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흥렬 칼럼] 과유불급

곽흥렬

“풍속에 노래하고 춤추며 술 마시기를 즐긴다.”

 

중국 고대의 역사서인 『삼국지』의 위지魏志 동이전東夷專에는 우리 민족의 성향에 대한 기록을 이렇게 남겨 놓았다. 중학 시절 한국사 시간에 배운 이 구절이, 사십여 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도 기억 속에서 떠나질 않는다. 그 기억은 한동안 의식의 밑바닥에 깊숙이 잠재워져 있다가도, 이따금씩 어떤 계기만 주어지면 마치 무슨 주문처럼 불쑥불쑥 되뇌어지곤 한다.

 

예의 이 문헌상 사료史料로 미루어 보더라도 예부터 우리는 술과 노래와 춤을 유달리 좋아했던 민족인 모양이다. 술 마시는 것이야 또 그렇다 쳐도, 춤추고 노래 부르기를 좋아한다는 말은 어찌 그리 정확히 보았던가 무릎이 쳐진다. 관광버스 안 중년 남녀의, 노래에 곁들인 질펀한 광란의 춤판을 단 한 번만이라도 목격한 적이 있다면 굳이 구구한 사설이 필요치 않으리라. 술을 마시니 자연스럽게 노래가 불리어 나오고, 노래를 부르다 보면 저절로 신명이 올라 춤으로 연결되게 마련이다. 그리 따지면 술과 노래와 춤, 이 셋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상관성을 지니고 있지 않나 싶다. 

 

 “술 마시고 노래하고 춤을 춰 봐도……”

 

반세기 전, 한국 포크 음악의 선구자로 일컬어지는 가수 송 아무개가 불러 세인들로부터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던 <고래 사냥>이라는 대중가요가 생각난다. 지금은 흑백사진 속 풍경처럼 빛이 바래고 말았지만, 그래도 여전히 기성세대들에게는 아련한 추억을 자아올려 주는 노래이다. <고래 사냥>이 그런 정서를 불러일으키는 까닭은, 그것이 술과 노래와 춤이라는 노랫말로, 잃어버린 젊은 날의 감성을 자극하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그 유행가 가사에서처럼, 술 마시고 노래 부르며 춤을 추는 일은 그야말로 절묘한 삼박자다. 이 세 요소는 서로 어우러질 때 시너지 효과를 내면서 가슴에 불을 지른다. 

 

노래도 부르지 않고 춤도 추지 않으면서 술만 홀짝홀짝 마시는 사람이 있다. 그런 사람을 보면 무언지 모를 수심愁心을 품속 깊이 간직하고 있는 것 같아 괜스레 측은한 마음이 든다. 술도 마시지 않고 노래도 부르지 않으면서 춤만 추는 사람도 있다. 그런 사람을 대하면 위인이 어쩐지 경망스러워 보인다. 무슨 신명이 나서 저러나, 하는 의구의 눈초리를 피할 수 없다. 술도 마시지 않고 춤도 추지 않으면서 노래만 부르는 사람도 있다. 그런 사람을 만나면 무슨 기분으로 노래가 나오는가 싶어 참 청승맞게 느껴진다. 

 

술을 먹은 뒤 노래를 부르고, 노래를 부르다 더욱 흥이 오르면 덩실덩실 춤으로 옮아가는 것이 대체로 정해진 순서일 것이다. 서로 마주한 자리에서, 술이 한잔 들어가지 않고선 아무래도 영 맨송맨송해서 멋쩍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교분을 트는 데는 술보다 좋은 것이 없을 성싶다. 여기에 노래가 따르고, 거기에다가 춤까지 곁들이면 마음의 벽은 쉽사리 허물어진다. 이것이 술과 노래와 춤이 가진 요상스런 마력일 터이다.

 

실에 바늘 가듯 음주가무飮酒歌舞에 다시 한 가지가 더 따라붙는다면, 그것은 곧 남녀 간의 사랑놀음이 아닐까 한다. 외간 남자가 낯선 여자를 호리는 데 있어 술과 노래 그리고 춤이 끼어들지 않고는 성사되기 어렵다. 꼭 세 가지까지는 아니더라도, 그 가운데 술과 춤 정도는 반드시 필요하리라. 여자들이란 대개 술에도 약하지만, 특히 춤에 약한 존재인 것 같다. 서로 손을 맞잡은 채 춤의 쾌락 속으로 빠져들다 보면 자연스럽게 다른 부위의 신체 접촉으로 이어지고, 그러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몸가짐이 흐트러지게 되는 것은 필연적인 수순이다. 

 

타고난 난봉꾼들은 이러한 상황을 노리고서 하이에나처럼 집요하게 유혹의 손길을 뻗쳐 온다. 처음에는 잔뜩 경계심을 품었던 여자들도 아편에 마취라도 된 듯 시나브로 허물어진다. 아니, 애초부터 무너져 내리고픈 마음에 못 이긴 척 은근히 접근해 오는지도 모른다. 그러니 사달은 이미 예고되어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개미가 달콤한 꿀을 먹으려다 그만 꿀단지에 빠져 비명에 횡사하듯, 여자들도 불장난의 황홀한 맛에 취하다 마침내 헤어날 수 없는 수렁으로 빠져들어 일신을 그르치고 만다. 

