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병식 칼럼] 존 치버 '기괴한 라디오'가 말하는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기

민병식

20세기 영문학의 거장이라고 불리는 존 치버(1912~1982)는 18세 때 세이어 아카데미에서 제적당한 경험을 소재로 한 단편 ‘추방’을 발표하면서 등단했다. ‘뉴요커’를 비롯한 다양한 잡지에 글을 썼으며, 주요 작품에는 단편집 ‘어떤 사람들의 인생’, ‘거대한 라디오’등이 있으며 최초의 장편 ‘웹쇼트가(家) 연대기’로 1958년에 전미 도서상을 받았다.

 

여기에 한 부부가 있다. 짐과 아이린, 그들은 어린 두 자녀를 가진 결혼 10년 차 부부로 평균수입과 사회적 지위를 가졌다. 그들은 고전음악에 취미를 가져 라디오를 들으며 많은 시간을 보내는데 가지고 있는 라디오가 옆을 탁탁 쳐야 소리가 나는 완전 고물이다. 집은 아이린을 놀라게 해주려고 새 라디오를 사 오는데, 그 라디오에서 클래식 음악은 안 나오고 잡음과 함께 같은 건물에 사는 이웃집 사람들의 대화 소리가 들린다. 처음에는 전파 방해인 줄 알았는데 이웃들의 말소리였다.

 

그 대화 소리에는 무엇이 담겼을까. 평범한 이야기부터 들으면 안 되는 이웃들의 숨겨진 이야기까지 들린다. 아이린은 아이들이 학교에 가면 라디오를 듣는다. 구타하는 남편, 심장병을 앓고 있는 부인, 곧 직장에서 잘릴 남편과 그에게 넌더리를 내고 있는 부인 등 그들의 삶은 겉으론 평범하고 행복해 보였지만 속은 비참했다. 아이린은 그들의 참담한 이야기를 듣고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분노하기도 하는데 짐이 참담하다고 하면서 왜 하루종일 라디오를 듣느냐고 묻자 아이린은 자신에게 기쁨을 주는 라디오라고 하면서 계속 라디오를 듣는다.

 

아이린이 라디오를 듣던 어느 날, 라디오를 듣다가 어떤 집에서 폭력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어서 그 집에 가보라고 말하자 이웃의 소리가 나오는 라디오를 듣는 것은 남의 집 창문을 들여다보는 것과 같다며 라디오를 끄라고 말한다. 다음 날 수리공이 와서 라디오를 고쳤고 더 이상 잡음과 이웃의 대화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그리고 짐은 아이린에게 이것이 우리가 누릴 수 있는 마지막 호사이며 회사의 사정이 좋지 않아 돈 걱정을 많이 하고 있으며 자신은 열심히 일했지만 모피코트, 소파 커버 등으로 낭비되는 것을 보고 싶지 않다고 말이다. 

 

짐은 격앙되어 아내가 친정엄마의 유언이 공증되기 전에 보석을 가졌던 것 등 아내의 과거 옳지 못한 모습을 들추어내기까지 하면서 아이린이 다른 사람들을 걱정하는 척 하지만 정작 자신의 가족들에게는 얼마나 못되게 굴었는지를 이야기한다. 그럼에도 아이린은 자신들의 대화를 남 들이 들을까 걱정한다.

 

이 부부의 모습도 아이린이 라디오를 엿들으며 알게 된 이웃들의 불행한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다. 짐은 돈을 벌어 아이린의 물질적 욕구를 채워주려고 힘들게 일했으나 지금은 경제적으로도 어렵고 아이린에게 만족하지 못했기에 불행하고 아이린은 자신의 모습은 바라보지 않고 이웃의 사생활에만 관심이 있었으며 정작 자신의 추하고 부족했던 내면을 외면하고 타인의 불행을 보면서 자신은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정신 승리에만 집중하였지 가족을 챙기지 못했다.

 

지금의 나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 나의 모습을, 내면을 바라보며 스스로를 점검하고 있을까. 정작 나의 삶은 들여다보지 못하고 타인의 불행을 통해 나의 행복을 반추하며 남의 허물을 지적하고 스스로의 치부는 회피하는 잘못된 주파수에 맞추어 살고 있지는 않은가. 지금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지. 어떻게 살아야 할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내면의 주파수에 맞추어 스스로의 삶을 점검해볼 일이다.

 

[민병식]

시인, 에세이스트, 칼럼니스트

현)대한시문학협회 경기지회장

현)신정문학회 수필 등단 심사위원

2019 강건문화뉴스 올해의 작가상

2020 코스미안상 인문학칼럼 우수상

2021 남명문학상 수필 부문 우수상

2022 신정문학상 수필 부문 최우수상

이메일 : sunguy2007@hanmail.net 

 

작성 2023.03.22 11:33 수정 2023.03.22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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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