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필의 인문학 여행] 무애가극단과 설총비결

원효와 설총

김용필

1. 원효와 해동공자  

(원효와 설총은 무애 평등과 백성을 위한 왕도정치를 폈던 사상가였다.)

 

가야의 유민으로 신라 왕족을 능가하는 걸출한 인물을 배출한 가문은 김유신 가문과 더불어 설씨가문이다. 화랑도를 창설한 설원량, 화엄경을 번역한 원효대사, 이두 창안의 해동공자 설총, 무열왕의 보라부인(첫 부인) 당나라 대장군 설영충, 당나라 여류시인 설요, 구화산 등신불 범각스님이 당대 최고 설씨가의 지성이었다. 

 

그중에서 원효와 설총은 통일신라의 최고 지성이며 사상의 대가였다. 원효는 무애가극단을 만들어 민중 불교개혁을 한 불교 사상가이고 설총은 이 두 글자를 만들고 설총비결로 민중 개혁하였던 유학자였다.

 

원효는 국승으로 설총은 해동공자란 유학자로 명성을 떨쳤다. 설총과 원효는 부자지간으로 닮은 것 같지만 전혀 닮지 않은 성격에 승려와 유학자란 종교적 이질감으로 대결 구도를 가졌다. 설총은 아버지를 존경했지만 한편으로 경계하였던 경쟁자였다. 그것은 유교와 불교라는 종교적 갈등이라기보다는 세상을 보는 시각이 달라도 너무 달랐다. 

 

원효는 국승이면서 궁중 불교를 거부하고 표주박을 두들기며 거리로 나와 무애가를 부르면 민생불교를 포교하는 소성거사였다. 설총은 해동공자란 유학의 대가지만 신라 왕족(진골) 사회에선 존경받지 못한 아웃사이더였다. 원효는 불교개혁을 부르짖었고 설총은 왕도정치를 실현한 유학자로 불승들의 비난을 받았다. 그러나 원효와 설총은 신라에서 가장 존경받는 지성이었다. 

 

2. 원효의 무애가극단(无涯歌舞團)

 

불교가 국교인 신라는 불승들이 움직이는 나라였다. 불교는 왕족과 귀족만 공유하는 종교일 뿐 일반 백성에겐 금기된 종교였다. 왕중 불교는 철저한 계급사회를 만들었다. 원효는 계급이 없이 누구나 불교를 접하는 평등한 세상을 희망했다. 계급과 신분 때문에 가짐과 못 가짐의 빈부 차가 나고 잘나고 못난 귀천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의 화를 쟁으로 푸는 화쟁사상을 부르짖었다.

 

원효는 무애가극단(无涯歌舞團)을 만들어 민생불교 포교와 불교개혁을 주도하였다. 걸인 옷을 입고 허리에 호리병을 차고 표주박을 두들기며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며 무애가를 부르고 무애무를 추며 광대놀이를 하면서 민중에게 불교를 전파하였다. 이런 노력으로 귀족의 불교가 점차 민중들 속으로 흘러들어 들어갔다. 

 

설총의 무애가극단은 풍물패였다. 무더운 여름에 마을 정자나무 밑에 많은 사람을 모여놓고 무애가극단이 광대놀이를 벌였다. 소성거사 원효는 무애무(无涯舞)를 춤추고 무애가(无涯歌)를 부르며 서민불교 포교를 하였다. 한바탕 무애가무단(无涯歌舞團) 놀이가 끝내고 원효는 대중 앞에 섰다.

 

“불교는 궁중에 있는 것이 아니고 정자나무 그늘에 있습니다. 이분은 황룡사에서 온 대안 스님이고 또 한 분은 사라사에서 온 혜공스님이며 전 국승 원효라고 합니다. 불교란 귀족들만의 종교가 아니고 서민의 불교이기도 합니다. 무애가와 무애무 춤은 여러분이 불자가 되었다는 진심입니다.”

