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상 칼럼] '숙명이냐 운명이냐? Fate or Destiny?'

이태상

매년 새해가 되면 동서양을 막론하고 사람들은 호기심이나 희망 또는불안감에서 점쟁이를 찾는다.
 
미국의 유명한 점성술가 쉐이니 니콜라스 Chani Nicholas는 지난해 11월에 출간된 그녀의 최근 신간 ‘당신은 이를 위해 태어났어 : 근본적인 자아수용을 위한 점성술 You Were Born for This : Astrology for Radical Self-Acceptance’에서 ‘당신이 누구인가가 아니고 누가 될 수 있는가?’를 말하려는 것이라고 한다.
 
서양엔 이런 말이 있다. ‘당신이 누구, 무엇인지는 신神이 당신에게 준선물이지만 당신이 누구, 무엇이 되는가는 당신이 신神에게 바치는 선물이다.’ 이는숙명 fate)이란 타고난 것이지만 운명 destiny은 당신이 개척한다는 뜻이리라.
 
누가 더 바보 일까. 어둠을 무서워하는 어린애와 빛을 두려워하는 어른 둘 사이에서. 때때로 사실이 거짓 꾸며낸 일보다 더 이상하다지만 성한 사람이 이상하게 미치는 것은 이상하게 미친 세상에 대한 아주 성한 반응이며 그 대응책이라고도 한다.그래서 거짓말 중의 거짓말은 자기 자신한테 하는 것이고 그것이 거짓말에 머물지 않고 거짓 삶으로 연장되기도 하나 보다. 
 
그러나 우리 더 좀 생각해 볼 때 무엇이 참이고 무엇이 거짓일까?
 
수학적인 공식으로 예를 들어보자. 1+1 =2로 당연한가 하면 1+1=11로 보일 수도 있다. 자주 반복되는 거짓말이 그 숨은 진실을 말해주는  참말이 되는가 하면 자질구레하게 섣불리 서투른 거짓말하지 않고 묵묵히 입을 다물고 침묵을 지킴으로 엄청나게 더 큰 거짓말을 결과적으로 하게 되기도 한다.
 
사실을 왜곡하거나 생략 또는 부정하고 불신하며 망각하는 것도 거짓말이라고 할 수 있다. 심지어 추측, 편견, 선입견, 고정관념, 예측, 기대,환상 등이 모두가 거짓말이라면 거짓말이다. 흔히 사람들은 사실보다희망적이고, 환상적인 환멸의 비애를 맛볼 때는 보더라도, 배신의 쓰라린 상처를 입을 때는 입더라도, 사람은 머리로 생각하는 동물이라기보다 가슴으로 느끼면서 꿈과 믿음으로 숨 쉬고 사는 미신迷信의 산물産物인지 모를 일이다.
 
또 좀 생각해 보자. 세상에 그림자 없는 빛이 없듯이 실망하지 않을 기대란 없을 테고, 상처받지 않을 사랑도 없으리라. 하지만 사랑을 모르는 인형이, 고독을 모르는 동상이, 눈물을 모르는 조각이 되기보다 거짓을 외면한 진실을, 자연을 외면한 진리를 찾기보다, 차라리 모든 것의 가치와 아름다움 발견하는 알뜰살뜰한 사람이 되리라.
 
어둠, 거짓, 슬픔, 아픔, 실망, 절망, 회의, 배신, 이별도 살리고 고독도 살리리라. 추함도 천함도 잃음도 없음도 모두를 살리는 살림꾼이 되어보리.
 
순간의 확대판이 영원이고 영원의 축소판이 순간이라면, 우리는 모두 순간에서 영원을 살고 있지 않나. 내가 태어나기 전 헤아릴 수 없는 무궁한 세월 동안 우주는 존재해 왔고, 또 내가 떠난 다음에도 우주는 영원토록 계속 존재하는 것이라면,  찰나 같은 나의 존재란 어떤 것일까?
 
나의 존재란 언제부터일까. 엄마 뱃속에 잉태된 그 순간부터이거나 아빠의 정자로 생긴 때부터이거나, 또는 그 이전부터일까. 그리고 내 심장이 뛰기를 멈추거나 마지막 숨을 내쉬거나 의식을 잃는 순간, 그 언제 끝나는 것일까. 아니면 부모와 조상으로 한없이 거슬러 올라가고  또 자식과 후손으로 끝없이 이어지는 것일까. 불교나 힌두교에서 말하는 ‘윤회輪廻’가 아니라도.
 
