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명희의 인간로드] 최초의 슬기로운 인간 ‘해따라기’

전명희

처음 없는 처음, 이 광활한 우주를 떠돌다가 먼지보다 작은 푸른 별 지구에 우연히 들른 나는 한참을 눌러살다 보니 지구인들이 좋아졌다. 인간이라는 생물체의 매력에 푹 빠져 이제는 제대로 인간로드를 통해 인간탐험을 즐겨볼 생각이다.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게 나의 전부를 들어 타인의 전부와 만나고자 한다. 이 두근거림을 사랑한다. 두근거림은 인간에 대한 자각이며 은유다. 인간은 인식하는 존재다. 종교가 논리를 획득하지 못할지라도 또 과학이 마음을 발견하지 못한다 해도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거기 나를 닮은 최초의 누군가가 있을 테고 그 최초의 누군가로부터 미래의 누군가에게 우리의 유전자는 끊임없는 여행을 할 것이다. 이 여행은 결국 내가 나를 찾아가는 여행이 될 것이다. 

 

 

 

나는 삼백만 년 전 인간 ‘해따라기’다. 내 이름 앞에는 ‘최초의 인간’이라는 수식어가 붙지만, 그 최초란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모르는 것을 모르는 게 인간이다. 나는 모르는 것이 많아 궁금증이 폭발하는 이제 막 열여섯 살이 된 소년이다. 동물들의 낙원인 아프리카가 나의 고향이다. 지구의 일원으로서 나의 존재는 특별하지 않을뿐더러 결핍투성이의 원시적인 생물이다. 호랑이나 늑대 같은 특별한 지위를 갖지 못해 불안정하고 생존에 적합하지 못한 종이다. 독수리는 하늘을 지배하고 사자는 땅을 지배하며 상어는 바다를 지배하지만 인간인 우리는 자연이 버린 고아나 다름없다. 다른 동물과 생존경쟁에서 이길 수 있는 조건이 거의 없다. 유일한 장점이란 두 발로 걷기에 자유로운 손을 가진 것이다. 그 자유로운 손이 지구에서 가장 머리 좋은 동물로 거듭나게 되었다. 나는 단순하고 명쾌한 인간 중의 하나다. 낮에는 노동하고 밤에는 사유하는 생각하는 인간이다. 

 

자연은 인간을 결핍투성이로 만들었지만 결국 인간은 부단한 노력 끝에 자연의 선택을 받아서 살아남은 종이다. 우리 조상들은 날마다 살아남겠다는 생존본능에 따라 치열하게 살아남았다. 그렇게 노력하는 과정에서 자연에게 선택받은 유리한 품종이 되었다. 인간은 새로운 품종으로 거듭나기 위해 수많은 경쟁자를 살인했다. 인간의 살인은 진화하는데 유리한 고지를 점령했다. 내 유전자에는 살인의 추억과 살인 당하지 않을 처절한 고통의 기억이 공생한다. 우리는 이 지구에서 몇천 명도 안 되는 가장 나약한 종이다. 코끼리나 가젤, 사자나 늑대 같은 셀 수 없이 많은 종에 비하면 우린 연약하고 위태로운 종이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악함도 없고 선함도 없다. 그저 생존이라는 절체절명의 과제만 있다. 그것은 목적도 없고 의도도 없는 그저 직관적인 생명현상일 뿐이다. 우리의 본능은 생명이라는 환경에 적합하게 반응하며 자연의 법칙을 따라 점점 진보해 나가고 있다. 우리에게 자연은 곧 신이며 절대자다. 자연은 우리의 삶과 죽음을 관장하는 위대한 존재다. 

 

나는 푸른 들판을 한없이 달리는 걸 가장 좋아한다. 가젤과 달리기 시합할 때 심장은 팔딱팔딱 뛰지만 한바탕 달리고 나면 이 초원의 주인공이 된 것 같아 행복하다. 어머니는 내가 달리기할 때 항상 걱정한다. 사자나 늑대 같은 동물들에게 잡아 먹힐까 봐 못 하게 말리지만 힘센 동물들을 피하는 방법을 나는 잘 알고 있기에 걱정하지 않는다. 이 지구에서 생존에 가장 열악한 최악의 조건을 극복하고 살아남은 조상들의 유전자가 나를 지켜주었기에 나는 오늘 하루도 무사히 보낼 수 있었다. 먹고 일하고 놀고 자고 때때로 생각하는 것이 삶의 전부지만 나는 부족함이 없다. 그저 본능에 충실하며 때때로 생각과 사유를 통해 점진적인 인간이 되어가고 있을 뿐이다. 

 

나의 본능은 생존을 위해 부단히 진화했다. 살아남는 것이 곧 태어난 이유이기 때문이다. 다른 부족들이 쳐들어오면 물리쳐야 하고 동물들로부터 가족을 지켜야 하는 고된 삶을 살아야 하지만 그건 어른이 돼서 걱정해도 되는 일이다. 나는 이 초원에서 단순하고 명쾌하게 살아가는 것밖에 모른다. 모르므로 행복하다. 이 땅이 얼마나 큰지 얼마나 많은 생명체가 사는지 얼마나 아름다운 곳인지 모른다. 비가 많이 오고 먹을 것이 풍부한 이 아프리카에서 걱정 없이 사는 이 단순함이 나의 최고의 무기이며 생존기술이다. 이 생존기술은 내가 동물의 범주 안에서 인간이라는 카테고리로 진보했다는 것이다. 이건 대단한 발전이며 경이로운 사건이다. 