 

원효는 일장 연설을 하였다. 원효는 절을 떠나 민중 속에서 무애가문단과 나무로 만든 표주박에 채색 비단으로 장식된 방울과 호리병을 흔들며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었다. 노래하고 춤추는 모습이 세상에 걸림이 없는 불자의 모습이었다. 밭 가는 농부와 길쌈하는 아낙들과 어린아이들 뛰어나와 삼태기를 쓰고 같이 표주박을 두들기고 동발이를 치고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며 불경을 게송 하였다.

 

국승 원효대사와 의상대사

 

원효와 의상은 통일신라의 최고 국승이었다. 신라의 모든 사찰과 불교 유물엔 원효와 의상이란 말이 붙는다. 원효사, 의상사, 원효봉, 의상봉. 그들은 문수보살과 보현 보살 같은 분이었다. 원효가 있는 곳에 의상이 있고 의상이 가는 곳엔 원효가 있었다. 둘 다 국승이지만 의상은 왕족 불승이고 원효는 서민 불승이었다. 

 

의상은 철저하게 궁중 불교를 강조하였지만 원효는 왕족만이 누리는 불교 교단을 거부하였다. 그가 파계승이 된 이유는 궁중 불교를 서민불교로 개혁하려는 몸부림이었다. 그의 민중 구제의 포교에 왕족과 귀족들의 거센 반발이 일어났다. 원효는 의상보다 높은 학식과 불교 철학을 가졌으나 계급 때문에 언제나 의상의 아래에 있었다. 

 

두 사람은 불승으로 친한 것 같지만 가장 경계하고 갈등하는 사이였다. 불교의 쌍벽을 이루는 승려라고 하지만 두 사람 사이엔 말 못 할 신분의 강이 흐르고 있었다. 어디를 가나 원효는 늘 의상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였다. 

 

의상 : 우린 같은 국승으로 막역한 사이지만 신분 관계는 막역할 수 없다. 

원효 : 불도를 신분으로 가름하지 말라. 

의상 : 신라의 불교는 왕족인 내가 지휘한다. 그대는 나의 지시대로 모든 사찰과 중들을 관리하라. 

원효 : 부처님의 말씀은 만인이 평등하다. 

의상 : 대승불교 나라에서는 국승은 임금과 다름없다. 

원효 : 국승이 왕족처럼 권력을 횡사하면 일반 대중은 불교문화를 접할 수가 없다.

 

늘 이렇게 부딪쳤다. 의상과 원효가 구법승으로 당나라 유학을 가다가 노숙을 하는데 어둠 속에서 바가지에 담긴 빗물을 마셨다. 아침에 보니 그것은 해골바가지에 고인 물이었다. 원효는 ‘이것이 진리다, 진리는 따로 있는 것이 아니고 내 생각에 있다. 수행은 마음에 있는 것이지 구도로 얻어지는 것은 아니다. 알고 모르는 것은 견해차며 마음먹기에 따라 법이 달라지는 것이다.’ 그는 깨달음을 얻고 그길로 구법 길을 포기하고 돌아왔고 의상은 당나라로 가서 구법수행을 마쳤다.

 

원효의 평등사상

 

‘일체에 걸림이 없는 사람은 단번에 생사를 벗어난다.’ 一切無寐人 一道出生死

뭇 중생의 마음은 순수하기에 걸림이 없는 것이니, 태연하기가 허공과 같고 잔잔한 바다와 같으므로 차별이 없다. 불교 철학은 중생을 구제하는 데 있고 화엄(華嚴)사상은 인간 평등에 있으며 평등에는 차별이 없어야 한다. 

 

일체유심진(一切唯心進), 일체무득인(一切無嘚忍), 일도 출생사(一道 出生死 ), 귀일심진(歸一心眞), 만법귀일 만행귀진 (萬法歸一 萬行歸眞)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렸다. 일체에 걸림이 없으면 죽고 사는 것은 한길 인생에서 벗어난다. 일심은 근본으로 돌아가고 만법은 하나로 통하고 만행은 진리로 통한다. 

