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이까”라고 묻자 예수는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할지니라”라고 답한다. 그는 베드로에게 그것이 어떤 죄인지조차 묻지 않고, 무조건적인 용서를 강조한다. 


예수는 말로만 용서를 강조한 것이 아니다. 본인도 십자가에 달렸을 때,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23:34)라며 자신을 죽이려고 하는 사람들까지도 용서했다. 또한 주기도문에도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라고 나오며, 우리가 용서받고 구원받기 위해서는 우리가 먼저 서로를 용서해야 함이 명시되어 있다. 이처럼 기독교에서 용서는 인간으로서, 하나님의 피조물로서 응당 행해야 할 의무이다. 


그러나 용서는 너무나 어렵고, 매우 조심스럽게 다루어져야 한다. 용서가 요청되는 상황이 너무 다르기 때문이다. 가벼운 죄에 대해서는 용서가 쉬울 수 있지만, 살인이나 성폭력 같은 무거운 죄에 대해서는 용서가 거의 불가능할 수 있다. 


용서가 무조건적인 의무라는 원칙을 모든 상황에 적용하면, 용서가 어려운 상황에서 피해자는 더 큰 상처를 받을 수 있다. 용서는 인간의 의무라는 말은 용서를 강요하는 표현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상처를 받은 피해자에게 용서는 하나님이 부여하신 의무이며, 원수를 사랑해야 한다고 말하며 용서를 강요하는 것은 종교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폭력일 수 있다. 


기독교인은 용서를 어떻게 대해야 할까? 우선 용서에 대해 논하기 전에, 용서는 피해자가 자기 존중을 바탕으로 주체적으로 하는 행위라는 점을 전제로 해야 한다. 용서는 가해자를 위한 용서가 아닌 피해자 본인과 피해자와 가해자의 관계, 그리고 공동체를 위한 용서여야 한다.


하나님의 명령으로서도, 예수님의 삶의 태도로서도 용서는 기독교인에게 의무이다. 그러나 이것이 피해자에게 용서를 강요하는 것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는 점을 명확히 하고 싶다. 용서는 그 어떤 상황에서도 타인으로부터 강요될 수 없다. 용서는 언제나 도덕적 판단 주체의 자발적인 행위여야 한다. 피해자가 주체적으로 용서를 행할 때, 의무로서의 용서의 가치가 보존될 수 있다.


용서의 의미는 상처로부터 파생된다. 상처를 받는 상황이 발생하지 않는다면 용서의 의미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이 ’상처‘는 상황에 따라, 사람에 따라 모두 다른 무게를 갖는다. 따라서 용서에 대해 논의할 때, 상황을 살펴보고 피해자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피해자는 가해자가 용서를 구하든 말든 용서할 의무를 가지지만, 현실적으로 피해자가 자신의 상처를 회복하고 진정한 용서를 하기 위해서는 가해자의 진심 어린 사과와 반성이 꼭 필요하다. 그러므로 용서를 할 의무 전에 용서를 구할 의무가 요청된다. 우리는 살면서 누군가에게 필연적으로 상처를 주게 된다. 어느 누구도 타인에게 무해한 사람일 수 없다. 중요한 것은, 이처럼 유해한 우리가 누군가에게 해를 입혔을 때 그것을 어떻게 회복하느냐이다. 용서를 구해야 한다. 용서할 의무는 강요받을 수 없지만 용서를 구할 의무는 강요될 수 있다. 용서를 구하는 것은 자신의 잘못에 대해 책임을 지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용서는 회복의 전제이자 결과이다. 피해자가 가해자를 용서할 의무가 있다는 것은 곧 자신의 상처를 회복하고 다시 존재할 의무가 있다는 뜻이다. 나는 나 자신을, 나의 삶을 긍정할 의무를 가진다. 또 나와 타인을, 우리 공동체와 다른 공동체를 사랑할 의무를 갖는다. 용서는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행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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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효민 사무국 인턴 기자 vicky0616@naver.com
작성 2022.11.18 10:22 수정 2022.11.18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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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