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병식 칼럼] 박태원의 단편소설 ‘영수증’에서 보는 양심이 필요한 사회

민병식

박태원은 1926년에 시 ‘누님’으로 등단했고, 대중에 가장 널리 알려진 작품으로는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과 ‘천변풍경’이다. 그는 1930년대 일제의 군국주의를 미화하는 친일 작품들을 발표하기도 했고, 그 후 한국 전쟁 때 아내와 자식을 두고 홀로 월북하는데 월북 사유는 분명치 않다. 월북할 당시 가족들에게 친구 이태준을 만나러 간다."고 하고 나갔다고 한다.

 

월북 후 평양대학에서 교수로 재직 중 숙청당하고 강제 노동의 후유증으로 실명 후 전신불수가 되었다. 그럼에도 1977년부터 3부작 대하 역사소설인 ‘갑오농민전쟁’을 집필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마지막 3부를 지을 때는 구술 능력까지 상실하여 후처인 권영희가 작성한 원고를 불러 주면 고개를 끄덕이는 정도만 할 수 있었기에 공동 저작으로 발표되었다고 한다.

 

박태원의 단편소설 ‘영수증’은 1930년대 일제강점기 서울로 올라와 우동집에서 심부름을 하는 15세 노마의 이야기다. 노마는 ‘놈아’라는 말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한다. 당시에는 평범한 아이를 부르는 이름으로 쓰였으므로 작품의 주인공이 보잘것 없는 아이임을 말해준다.

 

고아소년 노마는 우동집에서 일한다. 친척이라곤 딱한 처지의 아저씨가 전부인 15살 노마는 우동집에서 심부름을 하며 열심히 살아간다. 어떨 때는 자정 넘어서까지 손님을 기다리고 설거지를 하고 청소를 한다. 그러나 우동집은 건너편 가게가 우동을 팔기 시작하면서 장사가 안된다. 

 

노마 생일날이다. 노마는 친척 아저씨에게 가끔 놀러 가는데 그날도 아저씨한테 가겠다고 하자 주인은 50전 은화를 주며 먹고 싶은 걸 사 먹으라 한다. 노마는 사촌동생 돌석에게 줄 왜떡 10전 어치를 사 들고 전차를 타고 돌아오니 우동집 문이 닫혀있다. 주인은 노마에게 우동을 만들어 먹이고 그간 밀린 월급 9원 중 4원밖에 못 줘 미안하다 한다. 대신 나머지 월급은 외상값을 받아 가지라며 울어버린다. 로마 또한 그런 우동집 주인을 보고 눈물짓는다.​

 

노마는 외상 장부에 적힌 대로 외상값을 받으러 오서방을 여섯 차례 찾아갔으나 오 서방은 영수증을 써 오라는 핑계를 대기만 한다. 노마는 외상값을 적은 영수증을 만들어 일곱 번째 오 서방을 찾아가지만 결국 만나지 못한다. 돈을 못 받은 노마는 영수증을 찢어버리고는 어두운 밤길을 울면서 홀로 걸어간다.

 

오 서방은 노마가 서울의 각박한 인심을 제대로 느끼게 해 준 인물이었다. 어린 고아 아이이고 하찮은 일 한다고 함부로 자기가 속이고 무시해도 된다고 생각한 걸까. 영수증을 써오라고 핑계를 대며 끝까지 노마를 속인다. 

 

우리는 세상을 살면서 내가 지위, 물질, 권력 등에서 우위라고 여기면서 어떤 상대를 하대하고 속이는 태도가 없을까. 아마도 호의호식하고 살면서 이리저리 회피하며 국가에 세금을 내지 않는 세금 체납자들이 오서방 같지 않을까. 국민은 코로나19로 인해 재정적으로 파산하고 일자리를 잃고 힘들어하고 있는 이때 편 가르기에 몰두하고 진영논리에 매몰되어있는 정신 나간 사람들이 이 시대의 오 서방 아닐까. 양심 있는 사회가 건강한 국가를 만든다. 

 

이 시대의 모든 사람들은 말로만 청렴과 바름을 외칠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양심부터 갖추어야 한다. 모든 것은 나로부터 시작된다.

 

 

[민병식]

시인, 에세이스트, 칼럼니스트

현)대한시문학협회 경기지회장

현)신정문학회 수필 등단 심사위원

2019 강건문화뉴스 올해의 작가상

2020 코스미안상 인문학칼럼 우수상

2021 남명문학상 수필 부문 우수상

2022 신정문학상 수필 부문 최우수상

sunguy2007@hanmail.net

 

작성 2022.12.28 12:04 수정 2022.12.28 12:40
Copyrights ⓒ 코스미안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금지 한별기자 뉴스보기
댓글 0개 (1/1 페이지)
댓글등록- 개인정보를 유출하는 글의 게시를 삼가주세요.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Shorts 동영상 더보기
2025년 4월 25일
2025년 4월 25일
전염이 잘 되는 눈병! 유행성 각결막염!! #shorts #쇼츠
2025년 4월 24일
2025년 4월 23일
2025년 4월 22일
나는 지금 '행복하다'
2025년 4월 21일
2025년 4월 20일
2025년 4월 19일
2025년 4월 18일
2025년 4월 17일
2025년 4월 17일
2025년 4월 16일
2025년 4월 15일
2025년 4월 14일
2025년 4월 13일
2025년 4월 13일
2025년 4월 13일
2025년 4월 13일
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