뉴론 neurons 이란 정보를 전송하는 두뇌 속 세포들의 작용으로 우리는 보고 듣고 느끼며 생각하고 행동하기 등 모든 행위가 이루어진다고  한다. 이 뉴론들 사이의 연결점들은 시냅시즈 synapses 라고 불리는데 여기에 기억들 memories 이 저장된다고 한다.
 
그리고 이 시냅시즈들은 물론 뉴론들도 한없이 복잡 미묘한, 영원한 수수께기들이란다. 어디 그뿐인가. 시냅시즈와 뉴론들 숫자는 하늘의 별처럼 부지기수라 하지 않나. 다시 말해 한 사람의 두뇌 속에만도 광대무변廣大無邊의 무한한 우주가 있다는 얘기다.
 
갓 태어났을 때부터 내가 나를 관찰할 수 없었지만 내 외손자와 외손녀만 보더라도 참으로 경이롭기 이를 데 없다. 외형의 외모만 보더라도  날이면 날마다 시시각각으로 그 모습이 달라지고 변해 가고 있음을 여실히 목격하게 된다.
 
어느 한 순간의 모습과 표정도 두 번 다시 반복되지 않고 영원무궁토록단 한 번뿐이라는 사실을 가슴 저리도록 아프게 절감切感한다.  너 나  할 것 없이 우리 모두 각자의 순간순간의 삶이 그렇지 않은가. 이 얼마나 한없이 슬프도록 소중하고 아름다운 순간들이고 모습들인가. 영세무궁토록 다시는 볼 수 없는 사람들이고, 처음이자 마지막인 만남들이요 순간 순간 늘 새롭고 다른 장면들이 아닌가.
 
진실로, 그러할진대, 아무리 좋아하고 아무리 사랑해도 한없이 끝없이너무너무 부족하기만 한데, 우리가 어찌 한시인들 그 아무라도 무시하거나 미워하고 해칠 수 있으랴. 우리는 다 각자대로 순간에서 영원을  사는 것임에 틀림 없어라!
 
1973년에 출간된 이후 3천만 권 이상 팔린 베스트셀러 ‘비상飛翔의 공포 Fear of Flying’의 저자인 미국 작가 에리카 종 Erica Jong (1942 - )의 그 속편續篇/續編 ‘죽음의 공포 Fear of Dying’가 2016년에 나왔다.
 
‘비상의 공포’를 두 단어로 요약한다면 ‘지퍼 없는 씹 zipless fuck’으로 ‘억제할 길 없는 욕망’ 이야기다. 여자라면 이런 상상도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남자들은 ‘놀라 자빠질 것’이라는 홍보문구처럼 센세이셔널한 문제작으로 40여 개 국어로 번역 출판되었고, 여성의 성적性的  자아표현自我表現의 기폭제起爆劑가 됐다.
 
‘죽음의 공포’는 또 다른 금기사항禁忌事項인 노인老人들의 섹스를 다룬다. 이 속편 소설의 주인공은 60대 할머니이지만 ‘zipless. com’이란 쉽고 편한 섹스 사이트 casual-sex site를 통해 농濃익은 욕정慾情/欲情을  아무런 부담 없이 채워 즐긴다. 
 
이 ‘죽음의 공포’ 책 커버엔 미국의 영화감독, 배우, 극작가 겸 음악가  우디 알렌 Woody Allen (1935 - )의 다음과 같은 추천의 글도 실렸다.
 
“난 죽음이 두렵지 않다”는 그의 유명한 말을 생각하고 있었다. 다만  그가 죽을 때 그 자리에 있고 싶지 않아 그가 이 책을 읽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I was thinking of his famous quote, “I’m not afraid of dying;” I just don’t want to be there when it happens, so I thought he should read this.”
 
‘비상의 공포’가 이 책을 읽은 독자들로 하여금 버스나 지하철 기차  옆 좌석에 앉은 참한 아가씨나 여인을 달리 쳐다보게 했듯이, ‘죽음의 공포’를 읽는 독자들도 할머니들을 달리 쳐다보게 될 것이라고 ‘비상의 공포’에서 문학적인 영향을 받았다는 미국 작가 제니퍼 위너Jennifer Weiner (1970 - )는 말한다.
 
내가 청소년 시절 읽은 소설이 하나 있다. 저자의 이름은 기억나지 않지만 그 제목은 ‘인간발견人間發見’이었던 것 같다. 한 신부神父가 억제만 해오던 성性에 눈떠 파계破戒하고 인간으로서의 자아를 발견하는 이야기였다.
 
