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유스 / 하정민 기자] 우리나라 대부분의 국민들은 반일감정이 있다. 그런 배경 속에는 일제강점기부터 역사적 사건들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역사적 연원 중 대표적으로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한일간 위안부 합의 문제가 있다. 물론 박근혜 정부가 2015년 12월에 위안부 문제 최종 합의안을 도출하였지만 국민들의 뜻과 피해자의 의견을 반영하지 않고 청와대가 독자적으로 진행했다는 점에서 많은 비판을 받았다. 이렇게 국민들은 아직도 위안부 문제를 가볍게 넘기지 않고 진정성 있는 사과를 강하게 요구한다. 그러나 이와 비슷하지만, 사람들 사이 속에서 잊히고 있는 문제가 있다.
‘윤금이 사건’이라 불리는 ‘주한미군 윤금이 씨 살해사건’은 기지촌의 존재를 세상에 알린 사건이다. 기지촌은 6.25전쟁 이후 경기도 운천, 포천, 문산 등 발달하였고 1957년 미국의 외출과 외박이 허용되고 나서 주한미군의 주둔기지 중심으로 급격히 번창하였다. 1992년 기지촌 내에서 술집 종업원인 26세 윤금이씨의 시신이 발견되었다. 당시 시신은 입에 담을 수 없을 정도로 심하게 손상된 상태였다. 수사 결과 범인은 당시 20세였던 주한미군 제2사단 소속 케네스 마클 이병으로 밝혀졌다. 분노한 국민들은 가해자에 대한 강력한 처벌을 요구했다. 1심에서 무기징역을 받고 1993년 항소심에서 15년형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2006년에 가석방되자마자 케네스 마클은 미국으로 바로 출국하였다. 당시 SOFA에 의하면 “미국 범죄자가 가석방되면 미국 정부가 그를 관할한다.” 즉 미국으로 출국해도 한국 정부가 막을 권한은 없는 것이다. 이 사건으로 인해 그동안 가려져 있던 미군 범죄가 사회에 떠오르기 시작하였고 SOFA에 대한 개정운동이 시작된 계기이기도 하다.
기지촌에서 발생된 성폭력 사건은 ‘윤금이 사건’만 있던 것이 아니었다. 기지촌에는 음식점과 클럽 등 보편적인 것들 외에 성매매 업소도 존재했다. 외출이 가능한 미군들은 밤마다 기지촌의 유흥가로 찾아갔다. 정부는 이를 알았지만 기지촌 여성들을 보호를 해주지 않고 오히려 성병이 발생하지 않도록 성병진료소를 만들어 그곳에서 관리했다. 하지만 성병진료소는 진료의 목적보다 감금 및 학대의 목적을 띄는 곳이었다. 공무원들이 기지촌에서 성병에 걸린 여성을 발견하면 바로 성병진료소에 강제로 데려온다. 그리고 성병에 걸린 미군들이 그곳에 감금되어 있는 여성을 지목하면 해당 여성은 거부할 자유를 박탈당하며 잡혀가기 때문이다. 미군들은 이렇게 끌려온 여성들이 마치 동물원 우리 속에 갇힌 원숭이와 같다며 성병진료소를 ‘몽키하우스’라고 불렀다.
일제강점기 때의 위안부와 기지촌의 성병진료소 이 둘의 차이는 무엇인가. 취약 계층에 존재한 서민들,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이루어진 피해 등 이들의 공통점을 많이 발견할 수 있다. 하지만 기지촌 여성들은 위안부와 달리 국가의 보호를 받을 수 있었다. 일제강점기 때는 우리나라 정부가 있지만 사실상 없는 위치였다. 그래서 위안부는 정부가 보호할 힘이 없던 시기이다. 하지만 기지촌의 성병진료소는 다르다. 정부가 알면서도 기지촌 운영을 막지 않고 오히려 장려했다. 기지촌 성매매가 미군들로부터 벌어들이는 수입이 많았기 때문이다. 즉 기지촌 여성들을 이용한 것이다.
지난 9월 29일 대법원은 미군 기지촌 성매매에 국가의 책임이 있다며 인정했다. 2014년부터 시작된 기지촌 미군 위안부 국가배상 청구소송은 피해자들에게각 300~700만원 배상하는 원심으로 마무리되었다. 또한 과거사정리법 제2조에 따라 중대한 인권침해 사건엔 소멸시효가 적용될 수 없다. 즉 공소시효가 없다는 것이고 그만큼 기지촌 여성들은 지울 수 없는 상처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