 

우리는 예의 그 문헌상 기록에 기대어 “발랄하고 낙천적이며 여유작작한 민족성” 운운하며 자랑삼아 떠벌리길 좋아한다. 참으로 민망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들이 뭐가 아쉬워서 타 민족을 그리 추어올려 놓았을까. 시쳇말로 착각은 자유라지만, 착각도 이만저만한 착각이 아니다. 술 마시고 노래 부르고 춤추기를 즐기는 것이 무에 그리 대수이더란 말이냐. 자랑은커녕 외려 부끄러워해야 할 행실인지도 모른다. 

 

고구려인을 두고 “성깔이 흉포한 도적 떼 같다”고 빗대 놓은 것이라든가, “여름에는 옷도 제대로 걸치지 않고 거의 벗고 다니는가 하면, 겨울에는 몸에다 돼지기름 바르고 돼지가죽 뒤집어쓰고, 집 안 한가운데다 화장실을 두고 소변으로 세수를 하며……”라고 한 또 다른 기록들이 이를 여실히 방증하지 않는가. 자기 나라는 가운데 빛나는 민족이라고 하여 ‘중화中華’라 치켜세워 놓고서, 우리 민족은 ‘동이東夷’ 곧 변방의 동쪽 오랑캐라 일컬은 자체부터가 은근히 얕잡아보는 그들의 속마음을 충분히 읽어 내고도 남음이 있다. 

 

술은 판단력을 흐리게 하고, 노래는 마음을 어지럽히며, 춤은 이성을 마비시켜 버린다. 그래서 술과 노래와 춤에 빠져드는 것은, 인간이 도덕적 존재에서 동물적 존재로 떨어지는 지름길이다. 무릇 대다수 종교에서 왜 음주와 가무 행위를 율법으로 정해 엄격히 금하고 있는가를 생각해 보면 그 답은 저절로 분명해질 것이다.

 

이 땅에 노래방이란 영업 시설이 처음 선을 보인 때가 언제였더라. 이웃한 섬나라에서 처음 생겨난 가라오케가, 현해탄을 건너 부산 지방으로 날아와 뿌리를 내리기 시작한 이래 불과 수십 년이 못 되어 삼천리 강토를 온통 노래방 천지로 만들어 놓았다. 즐비하게 늘어선 장삿집들 가운데 한 집 건너 한 집꼴로 노래방 아니면 가요주점이다. 일상에 쌓인 마음의 찌꺼기를 훌훌 날려버리고 생활의 활력소를 제공해 주면서 전 국민 가수 만들기에 절대적 기여를 한 이 유흥업소들, 이런 놀이 공간이 본래의 건전성을 잃은 채 탈선과 비행의 온상으로 변질된 지 하마 오래다. 

 

노래방이면 이름 그대로 노래만 부르면 그만이지 도우미란 이름의 아가씨 혹은 아줌마들은 뭣 때문에 필요하더란 말인가. 염불보다는 잿밥이라고, 노래는 아예 뒷전이고 외간 남녀가 짝짓기하는 메뚜기처럼 야릇한 자세로 들러붙어 육체적 쾌락에 탐닉하는 것이 노래방을 찾는 목적 아닌 목적이 되어 버렸다. 본말전도라는 사자성어가 이런 경우를 두고 소용이 닿는 것이리라.

 

묵자墨子의 가르침에, 나무가 너무 곧으면 다른 나무들보다 먼저 베어진다고 했다지. 지금 내가 세상의 일그러진 풍속도를 질타하는 듣기 싫은 소리를 거르지 않고 쏟아 놓으면, 술 잘 먹고 노래 부르기 좋아하며 춤추길 즐기는 사람들에게 자칫 몰매를 얻어맞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 불상사를 당하기 전에 여기서 한 발짝 물러서야 할까 보다. 

 

마땅히 술도 좋고 노래도 좋다. 춤도 근본 나쁠 건 없다. 다만 사회적 통념에 비추어 받아들일 수 있는 경계선을 넘지 않는 테두리 안에서 건전하게 행해질 때라는 전제가 선행되어야 하지 않을까. 무릇 그 무엇이든 과하면 반드시 탈이 나게 마련이요, 이것이 세상사의 영원불변하는 이치이므로. 

 

[곽흥렬]

1991년 《수필문학》, 1999년《대구문학》으로 등단

수필집 『우시장의 오후』를 비롯하여 총 12권 펴냄

교원문학상, 중봉 조헌문학상, 성호문학상, 

흑구문학상, 한국동서문학 작품상 등을 수상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창작기금 받음

제4회 코스미안상 대상 수상

이메일 kwak-pogok@hanmail.net

 

작성 2023.03.20 10:00 수정 2023.03.20 10:09
Copyrights ⓒ 코스미안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금지 한별기자 뉴스보기
댓글 0개 (1/1 페이지)
댓글등록- 개인정보를 유출하는 글의 게시를 삼가주세요.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Shorts 동영상 더보기
오리부부
거미줄
왜가리 영토
무궁화
까마귀와 인삼밭
2025년 8월 5일
탁류
봉선화와 나팔꽃
러시아군 20%가 HIV 환자라고? 충격실태보고
일본해에서 중국러시아 합동훈련?!대체 무슨일?
트럼프 핵잠수함 배치명령! 미-러 긴장 최고조
베니스 난리 난 세기의 결혼식, 제프베조스와 로렌산체스 세기의 결혼식
목적이 서로 상충되는 교육제도 [알쓸신톡 EP.04]
탐구과목 통합? 현 고3의 의견 [알쓸신톡 EP.04]
산책길
우린 모두 하나
전통
전통
하늘로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
전통복장
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