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행복지수 최고의 부탄인의 삶
어느 날 사후세계를 예언한 파드마삼바바의 ‘死者의 書’를 읽었다. 불교의 경전이다. 이집트의 석비에 남긴 사후세계의 관구문과 티베트 불교의 사자의 서는 사후세계를 예언한 점에서 같은 맥락을 이룬다. 그러나 티베트의 사후의 서는 파드마삼바바가 49일간의 고행으로 찾아낸 경전이라는데 의미가 있다. 그의 사자의 서는 체험의 경전이다.
‘당신이 보고 있는 모든 것은 실체가 없는 환영이다. 그것을 깨달은 자는 모든 한계로부터 영원한 자유를 얻는다. 죽음을 거룩하게 맞는 것은 사후에 행복한 환생이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종교는 사후세계를 준비하는 것인지 모른다. 환생은 동물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고 동물의 속성을 가진 인간으로 환생하는 것이다. 그것은 윤회라는 험난한 진화 과정을 거친다.’
정말 사후세계가 있는가? 사자의 서에선 사후세계가 현세보다 더 영광스럽다고 예언하였다. 사실 지금과 달리 샤머니즘과 힌두교, 불교, 크리스트교 등 모든 종교는 사후세계가 있다고 믿음을 중시하였다. 종교는 사후세계를 위한 복음이다. 파드마삼바바는 ‘사자의 서’에서 이렇게 말했다.
“내가 死者의 書, 108권을 히말라야 동굴에 감춰 놓았으니 테르퇸(경전을 찾은 자)은 이 경전을 찾아 세상에 널리 알려라. 다만 테르퇸는 절대 경전을 수정해서는 안 된다.”
파드마삼바바는 사자의 서 108권을 산스크리트어로 번역 집필하였다. 그가 번안한 사자의 서가 오늘날 불경의 원천이 되었다. 나는 이 책을 대충 읽고 과연 사자의 서는 삶과 죽음의 실체가 뭔지 의문을 품게 되었다. 그래서 그가 집필한 수도처를 찾아 실체를 체험하려고 나섰다. 사후를 중하게 여기는 티벳 불교의 불승과 불제자들의 삶을 되새겨 보려 함이었다. 그들은 현생의 공과 허의 실체는 사후의 존재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래서 현세 문명과 접촉을 거부하고 사후를 위하여 공덕을 쌓는다는 것이다. 악한 세류에 물들지 않고 자연 그대로의 삶을 살아가는 부탄 사람들은 정말 사후를 위하여 현실을 외면하는 것일까? 정말 그런 생활이 행복한 것인가, 그들의 생활을 체험해 보겠다는 생각으로 신비의 세계, 숨겨진 불교 경전 ‘사자의 서’를 찾아 트라쉬양트세를 찾아가는 것이다. 그것은 카르마 링파(사자의 서 발견자)가 되어 보려는 인본 여행이었다.
방콕에서 비행기를 타고 부탄의 파로 공항에 도착하여 수도 푸나카에서 부처가 사는 트라쉬양트세로 가는 피안의 여러 여행 일정을 잡았다. 부탄 여행은 부탄 정부에 여행비 일체를 미리내고 가이드 안내로 이루어진다. 개인적인 출발은 절대 허락지 않는다. 지코란 젊은 가이드를 소개받았다. 지코란 가이드는 아래 3명의 보조 가이드를 대동하고 나의 여정에 대동하였다. 산악 도로를 차량 이동을 하면서 트래킹을 겸한 여정으로 부탄의 신비한 명소를 두루 거쳐 가는 순례였다.
부탄은 신비의 나라다. 자급자족 식주경제를 제외하고 공공요금이나 교육, 의료, 사회적 간접자본의 모든 비용은 국가가 부담하는 파라다이스이다. 물론 여행자는 여행비를 미리 정부에 내고 떠난다. 공항 파로에서 산악 자동차를 타고 팀푸를 거쳐 수도 푸나카, 트롱사, 자카, 우라, 몽가로 가서 트래킹으로 룬체에서 트라쉬양트세로 가는 히말라야 고산 기행이었다.