 

원효의 일체중생의 평등은 모든 것이 하나인 일심(一心)사상이다. 

 

일심(一心)은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의 마음 통일을 의미하는 것이다. 일심의 마음이란 참됨과 거짓됨, 더러움과 깨끗함이 다른 것이 아니고 하나의 성품으로 보는 것이다. 모든 법은 성품이 있고 그 성품은 둘이 아니고 하나이다. 하나일 때 모든 법은 가장 진실한 것이다. 마음은 하나이고 둘이 없는데 어떻게 하나가 되며, 하나도 있지 않은데 둘이 어떻게 있겠는가? 중생과 부처의 만남이 하나이며 시작과 끝이 하나이다. 

 

원효의 화쟁사상 

 

(백 가지의 다른 주장이라도 공평하게 공정하면 모두가 하나로 화회된다.) 

화쟁은 정과 반의 쟁의가 합이다 : 불교엔 싸움은 없지만 다양한 주장이 있어서 하나가 되기 힘들다. 원효는 이러한 다양한 주장을 한 길로 이끌었다. 삶과 죽음, 움직임과 고요함의 상대적 이분법을 한 길로 통합시킨 것이다. 

 

대승기신론소 구법 : 고요한 바다에 바람 때문에 파도가 일어난다. 파도와 바닷물이 따로따로 일 뿐 둘이 아닌 것처럼, 중생의 일심에도 깨달음의 경지는 진여와 무명으로 분열된다. 그 진여와 무명은 둘이 아니고 하나이다. 인간이 상존하는 곳엔 쟁(諍)이 있고 쟁은 화(和)를 불러오는데 그 화를 잠재우는 것은 화이다. 화쟁 사상의 근본 원리는 화와 쟁을 수습하는 것이다. 화와 쟁은 정(正)과 반(反)이 타협하여 합(合)이 된다. 근원이 불이(不二)한 정과 반이 대립하여 쟁을 일으키지만 모든 쟁이 화로 동화되는 것이다.

 

십문화쟁론(十門和諍論)의 화회 : 자발적 절제가 이루어지는 사회는 건강한 사회이다. 연기(緣起)는 인연을 근거로 하는 관계이므로 타인에게 해를 줄 수도 있고 이득을 줄 수가 있다. 나의 욕망이 남의 욕망에 대한 장애를 최소화한다는 인식이 있을 때 넓은 마음의 소통이 있는 것이다. 넓은 마음(一心)은 여유 있는 마음이며 넉넉한 마음이다. 

 

십문화쟁론(十門和諍論)은 백 가지의 다른 주장이라도 공평하게 부처의 뜻을 전개하면 모두 하나로 화회된다. 나는 옳고 남은 나쁘다. 나는 나쁘지만 남은 그렇지 않다는 주장이 하나로 되는 것이 화쟁이다. 이는 마치 개천이 흘려들어 하천과 강을 이르는 것과 같다. 존재를 싫어하고 허상을 좋아함은 나무를 버리고 큰 숲에 다다름과 같다. 비유컨대 청과 암이 같은 바탕이고, 얼음과 물이 같은 원천이고, 거울에 본 형태가 다는 아니다. 화쟁은 긍정과 부정을 넘어서서 조화와 화해를 모색하는 인식 전환이다. 원효는 화쟁 사상으로 불교개혁을 이루어 냈다.

 

3. 해동공자 설총 사상

 

 (백성 앞에 군림 하는자 백성에게 굴종한다)

 

이두 글자 창제와 6경 번역

 

설총은 당나라 측천무후가 그의 해박한 지성에 감탄하여 해동공자란 칭호를 내렸다. 설총은 6경을 돌파한 유학의 대가로 공자에 버금가는 유학자였다. 6경은 우주 만물의 근본을 밝히는 진리로 인간의 본성을 규정하였다. 종교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불경과 6경은 인식론으로 해석이 다르다. 불경은 믿음의 수련이지만 6경은 규율의 규범이다. 불교의 인식론은 만남의 교화지만 유교의 인식론은 바른 몸가짐이었다. 유교의 6경은 색경(眼根), 성경(耳根), 향경((鼻根), 미경(舌根), 촉경(身根). 법경(意根)이란 인식을 가진 것이다. 설총은 유교의 6경전의 원리를 인간 평등사상의 근본으로 삼았다. 불교의 평등사상은 유교의 6경 사상과 통하는 것이다. 

