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아의 산티아고 순례기] 하늘의 변화

이수아

오늘 걷기는 아주 특별했다. 왜냐하면 온종일 어떤 순례자도 만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오직 만난 사람이라곤 출발 후 약 5분 뒤에 내가 추월한 하르트무트 한 사람뿐이었다. 그는 어제저녁에 함께 즐거운 저녁식사를 한 사람이다.

 

지역 사람들은 순례자들에게 아주 친절했다. 그들은 가끔 가던 길을 멈추고 “순례 만세!”를 외쳤다. 어떤 사람들은 차 안에서 유쾌하게 경적을 울리며 손을 흔들었다. 그냥 지나치는 사람들에게는 “올라! 부에나스 디아스! 부엔 까미노!”라고 한 마디 응수하면 된다. 나는 오늘 비아나와 그 주변에서 훈훈한 인정을 느꼈다.

 

어제 내가 희망했던 그대로 나는 가까스로 해가 뜨기 전에 순례길에 올랐다. 어제보다는 늦었지만, 아침 6시 45분에 토레스 델 리오를 떠나 행군을 시작했다. 아침 식사 전에 적어도 한 시간 정도 걷는 것이 좋다는 것을 알았다. 오늘은 약 2시간 15분을 걸으니 첫 마을이 나왔다. 

 

발의 상태를 자세히 들여다보고는 물약과 일회용 반창고를 다시 사고, 두말할 것 없이 멋진 커피와 보카딜로를 사서 다시 순례길에 올랐다. 그리고 목표지점까지 한 번도 쉬지 않고 걸었다. 도착하니 오후 12시 30분밖에 되지 않았다. 

 

로그로뇨에 접근하면서 나는 사실 좀 더 걸어나아가고 싶었다. 내일은 제일 앞에 서서 선발대로 출발할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오늘, 지금까지 걸었던 날 중에서 가장 긴 여정인 30km를 걸었다. 그런데 지도를 보니 다음 마을 까지는 아직 12km나 남았다. 그래서 나는 그 자리에 그냥 머물기로 했다. 이것은 내일을 위해 오늘의 수고를 줄이는 방법이었다. 

 

오늘은 내 친구 루스의 생일이었다. 우리는 멋진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그의 질문 중 하나는 만약 순례길에서 길 찾기가 어렵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물었다. 꼭 지도를 보아야 하는지, 안내 표지판은 좋았는지 등등 말이다. 그런데 사실은 순례길에서 지도를 볼 필요가 없었다. 길가에 큰 입간판 지도가 자주 있기 때문이다. 길은 일반적으로 잘 표시되어 있었다. 가리비 조개나 노란색 화살표 혹은 다른 이정표들이 많은 도움이 되어 주었다. 가끔 길을 잃고 방황하게 될 경우에도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상식으로 순례길에서는 해결할 수 있었다. 

 

이들 표지판을 보고 따라가다 보면 가끔 깜짝 놀라게 된다. 이것들은 우리가 어린 시절 게임을 하는 것과 비슷하다. 숫자를 따라 점을 이어 그림을 그리는 놀이와 흡사한데 재밌는 놀이를 하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표지판을 따라 가면 잃었던 길을 되찾고 다시 순례에 집중할 수 있다.  

 

오늘따라 내가 속해 있는 ‘스코티시챔버오케스트라’가 생각났다. 왜냐하면 스코티시챔버오케스트라 창립 40주기 기념일이기 때문이었다. 기념행사를 축하하고 멋진 만찬과 함께 공연과 시상식으로 우리 단원들은 오늘 최고의 날을 보내고 있을 것이다. 이처럼 멋진 이벤트에 참석하지 못해서 나는 아주 많이 서운했지만 순례길을 걸으면서 내면의 고요를 통해 서운한 마음도 안개처럼 사라지고 말았다.  

 

점심을 먹고 나는 제이드와 죠지로부터 쉴만한 좋은 장소를 찾았는지 묻는 문자를 받았다. 로그로뇨에서는 다양한 숙소를 선택할 수 있었다. 내가 찾아낸 곳은 깨끗하고 넓으며 아름다운 옛 건물을 현대식으로 개조한 숙소였다. 몇 분 후에 그들이 당도했다. 우리는 관광을 하는 척하면서 스페인 전채요리인 타파스를 찾아 돌아다녔다. 이 지방의 리세르바 레드와인을 맛보고 나서 밀가루 튀김요리인 츄로스와 초콜릿 앞에 두 손을 들고 말았다.

 

나는 행군용 지팡이를 하나만 갖고 왔기에 하나를 더 사기로 했다. 두 개를 짚어야 확실히 최상의 상태가 된다. 이런 최상의 상태를 생각하자 통증과 고통이 모두 사라지고 결국 두 배로 더 빨리 갈 수 있을 것 같은 착각에 사로잡혔다. 5분 정도를 걷자 가게가 나왔고 가게로 들어가 지팡이 하나를 샀다. 나의 완전무장은 이제 이루어졌다. 

 

오늘 날씨는 하늘에 변화가 있는 것 같았다. 지금까지는 매년 이맘때 쯤과 비교하면 이상하리만치 좋은 날씨의 연속이었다. 시원해서 출발하기 좋았지만, 한낮엔 뜨거운 태양이 열기를 더했다. 날씨는 계속 맑다가 이따금 찬바람이 불고 광풍이 몰아쳤다. 비록 태양 아래 맑은 날씨지만 방풍 옷을 꺼내 입어야 했다. 오후에는 더욱 날씨가 험해져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내일은 눈까지 온다는 예보다.

 

오늘 밤에는 또 다른 아홉 사람을 위한 친교의 만찬이 있었다. 요리는 제이드와 죠지의 몫이었다. 와인은 넘쳐났고 우리의 만찬은 늦은 밤까지 계속되었다. 하마터면 필름이 끊어질 뻔했다. 이제 잠자리에 들 시간이다. 내일 6시 15분에 출발할 꿈을 꾸면서 꿈나라로 향했다. 

 

[이수아]

줄리아드음대 졸업

스코틀랜드 국립교향악단 단원

스코키시체임버오케스트라 수석 첼리스트

스코틀랜드청소년오케스트라 상임고문

Mr. Mcfalls Cahmber 창립맴버

이메일 :  sua@sualee.com 

작성 2023.03.24 11:14 수정 2023.03.24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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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