히말라야를 가면 어디든지 산악 길에 바람에 펄럭이는 오색 깃발을 볼 수 있다. 바람개이 , 불교상징 문양이다. 그런데 깃발에 적힌 경전을 보았다. 바람과 새와 짐승이 읽고 가라는 경전이란다. 산악에서 새소리, 바람소리, 원숭이가 우는 소리를 들으며 구름 위를 걷는 황홀함에 젖는다.
공개되지 않은 숨겨진 문명을 찾아서 히말라야 설산을 따라 연꽃 향기 그윽한 제2붓다 파드마삼바바의 불교 성지로 간다. 물질적 쾌락은 섭생 동물의 즐거움이요, 정신적 쾌락은 인간만이 누리는 영화다. ‘사자의 서’는 세상에서 가장 차원 높은 정신의 과학이다’ 라고 칼융 박사의 말을 되새긴다. 가이드 대장 지코가 지친 나를 위로한다.
“부탄은 산이 낮아서 자동차보다 트래킹 등산 재미있어요. 힘내세요.”
“히말라야 트래킹이 처음이라서 두려워요.”
“육체가 고달파야 정신이 맑아진답니다.”
“그래요. 자동차가 못 가는 길은 트래킹으로 합시다.”
부탄 사람들은 철저한 자연인이었다. 가이드는 내가 내주는 식품은 먹지 않고 자신들이 가지고 온 식품만 먹었다. 먼 길 내내 그렇게 동행할 것이다. 내가 부탄의 최동북단 오지 마을, 룬체의 숨겨진 불교성지 트라쉬양체세 옴바 사원을 찾아가는 것은 그곳에 파드마삼바바(745-795)가 숨겨놓은 사자의 서를 만나 보려는 고행이었다. 파드마삼바바가 수행했던 옴바 수도원 가는 길은 히말라야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이란다. 고대도시 붐탕에서 휴식하고 몽가르 룬체를 거쳐 히말라야 최대 불교 성지 트라쉬양트세로 가는 길은 아름답기가 천국과 같았다.
2. 파드마삼바바는 누구인가?
제2의 석가라고 하는 그는 745년 파키스탄의 왕자로 태어났다. 히말라야 산악 왕국인 우디야는 안개 속에 묻힌 왕국이었다. 어느 날 온 산악이 밝아지면서 영롱한 무지개 피어 다나코사 호수에 떨어지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그 호수에 떨어지는 무지개를 찾아갔더니 호수에 연꽃이 피어 있었다. 그 연꽃 속에서 아기가 태어났다. 그가 파드마삼바바, 제2의 붓다로 환생한 석존이었다. 왕자는 삶과 죽음의 번뇌를 고민하다가 태자 신분을 포기하고 석가처럼 출사하여 히말라야 고행길을 택했다.
그는 룬체의 트라쉬양트세 옴바사원에서 수행을 시작하였다. 그곳에서 전설의 신비주 경전, 사자의 서를 집필하면서 인도의 본 불교를 티벳 불교로 개종하여 히말라야 은둔 왕국의 샤머니즘과 싸우면서 사후세계를 예언하였다. 그는 ‘사자의 서’ 경전을 108권이나 써서 히말라야 계곡의 동굴에 숨겨 두었으니 누구나 찾아서 읽어라. 그리고 테르틴(숨겨진 경전을 찾는 자)에게 경전을 찾은 곳에 절을 세우라고 하였다.
사자의 서는 14세기에 카르마 링파에 의해 티베트 북부지방의 동굴에서 처음 발굴되었는데 그 후 108권 중 65권이 발견되어 그곳에 절을 짓고 티베트 일대 국가에 전파되었다. 아직 43권이 미발견 상태이다. 영국 옥스퍼드대학 교수였던 에반스 웬츠 박사는 ‘사자의 서’를 서구사회에 소개하였고 비밀 경전을 접한 심리학자 카를 융은 ‘세상에서 가장 차원 높은 정신과학’이라고 극찬하였다.
