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계봉의 산정천리] 무채색 청태산은 언제 봄옷 입으려나

푸른 봄을 위해 아직도 숨 고르기 중

봄이 슬슬 열리고 있다. 춥고 기나긴 겨울은 시간의 흐름 앞에 자리를 내 놓았다.


심술궂은 꽃샘추위가 지나고 완연한 봄이 찾아왔다. 따스한 햇볕, 살랑살랑 부는 바람 속에서 형형색색 피어나는 아름다운 꽃들을 보니 봄은 봄이다.

 

봄바람처럼 훈훈한 하심이 곧 부처의 마음이다. 지난 주 다녀온 섬진강 매화마을 홍매가 전하는 싱그러운 봄소식에 고무되어 이번에는 강원도로 길을 나선다.

 

영동고속도로를 벗어나 청태산 휴양림으로 들어가는 2차선 국도 양 옆의 수목들은 봄의 기운을 주체하지 못하고 있는 모습이 역력하다.

 

이제는 봄을 맞이하는 마음과 의미가 새롭다. 또 한 번의 봄을 맞으면서 생동하는 자연을 접하며 오감으로 느낄 수 있음이 한없이 고마울 뿐이다.

나이가 들어가는 탓일까.

 

청태산은 강원도 횡성군 둔내면과 평창군 방림면의 경계에 솟은 해발 1,200m급의 준봉이다. 둔내 일대는 원래 눈이 많이 내리는데다가 해발 고도가 높아서 내린 눈이 봄이 되도록 녹지 않기 때문에, 청태산은 겨우내 눈부신 설경을 간직하고 있다.

 

청태산 휴양림은 산막, 야영장, 오토캠프장, 물놀이장, 산림욕장, 산책로 등을 고루 갖추고 있어서 많은 이들이 찾는 힐링 명소다.

 

숲 체험 코스를 따라 걸으면 자연을 더욱 가까이에서 느낄 수 있다. 바람에 실려 오는 잣나무향이 숲속에 가득하다.


 

이번 산행은 산기슭에 자리한 청태산 자연휴양림에서 정상까지 이어지는 5개의 등산로 중에서 제2등산로를 따라 올라 제3등산로로 내려오는 코스를 오른다. 휴양림이 이미 해발 800m의 고지대라 400m 정도만 고도를 높이면 정상에 오를 수 있다.


이 코스는 낙엽송과 겨우살이, 물푸레나무 등 인공림과 천연림이 조화를 이룬 청태산의 식생을 한 바퀴 크게 에둘러 도는 길이기도 하다.


산막을 지나면 나오는 우거진 잣나무 숲.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완만한 경사의 나무 사이를 걸으며 은은한 숲 향기를 통해 전해지는 건강한 기운을 온몸으로 느낀다.


갈지자 모양의 나무데크를 벗어나 본격적인 산길로 접어들자 산기가 청정하다. 이윽고 아직도 깊은 동면에 빠져있는 계곡이 나타난다. 가만히 귀 기울여 보니 두껍게 얼어붙은 얼음판 밑에서 맑은 물소리가 들려온다. 청량한 물소리만으로도 겨우내 마음에 묻어 있던 세진들이 말끔하게 씻기는 기분이다.


얼음판 밑에서도 어김없이 봄이 피어나고 있다.



겨우내 얼어붙은 계곡의 얼음이 녹아 내리면서 봄이 오는 소리를 전하고 있다.


청태산은 전체적으로 완만한 육산이지만 능선에 이르기까지는 제법 가파른 오르막이 펼쳐진다. 특히 청태산이 자리한 횡성군 둔내면 일대는 강원도에서도 눈이 많이 내리는 지역 중 한 곳인데 등로에 쌓인 부드러운 눈길을 밟으며 산 오름을 계속한다.

 

능선에 올라서는 등로는 급경사의 빙판길이다. 지쳐 낮아지는 육신의 겸양을 깨닫게 만드는 모진 산길이다.

 

능선에 올라서자 매서운 칼바람에 어깨가 저절로 움츠러든다. 곧 만나게 될 정상의 풍경을 그리며 어깨를 다시 펴고 기운차게 산을 오른다.

 

3등산로와 정상 갈림길이 있는 능선의 이정표. 우측이 정상 방향이다.
정상 방향으로 오르는 계단 길은 아이젠 없이는 오르내릴 수 없다.

 

 

헬기장에서 정상으로 가는 호젓한 산길은 깊은 근원으로 침잠한 숲 사이로 뻗은 오솔길이다. 이 길은 산객의 발길을 보듬어 유유한 지경으로 인도한다. 이 길은 마치 물이 흐르는 것처럼 자연스럽고 자유롭다.


능선 주위로 순백의 길 위에 더 푸르게 피어난 조릿대를 길동무 삼아 도란도란 걷는다. 발걸음은 점점 느려지지만, 시야에 들어차는 맑은 풍경이 지친 몸에 기운을 불어넣는다. 천천히 걸으면 많은 것들을 눈에 담을 수 있는 법이다.


휴양림에서 출발한 지 1시간 만에 마침내 해발 1,194m, 청태산 정상에 다다른다. 청태산이란 산 이름은 이곳 산자락의 바위에 앉아 점심을 들던 태조 이성계가 점심을 챙겨준 횡성 군수에게 하사한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주봉들이 펼치는 압도적인 파노라마를 기대했건만 청태산 정상은 주변의 나무들이 시야를 가려 조망이 그다지 좋지 않다. 그나마 동남쪽 대미산과 북쪽 태기산 방향이 조금 열려 있다.



청태산 정상. 서너 평 정도의 좁은 산정에 서니 한기가 몰려온다. 강원도 산들은 푸를 날을 위해 아직도 숨 고르기를 하고 있는 중이다.
북으로 주름주름 낮은 포복을 한 산 너머로 태기산이 보인다. 날씨가 좋으면 남으로 백덕산, 동으로 오대산, 서로 치악산까지 조망할 수 있다.

 

 

산이 있는 곳에 물이 있고, 물이 있는 곳에 생명이 있으며, 생명이 움직일 때 지혜가 있는 법.

청태산은 산 이름 그대로 어디에도 걸림 없고 깨끗함이 있으며, 본연의 지혜가 있다.

산에서 배우는 청정과 지혜는 아름다운 향기이자 메아리다.

 

오늘, 겨울과 봄을 오가던 어지러운 생각일랑 훌훌 털어버리고 천진하고 꾸밈없는 청태산 자연 속에서 법문 한 자락 들었으니 이 또한 만행(萬行)이다

여계봉 선임기자







편집부 기자
작성 2019.03.25 10:36 수정 2019.03.25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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