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굴 안에 죄수들이 갇혀 있다. 이들은 오직 맞은편 동굴 벽에 있는 그림자만 볼 수 있도록 온몸과 목이 사슬에 묶여 고정된 상태이다. 죄수들의 뒤에 있는 장벽 위에서 사람들이 모닥불을 피워놓고 그 앞에서 그림자놀이를 하고 있다. 죄수들이 보고 있는 그림자의 정체가 바로 이것이다. 그러나 평생 벽만 보고 살아온 죄수들은 등 뒤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에 대해서 전혀 알지 못하고, 심지어 자신들이 묶여 있다는 사실조차 느끼지 못한다. 그리고 자신들이 보고 있는 그림자들이 이 세상의 전부라고 믿는다. 그런데 한 죄수가 사슬에서 풀려나 동굴 밖으로 끌려 나간다. 그 죄수는 지금까지 보아온 그림자들이 모두 실물이 아니라는 것도 깨닫는다. 동굴 밖 세상을 보고, 모닥불이 아닌 진짜 태양 빛도 느끼게 된다. 그 후 그가 다시 동굴 안으로 돌아온다. 그가 아직 묶여 있는 죄수들에게 장벽 뒤의 세상 이야기를 해준다면, 그의 말을 선뜻 받아들이기보다 오히려 그를 조롱할 것이다.
- 플라톤, <국가론>에서
고대 그리스의 철인 플라톤은 ‘동굴의 비유’를 통해 우리에게 이 세상은 가상세계이고 실재세계, 이데아는 따로 있다고 말한다. 이 생각이 오랫동안 서양의 사상을 지배했다. 가상과 실재,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세상은 가상이고 실재는 우리의 감각이 아닌 이성에 의해 알 수 있는 세계다.
동양은 이와 달리 가상과 실재를 별개로 보지 않았다. 동양에서도 플라톤이 이데아라고 말할 수 있는 도(道)라는 게 있다. 하지만 도에 의해 생성된 삼라만상을 가상으로 보지 않는다. 도가 펼쳐져 삼라만상이 되었으니까 그 둘을 하나로 보는 것이다.
그러다 서양은 근대에 와서 이 세상을 긍정하기 시작했다. 신이 죽은 자리에 인간이 들어섰다. 인간이 이 세상의 중심이 되어 이 세상을 지상낙원으로 만들어갔다. 눈에 보이는 자연, 물질이 실재가 되었다.
그러다 물질이 숭배의 대상이 되었다. 물질의 노예가 되어버린 인간, 공상과학영화 ‘메트릭스’에서 저항군 지도자 모피어스는 네오에게 다음과 같이 묻는다.
“너무나 현실 같은 꿈을 꾸어본 적이 있나? 만약 그 꿈에서 깨어나지 못한다면, 꿈과 현실을 어떻게 구분하겠나?”
모피어스는 네오에게 빨간약과 파란약을 내밀며 이렇게 말한다. “파란약을 먹으면 너는 원래의 자리로 아무 일 없었던 듯이 돌아간다. 빨간약을 삼키면 감당키 어려운 세상이 눈 앞에 펼쳐질 거야.”
빨간약을 먹은 네오는 자신이 속한 세계의 진실을 깨닫게 된다. 모피어스가 인사를 건넨다.
“진실의 사막에 온 것을 환영합니다.”
진실의 사막은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현실의 세상이다. 항상 힘겹게 길을 가야하고 목이 마른 세상이다. 하지만 이 세계를 온전히 받아들이면 큰 고통 속에 큰 기쁨이 있다. 우리는 고통이 나쁘다고 생각한다.
고통을 없애고 기쁨만 가득한 세상, 이런 세상은 허상이다. 커피에 취하고, 욕심에 취하고, 술과 마약에 취한 세상이다. 우리는 늘 깨어있어야 한다. 우리 안에는 영혼이 있어 육체의 고통을 버무려 기쁨으로 화하게 한다.
우리는 이 기적의 힘을 몰라 항상 고통을 피하려 하고 몸에 온갖 쾌락의 자극을 주려한다. 우리는 네오처럼 ‘무지의 행복’을 거부해야 한다. 이 세상은 욕심에 취해서 보면 가상의 세계이지만, 욕심을 비운 마음으로 보면 실재의 세계다.
실재의 세계는 우리의 영혼이 아름답게 가꾸어 가야 할 사막이다. 사막에서 흠뻑 땀을 흘리고 오아시스에서 영원의 샘물을 마셔야 한다.
[고석근]
수필가
인문학 강사
한국산문 신인상
제6회 민들레문학상 수상.
이메일: ksk21ccc-@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