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석근 칼럼] 길들인다는 것

고석근

당신의 진정한 본질은 내면 깊이 당신 속에 감춰져 있는 것이 아니라, 당신을 초월한 아득히 높은 곳에 혹은 적어도 보통 당신이 당신의 ‘자아’로 보고 있는 것 위에 있다.

 

- 니체, <반시대적 고찰> 

 

 

수소와 산소가 만나면 물이 된다. 수소와 산소는 서로가 만났기에, 둘 다 자신들을 넘어서는 물이 된다. 사람도 그렇다. 혼자서는 자신을 넘어서는 무언가가 되지 못한다. 왕은 백성과 만나야 왕이 된다.

 

남자는 여자를 만나야 남자가 된다. 부모는 자식을 만나야 부모가 된다. 영웅은 보통 사람들을 만나야 영웅이 된다. 어느 날 지구에 살고 있던 모든 남자들이 어느 먼 별나라로 가버렸다면, 여자들이 여자일 수 있을까?

 

프랑스의 비행조종사 출신의 소설가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에는 다음과 같은 명대사가 나온다. 

 

“황금빛 머리카락을 가진 네가 나를 길들인다는 것은 정말 근사해! 그렇게 되면 황금빛이 물결치는 밀밭을 볼 때마다 네 생각이 날 테니까. 그렇게 되면 나는 밀밭 사이로 부는 바람소리도 사랑하게 될 테니까.”

 

만남은 서로가 서로에게 길들여지는 것이다. 새 신발을 신으면 처음에는 버성기지만 차츰 발과 신발이 서로를 길들이게 된다. 길들인다는 것은 일방적인 게 아니다. 삼라만상을 잘 살펴보면, 서로가 서로를 길들이며 더불어 잘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인간관계는 ‘일방적인 길들임’이 될 수가 있다. 인간은 ‘자아(自我)’가 있어, 자신에 대해 생각을 한다. 자신이 세상의 중심이라는 망상에 빠질 수가 있다. 이러한 망상으로 사람을 만나게 되면, 일방적으로 길들이려 한다.

 

사디즘(가학증), 마조히즘(피학증)이다. 남을 괴롭히거나 괴롭힘을 당하며 다른 사람을 만나는 병적인 마음이다. 그래서 인간은 자아를 넘어서야 한다. 니체는 말한다. “당신의 진정한 본질은 내면 깊이 당신 속에 감춰져 있는 것이 아니라, (...) 당신이 당신의 ‘자아’로 보고 있는 것 위에 있다.”

 

인간은 자아를 넘어설 때 진정한 자신이 된다. 자아가 진짜 자신이라는 망상에 빠지게 되면, 인간은 동물만도 못하게 된다. 동화작가 자넷 A 홈스의 그림책 ‘내 친구 오리’는 어린아이와 오리 인형이 만나 서로를 길들여가는 과정을 잘 보여준다. 어린아이는 자신의 오리 인형을 보며 생각한다. 

 

“얘는 오리예요. 우리 집에서 살아요. 오리는 내가 최고라고 생각해요. 난 오리의 영웅이랍니다.”

 

어린아이는 오리 인형을 업고 풀밭에도 가고, 나무에도 올라가 나란히 앉는다. 둘은 항상 일상을 함께 보낸다.

 

“오리는 내가 밥을 먹기 시작해야 밥을 먹어요. 오리는 내가 잠자리에 들기 전엔 잠을 안 자요.”

 

어린아이는 오리인형에게 일방적이다. 주인과 노예다. 

 

“오리는 내가 목욕을 할 때에도 곁에 있어요. 오리가 슬플 때, 내가 꼭 안아줘요.”

 

그렇게 둘이 즐겁게 지내던 어느 날, 오리가 갑자기 사라지게 된다. 어린아이는 오리를 찾아 헤맨다. 어린아이는 중얼거린다. 

 

“내가 곁에 없으면 오리는 아무것도 못 할 거야!” 

 

가게 아저씨도, 우체부 아저씨도, 버스 기사 아저씨도, 옆집 강아지도, 오리 인형을 보지 못했다고 한다. 어린아이는 이제 밥을 먹을 수도 없고, 목욕을 할 때에도 첨벙거리며 놀고 싶어 하지 않게 된다. 책을 읽어주겠다는 누나에게도, 초콜릿 케이크를 구워주겠다는 아빠에게도, 어린아이는 말한다. 

 

“오리 없이는 싫어요.”

 

어린아이는 소파에 기어올라 한쪽 구석에 웅크리고 눕는다. 

 

“무슨 냄새가 나는데...”

 

어린아이는 소파 밑에서 오리 인형을 찾아냈다. 어린아이는 오리 인형을 번쩍 들어 올리며 말했다. 

 

“오리야, 어쩌다 그 밑에 들어갔니?”

 

어린아이는 오리 인형을 보며 생각한다. 

 

“얘는 오리예요. 우리 집에서 살아요. 난 오리가 최고라고 생각해요. 오리는 나의 영웅이랍니다.”

 

이제 오리가 어린아이의 영웅이 되었다. 서로가 서로를 길들이게 된 것이다. 완전한 만남이 이루어졌다. 요즘 많은 사람들이 개를 기른다. 처음에는 사람이 개의 영웅이었을 것이다. 그러다 차츰 개가 사람의 영웅이 되어가며, 서로의 만남이 완전해져 갈 것이다.

 

우리는 사람과 사람이 무한 경쟁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래서 다들 외롭다. 서로 모래알처럼 버성기게 된다.

 

‘아, 우리는 서로를 길들이고 싶다! 서로를 완전하게 만나고 싶다! 더 큰 내가 되고 싶다!’ 

 

[고석근]

수필가

인문학 강사 

한국산문 신인상

제6회 민들레문학상 수상.

이메일: ksk21ccc-@daum.net

 

작성 2023.03.23 12:29 수정 2023.03.23 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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