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동 용 (수필가/인문학자)
유학을 갔다 왔을 때 외로움의 여파는 극심했습니다. 꿈에서조차 그때 그 상황이 떠올라 힘들게 깨어나기도 했습니다. 그때는 외로움이 엄습하면 자전거를 타고 밖으로 나가 알프스를 휘젓고 다녔습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그렇게 밖으로 나가며 정신을 차렸습니다. 그러고 나서 한국에 돌아오니 유학시절의 시간은 고스란히 공백 상태가 되어 있었습니다.
1991년부터 1999년까지, 즉 90년대가 거의 통째로 사라진 느낌이었습니다. 공부를 해야 한다는 이유로 멀리했던 ‘TV보기’를 의도적으로 또 규칙적으로 치열하게 실천했습니다. TV보기는 그때부터 나의 일상이 되었습니다. 그러던 요즈음, 자꾸 기억 속에 반복되어 떠오르는 한 장면이 있어 한번 풀어 놓고자 합니다. 임창정의 아내 서하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사실 임창정에 대해서도 잘 모릅니다. 그냥 TV 화면상에 비치는 정도만 알고 있습니다. 그의 ‘소주 한 잔’은 우연히 가끔 들었습니다. 언젠가 〈히든싱어〉라는 음악 프로그램에 나와서 그의 목소리를 모창하는 가수들과 함께 경합하는 장면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그의 음악을 듣고 삶에 영향을 받았다는 그들의 사연과 고백을 접하면서 그의 힘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말없이 보내야 했던 시간들이 많았나 봅니다. 그의 입술이 떨릴 때는 위기감도 느껴졌습니다. 그래도 견뎌 냈습니다. 그런 인고의 시간들이 자신의 음악 속에 녹아 있었던 것입니다. 그가 자기를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노래를 부르는 모습은 정말 감동적이었습니다.
그리고 요즈음 〈동상이몽〉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서하얀이라는 임창정의 부인을 알게 되었습니다. 임창정에게는 이미 아들이 셋 있었고, 그리고 두 아들을 더 얻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녀는 편애하지 않고 모두에게 사랑을 베풀었습니다. 지극히 모범적인 어머니였습니다.
서하얀은 연예인도 유명인도 아니었습니다. 그냥 임창정의 아내였고 일반인이었을 뿐입니다. 처음에는 촬영을 해야 하는 낯선 공간에서 잘 웃지도 못하는 듯했습니다. 카메라 앞에 있는 것 자체를 부담스러워 한다는 것을 쉽게 눈치 챌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한 주 두 주, 시간이 흐를수록 그녀의 경직되어 있던 얼굴에도 여유로운 미소가 번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런 서하얀 씨가 패션쇼 무대 위에 선 것은 벌써 몇 주 전의 일입니다. 임창정은 아들 옆에서 연신 호들갑을 떨고 있었습니다. 좋아서 그랬습니다. 사랑에 빠진 남자가 보여 주는 순수한 모습이었습니다. 그의 호들갑 속에서 드러나는 행복감은 남다른 매력이 있었습니다. 과장하고 장난치고 농담하고 이기적인 것 같지만 속은 깊은 사람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런웨이 옆에 자리 잡은 임창정과 아들은 자주 카메라에 잡혔습니다. 쇼가 시작되고 실내 분위기가 달라지자 아들의 표정은 굳어졌습니다. ‘조용히 해야 한다’는 말로 학습된 이유에서였는지는 몰라도, 어린 아들은 떠들지 않고 눈앞에서 펼쳐지는 상황에 몰두했습니다. 평상시와는 다르게 행동하는 엄마의 낯선 모습을 바라보며 많은 생각을 하는 듯도 했습니다.
다른 공간과 다른 세상에 있는 아내와 엄마의 모습을 바라보는 남편과 아들의 시선에서 나 또한 많은 것을 공감했습니다. 떨어진 거리만큼 새로움에 대한 인식도 컸습니다. 예술의 세계가 펼쳐놓는 신비로운 세상의 공간은 전혀 다른 면모를 발견하게 했습니다. 공간이 달라지면 사람도 달라집니다. 그 다름을 인식하는 것이 이성의 능력, 즉 사람의 능력입니다.
마지막 피날레, 연극으로 치면 커튼콜에 해당하는 장면이 연출되자 실내 분위기는 약간 어수선해졌습니다. 그때 다시 엄마를 발견한 아들이 신나게 외쳤습니다. “엄마~!”하고. 서하얀은 하얀 미소를 띠며 아들과 남편 앞을 스쳐 지나갔습니다. 현실감 넘치는 순간이었습니다. 예술의 신비로움이 현실의 숭고함으로 전환을 일궈내는 카타르시스의 순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