그 후로 내가 1970년대 영국에 살 때 이웃에서 작은 식료품 가게를 하는 부부를 만났는데 남편은 아일랜드 사람으로 한국에서 신부神父로18년을 근무하다 한국 수녀修女를 만나 신부와 수녀복을 벗고 아들딸 낳고 단란한 가정을 꾸며 ‘인간적人間的’인 삶을 살고 있었다.
 
종교 특히 기독교에서 섹스를 불결不潔해 하며 치부시恥部視하고 또  여성을 제2의 성性으로 격하格下시킬 뿐만 아니라 에덴동산에서 아담에게 선악과善惡果를 따먹는 원죄原罪를 짓도록 유혹誘惑해서 에덴동산에서 쫓겨나게 한 ‘악녀惡女’ 이브로 원초적인 낙인烙印까지 찍지 않았는가.
 
그 후로 기독교 신자들은 물론 기독교의 종교적인 세뇌洗腦와 악영향惡影響을 받게 된 거의 모든 지구촌 사람들이 지상地上의 삶을 외면外面하다시피 하면서 ‘그림의 떡 Pie in the Sky’ 같은 천국행天國行에목을 매 오고 있지 않은가.
 
얼마 전 한 드라마에서 나는 이런 대사臺詞를 듣고, 아, 참으로, 세상에 저렇게 ‘철든 사람도 있구나~!’ 쾌재快哉를 불렀다. 어려움에 부닥친 인물이 이번 생은 포기하고 다음 생을 기억하라는 친구의 권유에 “나는 이번 생에 행복할 거야. 다음 생은 필요 없어”라고 다짐하는 것이었다.
 
사람은 살기 위해서 숨을 쉬고 밥을 먹고 잠을 자야 하듯이 섹스도 너무나 자연스런 인간 본능이요, 오스트리아의 정신과 의사이자 정신분석학의 창시자 지그문트 프로이트 Sigmund Freud (1856-1939)가  성욕性慾/性欲을 의미하는 리비도 libido가 삶의 원동력이라고 했다는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우리 삶의 엔진 engine 발동기發動機가 아닌가.
 
자동차에 비유해서 차가 오래돼도 달릴 때까지는 엔진이 작동作動해야 하는 것처럼 우리 몸의 엔진인 섹스도 마찬가지 아닌가. 그렇다면 섹스가 남자나 젊은이들의 전유물專有物일 수는 없다는 얘기다. 촛불의 심지가 다 타버릴 때 마지막으로 불꽃이 커지듯 황혼黃昏의 섹스도 마찬가지이리라.
 
‘지각知覺’이 ‘현실現實,’ 영어로는 ‘Perception is reality.’이라고 한다. 인물人物이고 사물事物이고 간에, 믿는 대로 보고 싶은 대로, 느끼는 마음의 인식작용認識作用을 일컫는 말인 것 같다.
 
몇 년 전 미연방수사국FBI은 싸구려 와인에 프랑스 명품 와인 라벨을  부착해 무려 130만 달러(약 15억 원)에 달하는 부당이득을 챙긴 범인을 검거했다. 그 당시 놀랍게도 세계적인 와인 전문가들조차 위조한 명품 라벨에 속아 와인 맛까지 명품으로 착각했다는 것이다.
 
1970년대 영국에 살 때 비영리 소비자보호 공익단체에서 명품 화장품들을 수거해 조사 분석한 보고서를 보니 바셀린 종류의 원료 이상 들어  있는 것이 없고, 향료를 포함해 재룟값은 얼마 안 되며 화려한 포장과  광고 선전비가 상품가격의 90% 이상을 차치한다는 거였다.
 
1980년대 미국 뉴저지주 오렌지시에서 잠시 가발 가게를 한 적이 있다. 당시 가발 개당 도매 구입 원가가 평균 7달러로 소매가는 21달러였다. 그런데 간혹 직업이 연예인이나 가수 같은 고객이 명품 가발을 찾으면서 21달러짜리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제일 비싼 가발을 보여 달란다. 그러면 하는 수 없이 21달러짜리 가발이라도 ‘명품’이라며 그 열 배로 210달러를 받아야 손님이 만족스러워했다.
 
언젠가 한 여성과 허물없이 대화하는 중에 자기는 치과에 가서 ‘룻 커낼 root canal’ 같은 고통스러운 치료를 받는 순간 최근 섹스하면서 느끼던 오르가슴orgasm을 떠올리면 견딜 만하더라고 했다.
 