 

설총은 글자가 없어서 고통받는 백성들이 애환을 누구보다 절절하게 느낀 분이다. 한문자가 있었으나 일반백성은 소통할 수 없었고 국가 공무원들도 한자 해석을 잘못하여 국정 혼란을 일으키고 하였다. 다행히 구결과 향찰로 소통을 하였지만 표기할 글자가 없어서 널리 인식하기가 힘들었다. 설총은 전국의 구결과 향찰을 조사하여 한문과 조합하여 한자의 음과 뜻을 따서 이두라는 글자를 만들었다. 이는 세종대왕이 한국을 창조한 이상의 효력이 있었다. 설총은 이두 문자를 만들어 화엄경과 6경을 번안하여 백성들에게 쉽게 익히게 하였다. 더불어 구결로 번안한 불경과 6경을 이두로 표기하여 일본에 전파하였다. 일본의 고승들은 원효의 이두 불경과 6경을 공부하면서 이를 응용하여 일본의 글자 가나를 창안하였다. 

 

설총의 화왕계 왕도정치

 

통일신라의 혼란스러운 정국에서 신문왕을 도와 화왕계로 왕도정치를 실현한 사상가지만 불교의 탄압으로 빛을 잃고 말았다. 설총은 수많은 유학서와 6경을 이두 구결로 번안하여 신문왕에게 왕도정치를 실현케 하였다. 그는 화왕계로 군왕이 가질 태도를 분명히 하여 왕도정치 개혁을 이루어 냈다. 그러나 불승들의 유학사상 배척으로 왕도정치 개혁은 허사로 돌아갔다. 그는 엄청난 유교 서적과 사상서를 써냈다. 그러나 개혁이 실패하자 그가 만든 수많은 서적이 불태워지는 분서갱유를 당해 서 그의 사상서나 집필서는 하나도 남김이 없었다. 그는 유학으로 세상을 바꾸려고 했고 왕도정치로 평등사회를 만들려고 했으나 불교의 탄압으로 해동공자의 이상과 꿈은 좌절되고 말았다. 

 

비운의 설총비결

 

설총은 해박한 지식과 지성을 가진 유학자이며 미래학자였다. 해동공자라는 칭호를 받는 그가 시대의 각광을 받지 못한 것은 불교의 유교 탄압과 갈등이었다. 그러나 설총은 신라 최고의 유학자이며 예언자였다. 그는 신라게 망하고 가야가 부활한다고 예언하였고 천년 후 통일된 새 나라가 선다고 신라의 운명을 예언한 설총비결 때문에 성덕왕의 불신을 받고 유배를 당했다가 살해되었다. 그러나 오늘날 설총비결은 맞아떨어졌다. 천년 후의 새 나라는 발전한 대한민국이다. 설총비결은 통일신라가 세계중심이 된다고 하였다. 아까운 것은 설총비결은 모두 분서갱유 당하고 남은 서적이 없는데 일본에 전량이 남아 있다고 한다. 

 

원효와 설총의 사상이 그 아들인 설중업에 의해서 화엄경과 6경이 이두로 번안하였고 일본에 보급하여 불교와 유학을 부흥시켰다. 

 

 [김용필]

KBS 교육방송극작가

한국소설가협회 감사

한국문인협회 이사

한국문인협회 마포지부 회장

문공부 우수도서선정(화엄경)

한국소설작가상(대하소설-연해주 전5권)

이메일 :danmoon@hanmail.net

 

작성 2023.02.13 11:23 수정 2023.02.13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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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