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태준은 강원 철원 출신으로 1925년 ‘조선문단’에 ‘오몽녀’가 입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하였고 1933년 구인회 동인으로 활동했으며, 1939년에는 ‘문장’을 주관하기도 했다. 광복 이전 작품은 현실에 초연한 예술 지상적 색채를 농후하게 나타내지만 광복 이후에는 조선 문학가 동맹의 핵심 성원으로 활동하면서 작품에도 사회주의적 색채를 담으려고 노력하였다.
1946년 월북하였고 한국 전쟁 종군기자로 전선에 참여하였으나 월북한 것이 자의적인 것이 아닌 강제된 것이라는 후문을 남기고 있고, 결국 한국전쟁 이후 숙청을 당할 수밖에 없었다는 점은 그가 철저한 사회주의적 작가가 아니었음을 추측하게 한다.
마부와 교수는 단편소설로 그의 작품집 ‘달밤’에 수록되어 있다. 이태준은 1930년대 소설사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데, 그의 작품이 다양한 장르에 걸쳐 있고, 치밀한 세부 묘사와 미학적 구성을 통한 소설의 완성미가 뛰어났기 때문이다. 아주 짧은 작품인 ‘마부와 교수’는 이태준이 실험 정신을 가지고 시도했던 다양한 장르 형태 중 콩트에 속하는 작품으로, 겉만 보지 말고 속을 파악하라는 교훈적 의미를 주고 있다.
여학교 앞에서 자갈을 실은 두 마차가 경사진 길을 올라가다가 앞의 말이 쿵 하고 나동그라졌다. 마부는 물푸레 채찍을 뽑아 들고 매질을 한다. 아무리 매질을 하여도 넘어진 말은 입에 거품만 뿜으면서 뿐 일어서기는커녕 주인을 바로 쳐다보지도 못한다.
그때 하교길 여학생들이 이 일을 보게 되었다. 선량한 그들의 가슴은 돌발적으로 의분에 불탔다. 마침 교수 한 분이 나오다가 길도 막혔거니와 이내 선량한 제자들의 청을 받기에 이르렀다. 교수는 매질하는 마부 앞으로 성큼 나섰다. 교수는 말을 때리지 말라고, 말의 주인보다 꽤 높은 소리로 탄원했다. 학생들은 손뼉이라도 칠 듯이 속이 시원하였다.
그러나 마부는 대꾸도 없이 다시 매를 들었고, 교수도 말을 다스리는 마부를 말리기보다 제자들 앞에서 잃어버린 체면을 도로 찾기 위해 다시 한 걸음 나서며 마부를 나무랐다. 그러자 마부는 의외로 교수의 노염은 탓하지 않고 오히려 목소리를 낮추어 어린애에게 타이르듯, 말이란 것은 쓰러졌을 때 이내 일으켜 세우지 못하면 죽고 마는 짐승이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우리는 눈에 보이는 대로 옳고 그름을 판단하려 든다. 하지만 때론 겉으로 드러난 사실만으로는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 어려울 때가 있다. 즉, 무조건 내 판단이 옳다고 단정 짓고 특정 사람이나 상황을 비판해서는 안 된다는 거다.
여기에서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보자. 나는 마부 인가, 교수인가, 아니면 예쁘고 선량한 겉모습을 가진 아무것도 모르는 여학생들인가. 진실로 말을 사랑하는 마부는 말을 때리면서 얼마나 가슴이 아팠을까. 오해를 받을지언정 마부는 말을 살리기 위해 아픈 마음을 참고 말을 때린다. 무조건 잘못되었다고 판단하고 겉만 보는 여학생들, 교수는 어떤가. 아무것도 모르면서 그저 여학생들 앞에서 정의로워 보이려고 나서지 않았을까.
지금의 이 세상은 너무나 많은 가짜 뉴스들과 반대를 위한 반대만을 위한 뉴스, 정치적 의도를 가지고 만들어낸 비열한 사기 뉴스가 남발되는 세상이다. 그것에 동조하고 함께 나서서 선동하고 사람들은 무슨 생각일까. 부끄러움이 없이 사는 그들은 반성해야 한다. 그러한 가짜뉴스들을 양산하고 퍼뜨리는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면 나라의 발전은 없다.
오히려 국민들을 선동하여 내편 네편으로 나누어 편 가르기하고 싸움 붙이고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하는데 골몰할 것이기 때문이다. 어떤 것이 거짓이고 어떤 것이 진실인지 구별하기 어려운 무서운 세상, 두 눈 똑바로 뜨고 지켜볼 일이다.
[민병식]
시인, 에세이스트, 칼럼니스트
현)대한시문학협회 경기지회장
현)신정문학회 수필 등단 심사위원
2019 강건문화뉴스 올해의 작가상
2020 코스미안상 인문학칼럼 우수상
2021 남명문학상 수필 부문 우수상
2022 신정문학상 수필 부문 최우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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