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필의 인문학여행] “숙종은 당쟁을 즐기다”

예학의 바른세상

김용필

 (禮學의 나라는 가례가 바로 서고 국례가 바로 선 나라다)

 

숙종은 당쟁을 교묘하게 이용하여 반대파 숙청으로 정권을 잡게 해주고 실리를 챙겼다. 기사환국으로 남인에게, 갑술환국으로 소론에게, 신임사화로 남인에게, 정권을 물러주는 수완을 발휘하여 당쟁을 즐기면서 왕권을 강화하였다.

 

예학의 세상을 만들겠다는 사계 김장생의 광산 김씨 김만중 가와 세종대왕 후손 이이명 가는 예송논쟁의 환국으로 3족이 멸하는 불행을 맞았다. 이이명은 김만중의 사위였다. 김만중은 예학의 세상을 만들려고 하였고 이이명은 국부론을 주장한 개혁이 숙종 임금의 비윌 거슬렀다. 

 

숙종은 3차에 걸쳐 김만중가의 12명, 이이명가는 27명이 죽거나 유배를 보냈다. 아버지 현종은 소통하는 왕이었다면 숙종은 칼을 든 왕이었다. 기사환국. 갑술환국, 경신대축척, 신임사화, 임인옥사을 정략적으로 이용하여 3,000여 명이 신하를 도륙 하였고 광산 김씨는 3차 환국으로 패가 되었다.

 

1. 김만중과 윤선도의 예송 논쟁

 

 “대감, 다 끝난 예송 문제를 다시 들고나오는 것은 임금을 능멸하는 것입니다.” 김만중이 윤선도에게 충고하였다.

 “잘못을 바로잡는 것이 바른 정치라네. 자네도 송시열을 두둔하는 겐가?” 

 

만중은 확실한 예학이 만들어지지 않았는데 국례를 예송으로 몰아가는 것은 잘못이니 정치적인 문제로 내세우지 말라는 경고였다.

 

 “뭐라, 젊은 신하가 너무 건방지군, 감히 누구에게 충고하는 건가?”

 “대감은 행투리는 마치 노망이 든 노인네 같습니다. ”

 “네 이놈, 망령이라니? 내 나이가 너보다 40년이나 많은 선배이다.”

 “나잇값을 못 하니 노망 부린다고 하는 것입니다.” 

 “어디서 함부로 입을 놀리느냐? 내가 왜 평생 귀양살이를 했는지 아느냐? 바로 너 같은 서인들 때문이야.”

 “그래서 내게 보복을 하는 것입니까?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라심입니다. 당신은 국가 재산을 훔쳐 숨긴 도둑입니다. 물론 궁녀까지 훔쳐 간 위인이잖아요. 당연히 극형을 받을 분이 살아있는 것이 화근입니다.”

 

김만중은 대감이 병자호란 때 인조 임금을 버리고 보길도로 도망간 위인이 어떻게 예송을 논하느냐고 따졌다.  

 

 “그 주둥아리 닫지 못할까?”

 “나이 든 원로면 똑바로 모범을 보이면서 사십시오. 대체 보길도에 숨긴 재산이 얼마입니까? 조사를 좀 해야겠습니다.” 

 

윤선도는 펄펄 뛰었다. 김만중은 그 자릴 피해 버렸다. 그러나 윤선도는 계속 예송을 정치적 문제로 비화시켰다. 윤선도는 송시열을 역적으로 몰아세워 죽여야 한다는 상소를 올렸다.

 

 ‘송시열의 말은 종묘와 사직을 관장하는 것을 장자 임금만이 할 수 있고 차자 왕은 종묘사직을 올릴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일국이 왕을 종통과 적통을 나누어 구분하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왕통을 무시하는 송시열은 역적이니 마땅히 죽여야 합니다.’ 

 

 그의 과격한 상소는 서인들을 분노케 하였다. 

