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기 자신에 대해서 악의를 품고 있는 자를 향해서 말로도 마음으로도 저항하지 않는 것, 이방인과 이웃사람, 유태인과 비유태인을 조금도 차별하지 않는 일. 누구에 대해서도 성내지 않고 누구도 경멸하지 않는 일. 구세주(예수)의 삶은 이러한 실천 이외의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의 죽음조차도 말이다.
- 니체, <안티크리스트>
영국의 진화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의 원제는 ‘(The God Delusion, 신이라는 망상)’이다. 그는 과학적 논증을 통해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무신론을 펼친다.
‘인격화된 신을 숭배하는 종교가 인간에게 얼마나 많은 해악을 저질렀는가?’ 그의 문제 제기에 우리는 수긍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논리적으로 수긍하는 것과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다르다. 인간은 ‘이성적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서양에서는 오랫동안 인간을 이성적 존재로 보아왔다. 하지만 현대철학의 문을 연 니체와 프로이트는 인간을 ‘무의식적 존재’로 본다. 이성적 존재가 세계대전을 일으켜 인류를 대량 학살하고 자연을 이리도 황폐화시킨단 말인가?
따라서 과학자가 아무리 ‘신은 망상’이라고 논리적으로 증명을 해도, 종교인들의 신에 대한 믿음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인간이 무의식에서 간절히 원하는 것은 ‘사랑’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본성적으로 사회적 동물이다. 리처드 도킨스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최근 과학자 중 다수가 인간의 뇌는 도덕적으로 행동하도록 프로그램화됐다고 주장한다. 이처럼 인간은 자체로 충분히 도덕적이며, 스스로에게 희망을 제시할 수 있다. 그러므로 신이 사라진다면, 인간은 더욱 인간을 의지하며 본연의 가치인 사랑과 연민을 찾게 될 것이다. 신이 없을 때 인간은 더욱 열정적이며 영적으로 진화할 것이다!”
인류는 수 만년 동안 부족사회를 이루고 살았다. 이때는 ‘신화(神話)’가 인간을 더불어 살아가게 하는 지침서였다. 신화에 의해 원시인들은 서로 사랑하며 평화롭게 살아갈 수 있었다. 그러다 약 2500백여 년 전에 철기가 등장하면서 인류의 긴 평화시기가 끝나게 되었다.
철기를 가진 부족은 더 많은 비옥한 땅을 얻기 위해 석기와 청동기를 사용하는 부족을 점령하기 시작했다. 인류 전체가 전쟁의 소용돌이에 휩싸였다. 지구 곳곳에 대제국이 등장하였다. 여러 부족이 하나의 국가가 되는 시기에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이 시기를 실존주의 철학자 칼 야스퍼스는 ‘축의 시대’라고 했다. 인류의 정신의 축이 이 시기에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성현들이 제시한 인류의 정신의 축은 ‘사랑’이었다. 성현들은 인간은 이 사랑의 마음을 타고난다고 보았다.
공자는 하늘의 이치와 하나인 마음이 인간의 본성(本性)에 있다고 했다. 소크라테스도 인간의 본성에 우주의 이치를 아는 마음(로고스)이 있다고 했다.
기독교에서는 인간에게 성령(聖靈)이 있다고 했고, 불교에서는 불성(佛性)이 있다고 했다. 성현들은 우리가 이 본성을 깨움으로써 지혜롭게 살아갈 수 있고, 서로 사랑할 수 있다고 보았던 것이다.
리처드 도킨스가 말한 ‘인간이 도덕적인 행동을 할 수 있게 태어났다’는 것은 인류의 오래된 지혜다. 이 지혜와 사랑의 마음은 신의 죽음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 신을 말하지 않은 공자 석가나, 신을 말한 예수 소크라테스의 인간에 대한 사랑은 같지 않은가?
신이 망상임을 증명한다고 해서 인류의 삶이 더 나아질까? 신에 대한 논란만 난무할 것이다. 불교에서 말하는 공(空), 노자가 말하는 도(道)에 신이라는 이름을 붙인다고 해서 무엇이 달라지는가?
중요한 건, 사랑 가득한 마음일 것이다. 이 사랑의 마음을 그냥 본성이라고 하건, 신이라고 이름을 붙이건, 아무런 차이가 없지 않은가?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희곡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줄리엣은 “장미는 다른 이름으로 불리어도 여전히 향기롭다”고 말했다.
‘신의 죽음’을 선언한 니체는 “서양 역사 중에 진정한 기독교인은 두 명이 있는데, 그게 바로 예수와 자신”이라고 말했다. 그는 “구세주(예수)의 삶은 이러한 실천(완전한 사랑과 희생) 이외의 아무것도 아니었다.”고 했다. 우리에게 중요한 건 다음과 같은 질문일 것이다.
“우리는 지금 인간의 타고난 마음, 사랑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인간은 종교의 이름으로 수많은 악행을 저질렀지만, 종교가 없었다면 아마 ‘정의의 이름(혹은 다른 아주 멋진 이름)’으로 수많은 악행을 저질렀을 것이다.
[고석근]
수필가
인문학 강사
한국산문 신인상
제6회 민들레문학상 수상.
이메일: ksk21ccc-@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