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이 5일째다. 기분이 너무 좋았다. 이것은 여러 요인이 복합된 것이다. 아마도 직접적인 원인은 깔리모쉐라고 하는 카페인과 설탕이 혼합된 음료를 많이 마셨기 때문일 것이다. 이것은 레드와인과 코카콜라를 얼음에 섞어 만든 것이다. 예전에 몰랐던 깔리모쉐를 더 시키지 않을 수 없었다.
오늘 오후에 에스텔라 시내를 탐방하다가 해거름의 햇살을 받으며 강변 주점에 앉아 있는 네 명의 사람들을 보았다. 그 중 두 명은 라라소냐에서 간단한 대화를 나눴던 사람들인데, 여기까지 오면서 아직 만나지 못했었다. 너무 반가워서 인사를 하려고 깡충깡충 뛰면서 달려갔다. 맙소사! 내가 잊어버리고 이야기 하지 못할 뻔 한 것이 하나 있는데 그 중 한 명은 무릎보호대를 모자처럼 머리에 뒤집어쓰고 있었다.
약간의 깔리모쉐를 마시고 나서 우리 모두는 친구가 되었다. 정말 재미있는 사람들이다. 유머 감각이 뛰어나고, 악의 없이 수다를 떠는 능력들이 탁월하다. 마음을 열고 말하는 천진한 바보들이라고 할까. 진정 내가 닮아야 할 부분이다.
그들로부터 몇 가지를 알아낸 것이 있다. 그들 두 쌍의 남녀는 모두 친구 사이로 네덜란드 엔터호프에 산다고 한다. 이들은 재미있는 경력을 갖고 있는데 현대미술 전시공간인 에르메스 재단에 자문을 해주기 위해 미술사를 전공하고 그림을 수장하는 일을 하고 있다고 했다. 제임스와 프랑크는 최근에 위기일발로 죽음의 문턱까지 갔었다고 한다. 우리는 여러 가지 놀이를 하며 멋진 시간을 보냈다.
오늘 오후 내내 까르모쉐를 마신 후 처음으로 나는 제이드가 요리한 맛있는 저녁을 먹었다. 그래서 그 달콤한 일시적 효과는 오래 지속되지 못하고 더욱 밝고 환한 분위기에 젖었다.
순례길로 오기 전 나를 가장 흥분되게 한 것은 출발점에 도착했을 때 아무런 의무나 제약이 없었다는 것이다. 다만 5주 후인 4월 19일에 산티아고 공항에 도착하기만 하면 되었다. 심지어 첫날밤에 잘 숙소도 예약하지 않았었다. 그냥 닥치는 대로의 하루하루였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 맨 마지막 시간이 언제였을까?
물론 이것은 대단한 자유지만, 반면에 자율적인 일이다. 대답할 상대가 아무도 없다. 오로지 자신에게 물어야 한다. ‘어떤 느낌인가?’ 그리고 ‘지금 무엇을 하고 싶은가?’라고…….
걷는 것 자체는 성찰과 사색, 그리고 관찰의 시간이다. 나는 내가 ‘걷는 우주’를 철저하게 보호하는 것이 필요함을 안다. 그것은 고독이며 홀로 영혼의 자유로운 방황을 할 수 있게 허락해 주기 때문이다. 이런 것들이 내게는 지난 몇 달 동안 도저히 누릴 수 없었던 사치이며 정신의 유목민이 된 것이라고 생각 된다.
나는 천성적으로 사교적인 존재다. 그래서 내가 ‘걷는 우주’를 보호하는 것은 가끔 순례길에서 아주 자연스럽게 그리고 일반적으로 일어나는 일이지만, 나 자신에 대한 가벼운 도전임에 틀림없다.
지난 2년 동안 내 인생은 여러 사건들과 희로애락으로 점철되었고, 이 모든 것들은 너무 빨리 그리고 강렬하게 일어났던 사건들이라 나는 아직도 숨 쉴 여유조차 없다. 이번 순례여행 중 이런 상황들을 단순화 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보지는 않는다. 그러나 내 영혼을 목적지 없이 자유롭게 방황할 수 있게 풀어놓는 자유는 엄청나게 값진 것이다.
첫날은 불가피하게도 고든과 나의 결혼에 대한 기억으로 가득했다. 그날이 바로 첫 번째 결혼기념일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 다음 며칠 동안은 더 오래된 기억들로 가득 찼다. 내가 보는 모든 것들은 시간과 공간을 떠나 가까이 혹은 멀리 있는 그 누군가에 대한 추억을 불러일으켰다. 이런 사람들에 대한 추억은 내 영혼의 골수에 자양분을 준다.
나는 불현듯 여동생 성아가 생각났다. 그 애는 유쾌하게 눈망울을 굴리면서 나를 추억의 프레임 속으로 데려가곤 했다. 일상적인 일들로 웃고 떠들다가 다시 일터로 돌아가는 추억들처럼 잠시 기억의 창고를 열고 만난 성아에 대한 생각들이 순례길의 외로움을 달래주었다.
오늘은 아주 특별한 행군의 날이다. 걷는 길마다 믿기 힘든 아름다운 경치가 펼쳐졌다. 잃어버린 시간들 속에 작은 마을이 있고, 굽이진 좁은 길은 예스럽고 분위기 있는 아름다움 그 자체였다.
작은 언덕 꼭대기에 끼라우끼라는 아주 특이한 중세 마을이 자리 잡고 있었다. 나는 아침 내내 커피를 찾아 헤맸다. 동네 제과점에서 선전하는 커피가 자동판매기임을 보고 실망했다. 그러나 빵은 만족스러웠다. 이전에 내가 먹어보지 못한 최고의 크라상 빵이다.
첫 번째 골목의 코너를 돌아 수많은 아름다운 아치가 있는 곳으로 나아갔다. 위를 바라보니 미로 같은 길에서 공중으로 묘하게 울려 퍼지는 피아노 소리에 짐짓 놀랐다. 그 소리는 모든 창가에서 울려 나오는 것처럼 보였다.
그 효과는 바로 나타났다. 하염없이 눈물이 났다. 그냥 계속 걸으며 빵을 먹었다. 또 다른 코너를 돌아서자 그 음악은 갑자기 멈췄다. 개들이 짖고 새들이 다시 노래했다. 그것은 이상한 느낌이었고 혹시 내가 피아노를 상상했는지 의심스러웠다. 천상의 음악이 거기 있었다. 음악 속의 마법이었다.
[이수아]
줄리아드음대 졸업
스코틀랜드 국립교향악단 단원
스코키시체임버오케스트라 수석 첼리스트
스코틀랜드청소년오케스트라 상임고문
Mr. Mcfalls Cahmber 창립맴버
이메일 : sua@suale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