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침 일찍 세탁기부터 돌린다. 그리곤 고구마 두 개를 씻어 에어프라이어에 넣고 200도에 35분을 맞춘다. 이것도 문명의 이기(利器)인가 생각하니 세상천지가 도움이다. 겨울철 산 아래 작은 집의 아침 식사는 율무차 한 잔에 고구마 두 개로도 충분하다. 설탕이 들어가지 않은 커피를 한 잔 들고 문은 나서는데 슬리퍼가 없다. 어젯밤에 세차게 분 바람에 날려간 것이다. 신발장 문을 여니 나의 신발이 여러 켤레가 있다. 어제 외출 때 신었던 것은 잠시 쉬고 있고 지난여름에 신었던 장화는 낮은 곳에서 두 눈을 뜨고 서 있다. 나에게 이렇게 많은 신발이 필요했었나?
마당에 세워진 픽업트럭은 밤새워 집을 지켰다. 빈차지만 혼자서도 집을 잘 지킨다. 춥다 덥다 소리도 안 하고 각자의 위치에서 자기의 몫을 조용히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어제의 세찬 바람 덕분에 수돗가에 엎어 놓았던 빨간 대야는 아예 저만큼 논바닥까지 날아가 엎어져 흙들과 얘기를 하고 있고, 길다란 빗자루는 대벌레가 되어 재며 갔는지 느티나무 곁에서 낙엽 쓸 자세로 누워있다.
오늘은 언제 바람이 불었냐는 듯 세상천지가 모두 조용하다. 날씨도 푸근하다 못해 따뜻하기까지 하다. 세탁기가 삐~하고 나를 부른다. 탈수가 된 나의 분신들을 챙겨 나와 빨랫줄에 넌다. 하얀 내의가 더 하얀 빨랫줄에 널린다. 그 너머로 구름 한 점 없는 푸른 하늘이 한없이 넓고 높게 펼쳐진다. 빨랫줄에 널린 옷들이 하늘여행을 하는 것 같아 보인다. 파란 하늘에 하얀 배들이 푸른 바다로 여행을 한다.
어미 고양이가 아기를 데리고 따뜻한 겨울 볕을 즐긴다. 원래는 다섯 가족이었는데 가을을 넘기면서 단둘만 남았다. 대상이 누구이든 무엇이든 세파(世波)는 녹록하지 않다. 마지막 남은 한 마리가 무탈하게 자라길 바랄 뿐이다. 이미 사라진 어린 꽃들은 또 다른 꽃들과 함께 어딘가에 스며 있을 것이다. 어미가 땅바닥에 뒹굴며 등을 긁는다. 가끔씩 나에게 다가와 바짓단을 비벼대기도 하는데 나는 기분 좋은 몸짓으로만 알고 머리만 쓰다듬어 주었다. 등도 긁어주어야 되는구나. 아기고양이도 따라 뒹군다.
겨울 햇볕이 잘 드는 처마 아래에서 고양이와 해바라기를 하고 있노라니 갑자기 하늘에 시장(市場)이 열린 것 같은 울림으로 소란스럽다. 한낮 운동을 나선 기러기 떼가 지붕 위를 낮게 지나며 마당에 V 자 그림자를 그린다. 그림자가 된 땅이 따라간다. 하늘에도 땅에도 기러기가 있다. 기러기가 산으로 오르자 그림자는 힘에 겨운지 따라가지 못하고 사라진다. 기러기의 합창도 멀어진다. 기러기와 나의 심장은 얼마나 닮았을까. 기러기들이 사라진 곳에서 늦은 오후엔 산 그림자가 내려올 것이다.
기러기와 고양이가 사라지고 혼자 앉아있다. 아니 혼자는 아니다. 작은 논엔 흙도 있고 양달을 따뜻하게 해 주는 겨울 볕도 있다. 그리고 미처 자리를 잡지 못한 갈색의 낙엽도 땅에 누워 주위를 살피고 있다. 나도 어느 날 육신을 버리고 영혼으로 남을 때 그곳엔 조금은 낯설고 서툰 아이가 서 있을 것이다. 내가 자라나면서 ‘너는 네 할아버지를 많이 닮았다’는 말을 많이 들었는데, 언젠가 지금 나의 자리에 서 있는 아이는 어떤 말을 들을까? 우리가 거절하고 듣기 싫어해도 들을 수밖에 없다. 결국 언제나 누군가와 같이 간다는 말이다.
정말 사람의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얼마나 될까. 나의 손으로는 어떻게 할 수 없는 영역을 가늠조차 할 수 없다. 길지도 짧지도 않은 시간을 살아가는 동안 내가 뭘 얼마나 할 수 있을까 싶기도 하지만 막연히 이것들을 꼭하고 죽어야지(버킷리스트) 했던 것들을 손꼽아 보니 다행이도 절반은 넘는다. 그중에서 못한 것들이 시간 속으로 지나가 버린 줄 알았는데 생각지도 못한 어떤 계기로 그것이 나에게로 왔을 때의 기쁨은 실로 크다.
그러나 그것이 어떤 것일지라도 그냥 오지는 않는다. 그 가치는 내가 알지 못하는 또 다른 가치의 희생을 요구한다. 그 희생을 손해라고 생각한다면 중요한 것을 얻을 수 없다. 그러면서 조금씩 깊어지고 고마움은 더해가는 것이다. 그래서 희생과 시련의 또 다른 이름은 소쩍새이고 희망이다. 삶의 여백 뒤에 숨어있던 내가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그러면서 생각한다. 내가 죽기 전에 가치 있게 해야 할 것이 무엇인가.
겨울 볕이 따뜻하다. 따뜻한 볕도 때가 되면 갈 것이다. 아니다. 어디에선가 다른 곳에서 추위에 떨고 있는 이에게 따뜻함을 주러 자리를 옮길 것이다. 덕분에 몸을 데운 나는 그만큼의 깊이를 더해야 할 것이다. 바람이 불어와도 심해(深海)의 물은 조용하다. 그런 물이 되고 싶다. 화내는 모습은 수심이 얕은 표면의 물이다. 겨울 볕의 고마움을 나 자신에게라도 기여해야 한다. 얼마든지 화를 내지 않고도, 말을 줄이고도, 자랑하지 않고도 살 수 있다.

[하진형]
수필가
칼럼니스트
교육부, 행정안전부 범죄안전 강사
이순신 인문학포럼 대표(이순신 국제센터)
제3회 코스미안상 금상
이메일 bluepol77@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