 

 “선왕이 장자가 아닌 아들에게 왕위를 물려주었다고 해서 종통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늙은이 망령은 그만하시오.” 송준길이 울분을 토했다.

 

 “차자가 왕이 되면 왕이 아니라는 뜻인데 그런 가짜 임금에게 백성이 어떻게 충성할 것이며 그 자손을 어떻게 보존할 수 있는가?”윤선도가 되물었다.

 

 “당신은 할 말이 없지요. 나라가 위태로울 때 인조 임금을 버리고 도망간 신하가 아닙니까? 

 

궁중에서 빼돌린 금은보화와 궁녀들을 되돌려 내시오.” 

 

송준길이 윤선도를 물고 늘어졌다.  원래 윤선도와 송시열은 친구 사이였다. 광해군 때 송시열과 같이 이이첨을 탄핵했다가 윤선도는 유배를 갔고 송시열은 이이첨을 실각시킨 공로를 인정받아 높은 관직을 얻었다. 그리고 윤선도는 송시열과 같이 세자 효종의 스승이었다. 세자가 임금으로 즉위하면서 세자시강원의 사부로 송시열은 중용되었는데 윤선도는 송시열의 방해로 중용되지 못했다. 서인들이 일제히 단합해서 윤선도를 공격하였다. 김만중이 현종에게 윤선도의 예송 논쟁을 아뢰었다.
 

 “잔잔한 국정을 흔드는 윤선도를 처벌하십시오.” 현종은 김만중의 말을 들었다.

 “예송 논쟁으로 국정을 문란케 한 윤선도를 유형에 처한다.” 

 

현종의 발표에 영남 유생 1,700명이 송시열을 비난하였고 성균관 유생들도 시위하며 서인 정권의 압력에 대항하였다. 예송은 정치적인 논쟁으로 변하고 그로 인해 수많은 관리가 파직, 유배 가는 처단이 가해졌다. 남인 피해가 컸다. 제1차 예송이었다. 현종은 노론과 남인 수장들을 불러놓고 일렀다.

 

 “다시는 예송 문제로 논쟁을 벌이는 자는 엄벌에 처할 것이오.”

 

그런데 2차 예송(갑인예송)이 발생하였다. 김만중은 현종 임금이 숨겨 놓은 책사였다. 임금은 그의 말이라면 신뢰하였고 그는 스스럼없이 왕에게 직언하여 시정을 바로 잡곤 하였다. 그런데 어느 날 임금님과 상견하던 자리에서 의견이 극한 대립이 되면서 사이가 나빠졌다. 현종 14년 9월에 김만중이 북벌을 놓고 현종과 정면 대결하였다.

 

 “북벌 계획은 선왕이 추구한 정책입니다.” 서포의 주장이었다.

 “신료들의 반대를 어찌하겠소.”영의정 허적이 북벌을 중단하라고 명하였다. 

 “영의정 허적은 온갖 부패의 온상이니 탄핵 되어야 합니다.” 

 “뭐라. 허적이 잘하고 있는데 무슨 탄핵인가요?” 

 “그자는 반란 수괴자입니다.”게다가 북벌 중단 농간을 일으킨 자로 탄핵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북벌 중단은 내가 지시한 것이요.”현종이 발끈하였다. 

 “영의정 허적은 북벌 중단뿐 만 아니라 국례를 흐트러뜨리는 자입니다.” 

 “국례를 흐트러뜨림과 탄핵이 무슨 상관입니까?”현종은 신경질적으로 김만중의 고언을 무시했다.

 “온갖 부패의 온상인 그를 왜 두둔하시는 겁니까?”김만중은 굽힘없이 말했다.

 “그 태도는 임금을 능멸하는 짓이요. 감히 국정을 잘 운영하는 영의정을 탄핵하라는 것은 나를 불신하는 것입니다.”

 “세태를 똑바로 보십시오, 허적은 온갖 부정부패에 관여한 인물입니다.”

 “난 그 말을 수긍할 수가 없소이다.”

