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의 정신에 저항하는 ‘신의 적’

이 동 용 (수필가/인문학자)

 

 

구두시험을 준비하던 중 이란에서 유학생이 한 명 왔습니다. 숯처럼 검은 눈썹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수업 시간에 소개는 받았지만 별로 정이 가는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수업이 끝나자 그는 내게 다가와 명함을 주었습니다. 독일어로 된 명함이었습니다. 학생이 명함을?

어느 날 교수님 댁에서 시험 준비 겸 불교니 범종이니 해탈이니 자유의 이념이니 하는 주제로 토론 아닌 대화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그때 그 이란 유학생이 젖먹이 아들을 안은 아내와 함께 교수님을 찾아왔습니다. 당황하는 교수님의 행동으로 봐서 초대하지 않은 상황이란 것은 확실했습니다. 교수님을 대신해서 내가 부엌으로 가서 마실 차를 준비했습니다.

이란 남자와 이란 여자 그리고 이란 어린아이를 이렇게 가까이서 본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시커먼 히잡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여성의 몸을 휘감고 있었습니다. 옷이 연출해 내는 위압감은 대단했습니다. 외부의 빛은 철저히 차단시켜 놓은 듯 했고, 잘 구겨지지도 않는 두꺼운 천이었으며, 또 그 윤기가 나는 것으로 보아 질감도 엄청나게 질길 것 같았습니다.

아기는 엄마 품에 안겨 잠자고 있었습니다. 무척 튼실하고 건강해 보였습니다. 하지만 그 여인이 아기를 거의 한 시간 이상 똑같은 자세로 그렇게 꼼짝 않고 안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은 대화가 거의 끝나갈 시점이었습니다. 무척 힘들었을 텐데, 아내는 미동도 보이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런 초인적인 참을성을 기반으로 한 미소가 소름 끼칠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더 재미난 것은 교수님의 반응이었습니다. 교수님은 연신 신기한 듯이 이 이란 가족의 현상을 관찰하고 있었습니다. 나를 처음 보았을 때 신기하게 바라보던 그 눈빛, 경이로워하면서도 호기심 어린 그 눈빛을 지금 이 공간에서 다시 발견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교수님은 내가 바꿔지기를 바랐습니다. 스승 앞에서, 특히 스승의 생각 앞에서 예절 따위에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펼쳐주기를 바랐습니다. 나는 그것이 정말 어렵고 힘들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그런 상황처럼, 스승 앞에서는 그냥 무장이 해제 되는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내가 풀어야 할 문제였습니다.

박사논문을 제출하고 나서 2년 동안 이 문화적인 태도를 문제 삼아 구두시험 날짜를 뒤로 미루고 있었습니다. “독일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싶으면 독일의 제도권 안에서 요구하는 것을 모두 충족시켜라!”는 교수님의 음성은 차갑기만 했습니다. 타협은 없었습니다.

내가 변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논문 제출 후 4학기를 다 채워 가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교수님의 연구실 안에서 나름 목숨을 건 혁명을 시도했습니다. 큰소리로 교수님의 권위에 항거한 것입니다. “내가 뭘 잘못했습니까? 뭐가 부족합니까?” 그때 스승은 이제야 박사가 될 준비가 되었구나!” 하고 말하며 수수께끼 같은 미소를 띠며 포옹을 해주었습니다.

그 당시 이란 유학생의 언행 속에는 교수님이 도전하고 싶어 할 대목이 어떤 것인지 선하게 보이는 듯했습니다. 그의 질문을 듣고 있으면 그 속에 은폐되어 있는 의도까지 읽어 낼 수 있었습니다. 도덕과 법이 무엇인가? 물론 질문이 이렇게 노골적이지는 않았습니다. 긍정과 칭찬을 섞어 교묘하게 틀고 엮어서 본질을 흐려놓게 하는 데는 가히 천재적이었습니다.

스승과 제자 사이의 공격과 방어는 한 편의 재미난 월드컵 경기를 방불케 했습니다. 그 친구가 박사학위를 무사히 마쳤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마쳤다면 그는 변해서 전혀 다른 사람이 되었을 것입니다. 마치지 못했다면 지금의 이란 사법부처럼 히잡을 쓰지 않은 여성을 향해 신의 적이라 부르며 세상의 타락을 증언하는 이들 중의 한 사람이 되어 있을 것 같습니다. 종교적이고 도덕적인 이념으로 국민을 구속하는 그런 잔인한 기득권의 한 사람이.


작성 2022.11.21 10:09 수정 2022.11.21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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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