‘티베트 사자의 서’ 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벗어나 죽음을 거룩하게 직시하라는 글이었다. 파드마삼바바는 이 경전을 토대로 수습 제자들에게 보리심을 일으키는 성불 수행이 해탈에 이루게 하였다. 그는 외계의 대상은 마음의 현상이지만 그 마음은 실재가 아니며 진실한 공성(空性)의 단계에 이르러야 실재가 된다고 하였다. 이는 인식이 명상의 단계로 실천되면서 명확한 실제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공성은 사후세계를 예언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고 거룩하게 받아드리라고 하였다.
불교의 나라 부탄은 사람과 자연이 일체 하는 삶을 산다. 살생하는 자를 엄하게 벌하고 짐승을 죽이지 않는 대신 육고기 수입해서 먹는다. 나무 하나 풀 한 포기라도 베거나 훼손할 수 없고 자연이 주는 그대로의 섭생을 즐긴다. 물질적인 쾌락에 무감하고 오로지 정신적인 행복만 추구한다. 낚시하면 종신형에 처하고 야생의 꽃도 꺾지 않는 것은 생명존중이라기보다는 사후세계를 인식하는 것이었다.
부탄인은 문명을 거부하고 산악에 묻혀 자연과 더불어 사는 가난한 사람이지만 행복지수가 세계에서 최고인 것은 그들의 생이 사후세계의 환생을 기원하기 때문이다.
3. 룬체의 트라쉬양트세로 가는 길
몽가르에서 길 없는 길을 찾아 룬체의 트라쉬양트세로 가는 산악 길은 히말라야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이다. 이 길은 트래킹으로 오른다는 것은 선택받은 자의 행운이었다. 룬체로 가는 산악 길목에서 목각 장인의 마을이 있다. 이곳은 목판각과 목각 탈을 만드는 마을인데 파드마삼바바가 ‘사자의 서’, ‘해탈의 서’ 경전을 산스크리티어로 번역하여 목판 서책으로 만든 곳이었다. 지금도 이 마을에선 목각 장인들이 전통을 이어받아 목각 탈을 만들어 팔고 있었다.
룬체는 계곡 속 평지에 자리 잡은 파라다이스인데 평생 태어나서 외지를 가보지 않은 사람들이 자연과 동화되어 살아가는 모습은 과히 신성에 가까웠다. 산악마을이라고 하지만 이곳저곳에 띄엄띄엄 흩어져 떨어진 집들이 개인주의 강한 집단생활을 의식케 하였다.
멀리 산상의 구름 사이로 파드마삼바바의 수도한 트라쉬양트세 옴바사원이 신비로운 성채로 아스라이 보였다. 옴바사원은 절벽 700m 산상에 구름처럼 떠 있음을 볼 수 있지만 더는 오를 수가 없었다. 이곳 옴바사원에 머물며 호랑이를 타고 히말라야 산악을 종횡무진 오르내리며 악령을 쫓는 경전 보급에 주력하며 사자의 서를 비밀의 동굴에 숨기고 다녔다. 그러나 700m 절벽 위 옴바사원까지 트래킹이 금지되었기 때문에 우린 여기서 여정을 접어야 했다. 산악 가이드 대장이 아쉬운 작별을 고했다.
“선생님, 옴바사원을 가지 못하니 아쉽네요. 다음에 올 땐 꼭 옴바사원에 가서 사자의 서를 읽어요.”
“어쩔 수 없지요. 다음에 산스크리티어를 먼저 배우고 오겠습니다.”
여행은 룬체에서 멀리 옴바사원을 바라보는 것만으로 마친다.
[김용필]
KBS 교육방송극작가
한국소설가협회 감사
한국문인협회 이사
한국문인협회 마포지부 회장
문공부 우수도서선정(화엄경)
한국소설작가상(대하소설-연해주 전5권)
이메일 :danmoon@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