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은숙 칼럼] 살아있는 화요일입니다

민은숙

마음 놓고 사람들과 모임을 한 지가 언제인지 까마득하다. 회사에서도 회식을 되도록 자제하고 전에는 전체 직원들이 할 때도 있었지만 이제는 한다 해도 각개전투를 한다. 게다가 건강에 예민하게 작동하는 레이다를 최근에 탑재하게 되어 코로나가 싫지만, 한편으로는 고맙다고 해야 하나 싶기도 하다.

 

코로나를 알게 된 지 얼마 되지 않아 마스크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았던 차에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기다리고 있었다. 막내가 암 선고를 받은 것이다. 암이 현대인에게 흔한 3대 질병이라고 하지만 위기의식을 가지진 못했었다. 말로만 듣던 몸의 재해를 실제로 피붙이가 저격당했다는 것을 인지하고 가슴이 무너졌다.

 

다른 자매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우리 자매는 특별한 존재라고 말할 수 있다. 평범하지 않았던 어린 시절을 함께 헤쳐 살아남은 전우애를 가진 피를 나눈 자매이기 때문이다. 우리를 아는 주위 사람들은 부럽다며 어째 그리 사이가 좋냐고 이구동성 하니 말이다.

 

어릴 때는 일방적으로 챙겨줘야만 하는 동생이 있어서 또래 친구들과 잠시 허락된 교류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 어떨 때는 내 몸에서 떨어지지 않는 거머리를 달고 사는 기분이기도 했다.

 

친구들과 어디든 갈라치면 울면서 따라오기에 결국 어울릴 수가 없을 때도 많았다. 6살 어린 동생이 어느새 커서 같이 세상을 이야기할 수 있는 연륜이 쌓였다. 뭐에 꽂히면 몰입하는 내게 세상을 넓게 보는 혜안으로 따끔한 일침을 날리기도 한다. 결혼생활에 지칠 때는 서로에게 위로를 주고 피난처가 되어 줄 수 있었다. 조력자이자 조언자로서 평생 친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소중한 사람에게 인생 최악의 대적해야 할 존재가 나타난 것이었다.

 

며칠을 가슴을 치며 울부짖다가 정신을 차렸다. 인터넷을 검색하여 먼저 ‘유방암 이야기’란 카페에 가입했다. 올라온 가입자 수를 보니 암 환자가 정말 많다는 것이 실감 되었다. 하루에도 수없이 신규가입자가 늘어났다. 유방암에 대해 읽으며 공부하고 공책에 적었다. 암 타입이 정말 많았다. 호르몬 양성, 삼중 음성, 삼중 양성, 허투 양성 등 공부해야 할 것이 산더미였다. 잠보가 잠도 잊은 채 공부했다. 지피지기면 백전불패란 말이 있잖은가.

 

동생의 암은 한쪽은 삼중음성, 다른 쪽은 호르몬 양성이라고 했다. 수술 전에 8차에 걸친 선 항암을 해야만 했다. AC와 4회, TC 4회에 대한 부작용에 대해 적고 숙지했다. 아픈 동생은 치료에만 전념하도록 도와야 했기에. 일명 빨간약이라는 아드레마이신이라 불리는 AC는 정상세포까지 활동을 막는 것으로 탈모를 유발했다. 도세탁셀이라는 TC는 근육통을 유발하는 것 같았다. AC로 선 항암에 대한 출발선을 끊었다. 

 

호중구가 문제가 되어 항암 할 때마다 ‘뉴라스타’ 주사를 맞아야 했다. 동생을 유달리 힘들게 했다. 공부하고 대처를 해서 두 번째 호중구 주사를 맞을 때는 조금 수월하게 지나갈 수가 있었다. 동생이 새로운 통증이나 몸의 이상증세를 이야기하면 왜 그런지 안심시켜 줄 수가 있었다. 동생은 언니가 공부를 많이 했다면서 의사보다 더 대처가 제대로이며 제 신랑은 아무것도 모른다고 투덜거렸다.

