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고> 양희석(전국무총리실 부이사관>
정월 초하루에 눈이 많이 오면 서설(瑞雪), 말 그대로 상서로운 징조로 여겨 왔습니다.
하얀 눈은 새로운 시작을 의미하기도 하지요.
조선시대에는 “12월(음력)에 눈이 많이 내리면 이듬해 강수량이 적당하고 일조량이 좋아 풍년이 온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계묘년, 올 겨울에는 소담스럽게 눈이 많이 내려 새로운 기분으로 설날을 맞이하게 된 것은 매우 기분 좋은 일입니다.
우리의 옛 선현들은 눈에서도 좋은 일이라 여기며 많은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첫째가 위중(爲重)이라 하여 사람을 신중하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눈이 쌓이면 바깥출입이 어려워져 집에서 머물게 되면서 명상을 하는 등 행동거지가 신중해 진다는 것입니다.
두번째가 위의(爲誼)라 하여 사람들 사이에 인정을 더 두텁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눈이 쌓여 바깥출입이 뜸해지면서 서로를 그리워하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세번째는 위범(爲凡)이라 하여 사람들의 마음을 대범하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눈이 쌓이면 세상 더러운 것, 사소한 것들을 모두 묻어버리기 때문입니다.
네 번째가 위축(爲蓄)이라 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아끼고 비축하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눈에 대비하여 땔감이나 먹을 것을 준비하게 하여 미리미리 대비토록 하는 것입니다.
다섯 번째는 위연(爲娟)이라 하여 여인들을 더욱 예쁘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옛날과는 다른 세상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겐 실감이 나지 않을 수 있겠지만 그래도 여인들이 예뻐지는 위연(爲娟)만은 지금도 그대로인 것 같습니다.

아무튼 이모저모 뜯어 분석해 풀어 놓은 선현들의 지혜가 놀랍고 재미있습니다.
태종 이방원을 설레게 한 첫눈에 대한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몸에 좋은 약이라 태상왕께 바치란 명을 받고 왔습니다.” (1418년 10월 27일 조선의 수도 한양) 태종 이방원의 부하가 ‘약’이 들었다는 작은 그릇을 들고 정종을 찾아갔습니다.
‘당장 저놈을 잡아라’ 정종의 말에 그의 신하가 이방원의 부하를 쫓기 시작합니다.
어명을 받아 이를 뒤쫓는 난데없는 추격전이 벌어진 것입니다. 혹시 그릇에 독약이 들어서였을까요?
그릇에 담긴 것은 다름 아닌 ‘첫 눈’이었어요. “첫 눈을 받은 사람은 한턱을 내야한다”는 고려시대의 풍습에 동생인 태종이 장난을 친 것입니다.
정종이 찾아온 신하를 잡아 돌려보내면 반대로 태종이 정종에게 한턱을 내야 했기에 정종이 그릇을 가져온 사람을 잡으라고 한 건 그릇 안에 들어있던 게 첫 눈임을 알았기 때문이지요. ‘호랑이 임금’의 대명사 태종 이방원도 첫 눈이 올 땐 설렜던 모양입니다.
우리조상들은 겨울철 내리는 눈을 보고 풍년과 흉년을 점치기도 하고, 낭만을 즐겼고, 눈이 많이 오면 생활이 불편하여 좋지 않다는 부정적인 생각보다는 대범하고, 서로 깊은 정을 나누며 절제하며 준비하는 삶을 살아가려는 긍정적인 생각으로 바라보는 지혜를 엿볼 수 있습니다.
겨울철 남이섬은 동남아 관광객들이 많이 찾아온다고 합니다.
드라마 ‘겨울연가’ 촬영지이기도 하지만 화면에 “눈 오는 모습, 눈 쌓인 모습을 상상하며 찾아온다”고 합니다.
수도권 근교에 눈 쌓인 산과 계곡을 구경할 수 있는 지역으로 ‘가평처럼 좋은 곳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계묘년 새해 설날을 맞았습니다. 지난 한 해는 도덕성이 실종되는 등 우리사회의 온갖 추(醜)한 모습들이 드러난 해 였습니다. 새해에는 추함을 다 씻어 버리고 코로나 펜데믹의 긴 터널을 지나 새롭게 출발하는 순결한 한해가 되면 좋겠습니다.
소복이 내린 흰 눈을 바라보며 잠시라도 세상 모든 것과 단절하여 시름을 잊고자 눈에 관한 이런저런 생각을 해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