그녀는 부언附言하기를 남녀 간에 첫사랑과 결혼까지 하게 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고, 많은 경우 마지못해 적당히 편의상 썩 내키지 않는 사람과도 결혼하게 되지만, 그렇다고 반드시 비참해하면서 불행할 필요가 없지 않겠느냐고 했다. 그러면서 극단직인 예까지 드는 것이었다.  싫은 사람과 섹스를 하면서도 눈을 감고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이라고상상할 수 있지 않겠느냐며.
 
“삶의 목적은 삶을 살아보는 것, 최대한으로 최고로 한껏 기껏 맛보고  만끽滿喫하는 것, 새롭고 더 풍성豊盛한 경험을 두려움 없이 열성熱情껏 추구追求하는 것이다. The purpose of life is to live it, to taste experience to the utmost, to reach out eagerly and without fear for newer and richer experience.”
 
엘리노어 루즈벨트 Eleanor Roosevelt (1884-1962)의 말이다.
 
“삶이란 대담大膽)하게 모험冒險을 감행敢行하거나 아니면 아무것도 아니다. Life is either a daring adventure or nothing at all.”
 
핼렌 켈러 Helen Keller (1880-1968)의 말이다.
 
젊어서 한때 서울 한복판에 내 자작自作 아호雅號 ‘해심海心’이란 이름으로 주점 대폿집을 차려 ‘해심주’와 ‘해심탕’으로 대인기를 끌면서 문전성시를 이뤘었다. 한 가지 희한한 사실은 수 많은 손님들이 ‘해심탕’ 을 안주로, ‘해심주’를 마시면서 잠시나마 실연失戀의 슬픔도, 삶의 고달픔도, 세상의 모든 근심 걱정 다 털어 버리고 인생을 달관達觀하게  되노라고 비록 취중이지만 내게 거듭 증언하는 것이었다. 필시必是  이 ‘해심海心’이란 작명철학作名哲學 때문이었으리라.
 
후세 사람들이 성인군자聖人君子나 위인偉人이라고 숭상하는 인물들도 빛과 그림자처럼 좋고 나쁜 양면을 다 갖고 있었을 것이다. 소크라테스 Socrates (470 bce-399 bce)나 톨스토이(Leo Tolstoy (1828-1910)가 세상 사람들 보기에는 훌륭한 인물들이었을지는 몰라도 가족 특히 부인들에게는 형편없는 남자들이 아니었을까? 오죽하면 부인을 ‘악처惡妻’로 만들었을까. 새삼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란 말을 심사숙고深思熟考하게 된다. 오늘날에도 얼마든지 볼 수 있다. 한두 예를 들어보리라.
 
세 딸들이 다닌 영국의 명문 음악학교의 세계적으로 저명한 선생님 한  분이 제자들을 성추행해온 사실이 밝혀져 조사를 받아오던 중 자살했고 피해 학생 한 명도 자살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미국에서도 UC 버클리대 교수이자 그동안 70개의 외계 행성을 발견한 유명한 천문학자 제프리 마시 Geoffrey Marcy (1954 - )가 여학생들을 성희롱한 혐의로 사직했고, 미국 연예계의 대부代父로 만인의  칭송을 받아온 빌 코스비 Bill Cosby (1937 - )는 수많은 연예계 지망생들을 약물을 탄 음료수를 먹여가면서 성폭행을 일삼아온 사실이 60여 명 이상의 피해 여성들 증언으로 드러나 법의 심판을 통해 2018년  3년 내지 10년의 징역형을 받았다.
 
아, 그래서 자고自古로 겉이 화려하면 속이 빈약하다고 외화내빈外華內賓이라 하는 것이리라. 
 
자, 이제, 우리 모두 내실內實)을 다져, 부질없이 밖에서 명품을 찾지  말고, 우리 각자 자신이 믿는 대로, 보고 싶은 대로, 바라고 원하는 대로, 각자가 스스로를 작명해서 단 하나뿐인 명품인물이 되어 명품인생을 살 때 우리 각자는 가짜가 아닌 진품眞品/珍品으로 전무후무前無後無하고 유일무이唯一無二한 존재가 될 수 있으리.
 
몇 년 전 당시 현행 8개의 한국사 검인정교과서를 단일화하겠다는 정부방침으로 국회 내에서뿐만 아니라 외부에서까지 찬반 토론이 활발했고, 국정화에 반대하는 각계 성명이 잇달았었다. 도대체 역사란 무엇인가 우리 생각 좀 같이 해보리라.
 