 

동생 덕에 여러 가지 음식에 도전해 보기도 했다. 요리를 좋아하지 않았지만 생전 처음 죽을 만들어보았고, 닭곰탕이란 것을 끓여보기도 했다. 어쩌겠는가? 항암을 해야 수술로 암 덩어리를 제거할 수가 있는데, 그깟 요리가 대수랴. 나이는 찼지만, 요리에 도통 관심이 없어서인지 젬병이다. 너무 잘 드는 칼로 베어서 꿰매기도 했다. 데어서 흉터가 생기기도 했다. 안 하던 짓을 하니 들통이 제대로 났다.

 

새롭게 나타나는 항암의 부작용으로 고생하며 이른바 ‘항암산’ 넘기 위해 우리는 고군분투하였고 수술을 할 수가 있었다. 카페에서 말하기를 수술이 가장 쉬웠다고 하던데 정말 그랬다. 수술하는 동안 종교도 없는데 온갖 신에게 마음속으로 간절한 기도를 올렸다. 시간은 흘러 외과의의 실수로 또 한 번의 수술을 하러 갈 때의 동생의 얼굴을 잊을 수가 없다. 학교에 입학할 딸아이를 다시 볼 수 있을까 싶었는지 그 얼굴에 내가 목이 메었다. 딸아이도 두 번째로 부모가 집을 비우니 잠시도 쉬지 않고 눈물을 흘려서 달래기가 여간 고역이 아니었다.

 

이번엔 방사가 마중 나와 있었다. 매일 해야 한다. 부작용을 이미 꿴 나는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고 지레 겁을 먹었는데 다행히도 무탈하게 지나간다. 관절통을 가져와 몸에서 소리가 났던 젤로다 8차도 생각보다 수월하게 마쳤다. 지금은 페마라와 졸라덱스로 호르몬치료를 병행하고 있고, 표준치료는 끝났다고 볼 수 있다.

 

생각했던 것보다 복잡하고 치료 방법과 절차도 쉽지 않았다. 치료할 때마다 오송에서 KTX를 타고 이동하거나 자가용을 이용했다. KTX를 타고 갈 때마다 평생 서울 온 것보다 더 많이 왔다. 이것이 여행이라면 좋았겠다고 생각했다. 유방암 3기라는 훈장을 달고 삶을 지속할 수 있음에 그저 납작 엎드려 감사해야 할 판이다. 양쪽 어깨에 혈압을 잴 수도, 피를 뽑아낼 수도 없는 상흔이 남았다. 

 

화요시장에 가기로 했다. 너무 이르지 않을까 싶은 10시 반에 시장에 도착했다. 입구의 떡집은 이제 막 떡을 진열하기 시작한다. 옆의 반찬 구역은 줄을 서서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다. 얼른 그 줄에 합류해서 순서를 기다렸다. 열무김치를 가리키면서 건더기는 계란프라이와 비벼 먹으면 꿀맛이고, 국물은 체에 걸러서 국수를 말아먹으면 끝내준다며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한다. 선뜻 동조하지 않자 물김치를 사주겠다며 형부가 좋아할 것이라고 장담한다. 대신 두부무침, 문어볶음, 파김치를 사서 반씩 나누자고 권했다. 

 

과일 구역에 가서 바나나, 통통한 토마토, 딸기, 부사 한 봉지를 구매했다. 두 손 가득 무겁게 들었다. 동생과 이런저런 이야기꽃을 피우며 걸어오는 길이 즐겁게만 느껴졌다. 이렇게 평온하게 보낼 수 있는 일상이 너무도 소중하게 다가왔다.

 

불과 2년 전에 갑자기 불어닥친 거대한 소용돌이 앞에서 좌절했던 칠흑 같았던 시간. 생사의 기암절벽에서 다시 평범한 일상을 보낼 수 있을 거란 생각은 접어 두었었다. 쉽지 않았던 치료의 터널을 지나왔기에 전과는 다르게 다가오는 햇살, 다시 돋아나는 새순과 꽃망울을 보며 자연의 생명력과 재생력에 위대함이 느껴진다. 

 

[민은숙]

충북 청주 출생

제6회 전국여성 문학 대전 수상

2022 문화의 도시 홍성 디카시 수상

제4회 코스미안상 수상

열린동해문학 사무국장

이메일 sylvie70@naver.com

 

작성 2023.01.11 10:56 수정 2023.01.11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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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