 

최초의 인류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나는 고릴라나 오랑우탄처럼 온종일 먹는 일에 집중하지 않고 자유로운 두 손으로 노동을 즐기며 산다. 단순하지만 생각과 사색도 즐긴다. 나는 이 땅에 왜 태어났는지 저 하늘에는 무엇이 있는지 궁금해 죽을 지경이다. 혹시 저 하늘 누군가가 실수로 나 같은 인간을 탄생시킨 게 아닌가 하는 의심도 한다. 인간은 다른 동물과 공생하면서도 질적으로 다르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나는 밤에는 밤하늘의 별들을 세고 낮에는 태양을 따라 신나게 달린다. 그래서 사람들은 나를 해따라기라고 부른다. 해를 따라 한없이 달리다 보면 행복하다. 저 해가 나의 우상이다. 해는 나를 위해 존재한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이렇게 아름다운 땅을 주었겠는가. 

 

인간의 생각은 신비롭다 못해 경이롭다. 그러나 사자도 독수리도 그리고 개미도 물고기도 인간만큼 신비롭고 경이로우며 아름답다는 걸 나는 안다. 그들은 인간의 적이자 친구이며 자연의 구성원이기 때문이다. 그들도 나만큼이나 찬란하다. 모든 동물은 생명이라는 위대한 연결고리로 서로 소통하는 존재이다. 그러하기에 나는 그들이 이 땅에서 함께 살아가는 것에 불편함이 없다. 만약 동물들이 없었다면 심심하고 지루했을 것이다. 그들은 인간인 우리보다 수적으로 월등히 많지만 우리는 서로 싸우지 않고 잘 살아가고 있다. 다만 생존을 위해 다른 동물을 죽을 뿐이다. 나는 내 생각을 신뢰하고 직감을 믿는다. 내 생각과 직감은 사냥할 때 가장 빛난다. 단 한 번의 사냥에 성공하면 우리 가족은 축제의 춤을 춘다. 하늘신과 땅신에게 감사의 제물을 올리고 배불리 실컷 먹을 수 있기에 이보다 더 행복한 일이 어디 있겠는가. 

 

나는 내일 일은 내일 생각한다. 비가 오든 바람이 불든 별이 떨어지든 누군가가 태어나든 누군가가 죽든 걱정하지 않는다. 오늘만 있으면 된다. 어머니도 그랬고 어머니의 어머니도 그랬다. 모든 일은 자연의 일이라고 어머니는 말씀하셨다. 그러니 걱정할 일도 걱정하지 않을 일도 없다고 하셨다. 사자가 내일을 걱정하지 않는 것처럼, 늑대가 걱정 없이 들판을 달리는 것처럼, 나비가 하늘을 걱정 없이 나는 것처럼 우리도 걱정 같은 것 없이 오늘을 산다. 태풍에 휘말려 죽는다 해도 그건 자연의 일이다. 병들어 죽거나 수명이 다해 죽어도 그건 자연의 일인 것처럼 이 땅의 모든 일은 저 하늘이 알아서 하고 자연이 알아서 하는 일이라고 믿고 있다. 믿음은 우리 가족을 지키는 원동력이며 우리 부족이 멸망하지 않고 살아남는 방법이다. 믿음은 가능성으로 직접 연결되는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어머니도 그랬고 어머니의 어머니도 그랬으며 모든 어머니의 조상도 그랬을 것이다. 

 

나는 오늘도 해를 따라 달렸다. 무작정 달렸다. 해는 우리를 위해 존재한다. 어머니는 그런 해를 경배했다. 나도 해를 경배했다. 그래서 나는 해따라기가 되었다. 우리의 삶은 짧고 이 땅의 해는 영원할 것이다. 그러므로 이 지구에 누가 먼저 태어났는지 누가 나중에 태어났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오늘 이 초원에서 굶지 않고 하루를 보냈고 어머니는 동생들을 돌보며 하루를 살아냈다. 그것만이 중요한 진실이다. 최초의 생명 그 너머 우주의 궁극적 진실까지 내 몸을 관통해 흐르는 무한한 가능성이 저 강물처럼 도도하게 흐를 것이란 사실을 믿는다. 내 조상의 유전자가 그러했듯이 내 유전자도 스스로 복제하며 끝없이 달려갈 것이다. 지구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는 최초의 인간이다. 누군가의 디자인도 없고 의도도 없는 자연시스템에서 자연대로 살았던 나는 그래서 너며 우리다. 우리의 인간로드는 끝없이 계속될 것이다. 

 

[전명희]

서울대학교에서 철학을 가르치다 그만두고

‘밖철학연구소’를 설립해 연구에 몰두했지만

철학 없는 철학이 진정한 철학임을 깨달아

자유로운 떠돌이 여행자가 된 무소유이스트

이메일 jmh1016@yahoo.com

 

작성 2023.01.09 11:49 수정 2023.01.09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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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