“선생님, 역사란 무엇입니까?” 한 젊은 제자로부터 이런 질문을 받고 “역사란 믿을 수 없는 것일세.”라고 언론인 출신 작가 이병주(1921- 1992)는 답했다고 한다. 그는 장편소설 ‘산하’의 제사題辭로 ‘태양에 바래지면 역사가 되고 월광에 물들면 신화가 된다.’고 적었다. 역사歷史란 승자勝者의 기록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하지만 잘 보려면  그 배경背景과 이면의 사정事情을 살필 수 있는 심안心眼을 가져야 하리라.
 
크리스토퍼 콜럼버스 Christopher Columbus (1451-1506)를 그한 예로 들어보자. 미국에선 1934년 프랭클린 루즈벨트 Franklin D. Roosevelt (1882-1945) 대통령에 의하여 10월 12일이 콜럼버스  날 Columbus Day 미연방 공휴일로 정해졌다가 1971년 10월의 둘째 월요일로 변경되었다. 신대륙 발견 500주년을 기해 National Geographic 잡지가 ‘콜럼버스가 우리를 발견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먼저 콜럼버스를 보았다’라는 남아메리카 사람들의 시각視覺을 소개하면서 콜럼버스의 비판이 표면화되기 시작했다.
 
콜럼버스가 남미대륙에 상륙한 이후 150년 동안 1억 명에 달하던 원주민들의 숫자가 300만 명으로 줄어들었다며, 그들은 콜럼버스를 인류 역사상 최대의학살을 촉발한 침략자로 보게 되었다. 베네수엘라  Venezuela의 우고 차베스(Hugo Chavez 1954-2013) 대통령은 “10월 12일을 원주민 저항의 날로 바꾸라!”라는 대통령령을 내리기도 했다.
 
미국 미네소타 대학 인권센터에서는 콜럼버스를 ‘사상 최악의 인물’로모의재판에 기소했는데, 배심원들은 12시간에 걸친 심리 끝에, 7개의  죄목인 노예범죄, 살인, 강제노동, 유괴, 폭행, 고문, 절도에 대해서 유죄라고 평결하였고, 재판장은 죄목 하나마다 50년씩 계산해서 통산  350년의 사회봉사활동을 콜럼버스에게 선고하였다. 이 같은 현상은  아직도 세계 도처에서 인종과 민족, 국가 간 그리고 개개인 사이에서도 사회 전반에 걸쳐 갑을 관계로 계속 반복되고 있지 않나. 흔히 속된  말로 ‘억울하면 출세하라’느니, 적자생존適者生存이니, 약육강식弱肉强食이니 하지 않는가.
 
아, 그래서 원불교를 창시한 소태산 대종사는 “모든 사람에게 천만 가지 경전을 다 가르쳐 주고 천만 가지 선善을 장려하는 것이 급한 일이 아니라, 먼저 생멸生滅 없는 진리眞理와 인과응보因果應報의 진리를  믿고 깨닫게 하여 주는 것이 가장 급한 일”이라고 했으리라.
 
이 ‘생멸 없는 진리’와 ‘인과응보의 진리’를 내가 한마디로 줄여 풀이하자면 ‘우리는 하나’라고 수 있지 않을까. 자연을 포함해서 내가 너를 위하면 곧 나를 위하는 게 되고, 내가 너를 다치게 하면 내가 다친다는 진실眞實말이다. 이것이 바로 코스미안 사상이며 현재 코로나바이러스로 명명백백明明白白해지고 있는 사실事實이 아닌가.
 
호기심에 가득 찬 아이들은 말끝마다 “왜 Why?”라고 묻는다. “네가  좋아야 나도 좋으니까,” 이것이 정답正答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우리 어른들도 아이들처럼 “왜?”라고 묻고, 전쟁과 파괴의 카오스  Chaos  를 초래하는 대신 사랑과 평화의 코스모스 Cosmos 를 창조해가면서 밝고 아름다운 새로운 코스미안 역사를 써보리라.
 
 [이태상]
서울대학교 졸업
코리아타임즈 기자
합동통신사 해외부 기자
미국출판사 Prentice-Hall 한국/영국 대표
오랫동안 철학에 몰두하면서
신인류 ‘코스미안’사상 창시
1230ts@gmail.com
 

작성 2023.01.07 11:41 수정 2023.01.07 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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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