 허적은 1차 예송 때 당한 화를 보상받으려고 노론 인사의 뒷조사를 하면서 아무 죄도 없는 노론 인사들의 죄를 조작하고 다녔다.

 “분명히 잘못이 있는데 책임을 묻지 않는 것은 공정하지 못합니다.”

 “파면의 죄책 사유가 안 된다는 것입니다.”

 “왜, 부패한 영의정을 싸고도십니까? 백성들은 임금이 동조한 일이라고 책임을 지울 것입니다.”

 “네 이놈, 임금을 능멸하느냐?”현종이 크게 노했다.

 “능멸이 아니고 임금의 편향을 고하는 것입니다. 편견 없는 바른 식견을 가지고 백성을 통찰하라는 말씀입니다. 미꾸라지 같은 영의정 때문에 국정이 더럽혀지고 임금님께서 해를 입을까 두려워서 하는 소립니다.”

 “입 닥치지 못할까?”

 “제 말은 임금님과 허적이 한통속이라는 것입니다.”무서운 반발이었다. 

 “네 이놈, 대체 네 목숨이 몇 개인가?”

 “그럼 내가 그자를 내칠 것입니다.”

 “네가 임금이냐? 어떻게 영의정을 내치느냐?”

 “잘못했으니 탄핵해서 물러나게 해야죠.”

 “그럼 내가 잘못하면 나도 물러나게 하겠구나?”

현종의 돌발적인 분노에 김만중은 어안이 벙벙하였다. 

 “어떻게 바른말을 하는 신하를 죄인 취급하는 것입니까?”

 “네 이놈. 서포. 무례하구나, 임금 앞에서 할 말이 있고 안 할 말이 있는 법이다. 예학을 숭상하는 놈이, 너를 어여삐 여겨 가깝게 했는데 믿을 자가 아니구나.” 

 “전하, 그 말씀은 저를......”

 “난 네놈을 믿을 수가 없다. 네놈에게 임금을 능멸한 죄를 물을 것이다. 저놈을 강원도 고성(철원)으로 정배시켜라.”

 

그날 김만중은 임금을 능멸한 죄로 파직시켜 유배를 보냈다. 현종은 남인과 서인을 번갈아 이권을 주었는데 이로 하여금 당쟁이 더 심각해졌다. 그런데 현종의 어머니 모후가 파란만장한 인생을 마감하였다. 

현종은 예학을 존중한 임금이었다. 역사상 궁녀를 한명도 들이지 않은 올곧은 임금이었다. 왕비인 명성왕후 역시 국례를 잘 지키는 중전이었다. 

 

효종은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갔다가 수난을 겪으면서 현지에서 현종을 낳았다. 모후가 죽자 다시 2차 예송으로 현종은 정신적인 고통에 시달렸다. 예송 논쟁 때문에 고통을 받은 왕은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다. 

 

 “이런 때 김만중이 있었더라면 위안이 되었을 텐데........”라고 술회하였다. 현종은 심한 두통과 신경쇠약으로 고통을 받았다. 

 “여봐라, 김만중을 유배에서 풀어 내게로 데리고 오너라.”

 

그날 밤 현종은 조용히 어머니 명성황후가 죽던 그해 1674년에 승하하였다. 유배지에서 현종의 승하 소식을 듣고 김만중은 슬프게 울었다. 윤선도가 김만중을 찾아갔다.

 

 “어찌 오셨습니까?”

 “사과하려고 왔네. 자네 모친이 잘 계신다는 말을 들었네. 얼마나 상심이 클까?”

 “병 주고 약 주는 겁니까? 대감 때문에 우리 가문이 박살이 났어요. 12명이 죽거나 유배지에 가 있습니다.”

 “자네는 내 심정을 이해 못 할 걸세. 나도 그렇게 당했네.”

 광산 김씨와 파평 윤씨는 친척이었다.

 “난 대감을 철천지원수로 생각합니다.”

