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92년 6월 6일(이하 음력) 당항포해전에서 승리한 이순신 연합함대는 이날 낮 날씨가 불순하고 안개가 끼어 항행하기 어렵게 되자 당항포 앞바다에 진을 치고 군사들을 쉬게 했다. 저녁 무렵에 고성땅 마을간장(亇乙干場, 차자표기의 지명으로 '맛슬간장' 또는 '말간장'으로 발음, 고성군 동해면 일대로 추정)으로 이동하여 밤을 새웠다.
7일 이른 아침에 출발한 이순신 연합함대는 웅천땅 증도(甑島, 창원시 마산합포구 구산면 원전리 실리도, 지역민들은 시리섬이라고 함) 앞바다에 진을 치고 있었다. 이때 천성 가덕(부산시 강서구 천성동, 성북동)에서 적의 종적을 정탐하던 탐망선장 이전, 토병 오수 등이 적의 머리 2급을 베어 오전 10시경 돌아와 이순신 장군에게 보고했다.
"가덕 해상에서 왜군 3명이 배 한 척에 타고 있다가 우리를 보고 북쪽으로 달아났습니다. 이들을 추격하여 활을 쏘아 모두 죽였습니다. 왜군의 머리 3급을 베었는데, 경상 우수사 원균의 군관 한 사람이 작은 배를 타고 나타나 위력으로 적의 머리 하나를 강탈해 갔습니다."
이순신 장군은 이들 탐망군들에게 술을 내놓고 위로한 후 천성 등지로 다시 돌려보냈다. 이후 이순신 장군은 함대를 이동시켜 정오경에 영등포(거제시 장목면 구영리) 앞바다에 도착했다. 이때 왜군의 대선 5척과 중선 2척이 율포(栗浦, 거제시 장목면 율천리 속칭 밤개)에서 나와 부산 방면으로 도주하기 시작했다.
조선수군은 즉각 추격에 나섰다. 역풍을 무릅쓰고 율포에서 5리 정도 떨어진 바깥 바다까지 추격하자 왜적들은 무거운 짐짝을 바다에 버리고 도주하기 시작했다. 적선을 따라잡은 우후 이몽구는 대선 1척을 나포하여 적의 머리 7급을 베고 다른 1척은 육지로 끌고 나와 불태웠다. 사도첨사 김완도 대선 1척을 나포하고 머리 20급을 베었다. 녹도만호 정운은 대선 1척을 나포하고 머리 9급을 베었다.

광양현감 어영담과 가리포첨사 구사직이 힘을 합쳐 육지로 도망가는 대선 한 척을 추격하여 붙잡아 불태웠다. 소비포권관 이영남은 소선을 타고 적진으로 들어가 적의 머리 2급을 베었다. 나머지 빈 배 한 척은 전체 군사들이 힘을 합쳐 바다 가운데서 불태워 없앴다. 율포해전 직후 이순신 연합함대는 낙동강 하구의 몰운대까지 진출했다가 송진포(거제시 장목면 송진포리)로 돌아와 밤을 새웠다.
8일 이순신 장군은 일대의 적을 수색하기 위해 웅천 제포(창원시 진해구 남문동 제덕동 일원) 등지로 탐망선을 내보내고, 본대는 창원땅 증도(시리섬)와 남포(창원시 마산합포구 구산면 난포리) 앞바다로 출전시켰다. 이날 저녁에 다시 송진포로 돌아와 밤을 새운 이순신 연합함대는 9일 이른 아침 웅천 일대를 수색하고 적의 종적이 없자 당포(통영시 산양읍 삼덕리)에 이르러 밤을 새웠다. 10일 미조항(남해군 미조면 미조리)에 도착한 이순신 장군은 원균, 이억기 등과의 연합함대를 해산하고 여수로 귀환했다.
율포해전과 관련한 일본측 기록인 고려선전기(高麗船戰記, 김시덕 역)에는 "6월 7일에 구루시마 미치히사(四国志摩守) 님이 크고 작은 배 20척 가량을 이끌고 그 해협 어귀를 공격하셨다. 그곳을 경계하던 적선 60~70척과 싸워 (아군의 배는) 한 척도 남김없이 부서지고, 구루시마 님은 그 곳 섬에 있는 성에서 농성하다가 할복하였다. 일족도 모두 전사하였고, 배도 모두 불타 부서졌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고려선전기에서 해전 날짜가 1592년 6월 7일인 것은 율포해전과 일치한다. 그러나 고려선전기의 이 기록은 전체적 상황 설명과 참전 전선 숫자 등을 비교해 볼 때 6월 2일에 있었던 당포해전과 매우 유사하다. 율포 인근에는 상륙해서 들어갈 성이 없었지만 당포에는 바로 위에 당포성이 있었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구루시마 미치히사(來島通久)는 율포해전이 아닌 당포해전에서 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구루시마 미치히사는 다른 이름으로 구루시마 미치유키(來島通之)로도 불린다.
율포해전의 승리 요인은 적의 종적을 찾아내기 위한 탐망군을 적절히 활용한 데 있다. 작지만 빠른 탐망선에 일부 무장 병력을 싣고 정찰 활동을 하다가 적이 나타나면 즉시 본대에 알렸던 이전, 오수 등 탐망군의 역할이 없었다면 율포해전은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역풍을 무릅쓰고 죽을힘을 다해 노를 저어 추격에 나선 조선수군 격군들이 율포해전의 승전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이순신전략연구소장 이봉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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