 “미안하네. 송시열을 미워했을 뿐 자네와 자네 집안을 미워하지 않았네.”

 “그러나 전 대감을 저주합니다. 대감이 남인의 수령으로 우리 가문을 박살을 냈지요. 내가 이렇게 유배를 와 있는 것도 대감이 노림수였습니다.”

 “고정하게, 자네의 어머니와 난 같은 윤씨 일가라네. 그런데 난 남인이고 자녀는 서인이기 때문이야. 운명의 장난이었음을 사과하네.”

 “당신은 시대의 악인입니다. 그런데 저의 자당은 대감을 미워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난 대감을 평생 저주할 것입니다.”

 “송시열을 미워했지만 숙부 김익훈과 자네 형 서석과 서포는 미워하지 않았네.” 

 “헛소리 마세요. 대감의 상소로 우리 가문이 역풍을 맞았습니다.”

 “미안하네, 우린 나라를 걱정하는 문인이야. 내가 자네를 구명해 주겠네.”윤선도는 진정성 있게 사죄하였다.

 “싫습니다.”

 “자네의 소설 사씨남정기를 읽었는데 자칫 잘 못 하면 임금의 화를 돋울지 몰라. 그래서인데 소설을 거두어 주게.”

 “아닙니다. 문학을 좋아하시는 분께서 창작된 작품을 그렇게 헐뜯습니까? 그 소설은 분명히 소설일 뿐입니다.”

 “풍자성이 너무 강하단 말일세.”

 “함부로 내 소설을 평하지 마십시오.”

 “그렇다면 내 충고가 도움이 안 되겠구먼.”

 “대감, 남인 정권이 그리 오래갈 것 같습니까? 아닙니다. 임금의 마음은 조령모개처럼 변합니다. 숙종 임금은 바로 권모술수에 능한 분이십니다. 당쟁을 즐기는 분이십니다. 그러니 대감도 예학의 도를 지키십시오.”

 “알았네. 그럼 그런 문인으로 살게나.”

 “네, 난 평생 대감을 증오하고 내 손으로 대감의 명을 재촉할 것입니다.”

 

김만중의 날을 세우자 윤선도는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2. 군왕은 만백성의 어버이다

 

 (당파를 조장하여 약한 쪽에 손을 들어주고 왕권을 강화하였다. 예학의 세상을 주도한 광산 김씨 가는 3차례 환국의 피해로 가문이 사멸하였다. 서포의 어머니 윤씨 부인이 숙종 임금께 사적인 편지를 올렸다.)

 

- 군왕전 상서-

전하 옥체만온 하신지요. 초야 노모 자식 걱정에 염치 불고하고 올립니다. 자식이 잘못됨은 어버이가 책임을 져야 하는 법, 잘못 가르쳐 생긴 것은 부모가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라 제게 책임을 물어주십시오. 그러나 잘못된 자식을 버리는 부모는 없습니다. 아무리 잘못을 저질렀다고 하더라도 부모에겐 사랑스러운 자식입니다. 마찬가지로 신하가 잘못했다고 내치는 것은 잘못입니다. 그 잘못을 가르쳐 거듭나게 하는 것이 임금이나 부모의 역할입니다.

 

임금은 만백성의 어버이시기에 만백성으로부터 존경을 받고 백성이 잘못되면 가르쳐 잘 되게 해야 합니다. 신하는 임금의 신복이니만큼 더욱 보살펴 주셔야 합니다. 평소에 임금을 잘 보필하였으나 순간의 잘못이나 주변의 나쁜 영향으로 폐를 끼쳤다고 해서 그 이유를 밝혀 타이르기 전에 내치는 것은 잘못입니다. 

 

우리 광산 김씨 가문만 해도 그렇습니다. 모두 나라를 위하여 몸 바친 충신들인데 어떻게 정권을 뒤집어 내 자손들을 9명이나 귀양을 보낸단 말입니까. 굽어살펴 주시오. 잘못은 당파 싸움의 희생인데 억울한 신하가 당쟁의 적으로 휘말려 귀양 가는 것은 잘못입니다. 옳고 그름을 따지기 전에 당파의 병폐를 지적하거늘 당권을 쥔 자의 실권이 기준 없이 종횡무진 행패를 부린다면 나라는 어디로 가는 것이며 누가 그것을 잡아줘야 합니까? 당연히 임금님이 살펴 억울한 자가 없도록 해 줘야 합니다. 임금은 만백성의 어버이시고 신하의 맹수기에 어린 신하를 보살펴 줘야 하는 것이 임금입니다. 

 

아무튼 귀양 간 자식들을 걱정하는 어머니의 심정을 굽어살피시어 한 번만 용서해주시면 이 할미가 잘 타일러서 절대 나라에 반역되는 일은 없게 할 것입니다. 어른이 아랫사람을 살펴 주심은 저의 할머니 정혜옹주가 내게 가르친 부덕이었습니다. 부디 선처해 주십시오.-

 

 -숙종이 윤씨 부인에게 보낸 답서-

신하가 유배를 가는 것은 존엄한 국법을 어긴 죄에 대한 책임을 지운 것입니다. 그런 죄인은 국법으로 다스렸을 뿐 임금이 마음대로 죄를 사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일정 기간 죗값을 치르면 석방될 것입니다.-

 

 -윤씨 부인이 다시 올린 편지-

그동안 나라를 위하여 노력하고 일한 공이 있는데 그 공으로 지은 죄를 사할 수 있다고 봅니다. 자식들이 유배를 간 것은 국기를 어지럽힌 대역죄가 아니고 다만 당쟁의 희생이란 것을 감안하시어 국정에 사사로운 힘이 개입되어선 안 되겠지만 이번 일처럼 작은 죄를 지었다고 생각하는데 엄벌하는 것은 인재를 망치는 것입니다. 일례로 당론에 따라 당파의 권력에 따라 죄인이 생긴다면 누군들 죄인 아닌 자가 없으면 누가 언제 또 그런 죄를 지어 귀양을 갈지 모르는 애매모호한 국법은 시정하여야 한다고 봅니다. 당쟁은 이념을 달리한 위정자들이 파당을 만들어 득세하려는 것인데 임금이 휘둘리거나 이것을 이용하여 정권을 바꾸고 반대당을 유배 보내는 병폐는 없어야 한다고 봅니다. 예학이 바로 서는 나라가 부강합니다. 사례는 존엄한데 국례가 엉망이니 일어나는 병폐입니다.-윤씨 부인의 답신은 날카로웠다. 

 

-숙종이 답서-

귀댁의 자손들이 너무 잘 나서 생긴 일이니 벌을 달게 받아야 합니다. 기다리세요. 기다리면 돌아올 것입니다.

 

-윤씨 부인 답서- 

 우리 할머니 정혜옹주는 예학의 도리를 가르치면서 지도자는 초지일관 믿음이 하나이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임금이 변덕스러워 이리 끌리고 저리 끌리며 신하는 무엇을 따라야 합니까? 죽을 각오로 쓰는 글이니 살펴 주십시오.

 

-숙종의 답서-

처가의 자식들은 하나같이 국가에 반기를 드는 속성을 가졌답니다. 그 것은 예학에 먹칠하는 행윕니다. 예학을 잘못 배웠나 봅니다.

 

윤씨 부인은 속말로 뇌아렸다.‘못난 군주 같으니. 어쩔 수가 없구먼. 앞으로 더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어 나갈 지........’

 

 

[김용필]

KBS 교육방송극작가

한국소설가협회 감사

한국문인협회 이사

한국문인협회 마포지부 회장

문공부 우수도서선정(화엄경)

한국소설작가상(대하소설-연해주 전5권)

김용필 danmoon@hanmail.net

 

작성 2023.01.20 10:32 수정 2023.01.20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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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