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런 상황이 너무 일찍 닥쳐온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나는 이를 예견했어야 했다. 그러나 내가 지나 온 날들은 믿기 힘들 정도로 극단적인 사건들과 감회로 가득했었다. 나는 그것들로부터 지워져 없어졌으며 더 이상 글을 쓸 수가 없었다.
나는 글자 그대로 내가 목격한 인간 정신의 깊이와 연민에 의해 압도당했다. 언젠가 먼 훗날 나는 이런 감정을 더 이야기할 것이지만, 지금은 아니다. 가장 후회스러웠던 날은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의 축구경기를 계속 보고 있을 만한 용기가 없었던 때였다.
9일째 되는 날 최초로 비에 흠뻑 젖어버렸다. 내가 만약 제대로 된 방수복을 입기 위해 멈추기만 했다면 이것은 완전히 피할 수 있었던 것이다. 나는 이미 어느 정도 기능을 하는 방수복과 모자를 착용하고 있었다. 게다가 비도 거세지 않았고 갈 길이 5km밖에 남지 않아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 결국 게으름의 대가를 치르고 말았다. 어쨌거나 따뜻한 샤워와 세탁기 덕분에 사태를 수습할 수 있었다. 여기 산토 도밍고 데 알카자에서 상황은 좀 나아졌다.
오늘 행군의 전반부는 숨 막히는 아름다움이었다. 기막히게 아름다운 눈 덮인 산꼭대기들이 이어졌고 서리가 내린 포도밭이 나타났다. 얼어붙어 땅위로 막 시작된 일출의 햇살이 따뜻한 입맞춤을 하면서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
아침 이른 시간에 걷다보니 내 손은 이미 얼어붙어 버렸다. 며칠 전 제이드는 그녀의 배낭을 정리하면서 내게 벙어리장갑 하나를 주었다. 이것이 큰 도움을 주긴 했지만 손가락은 고통스럽게 시렸고 손을 겨드랑이에 끼우는 것이 오히려 도움이 되었다. 지평선에 태양이 떠오르니 상황은 바뀌었다. 믿을 수 없을 정도였다. 아마 약간은 심리적 요인도 있었을 것이지만 태양은 너무 강력하여 순식간에 서리를 녹여버렸다.
어제는 너무나도 서정적이고 멋진 하루였기에 오늘 나는 약간 늦게 아침 7시쯤 출발했다. 어제는 지금까지 걸었던 길 중에서 가장 먼 거리인 30km를 걸었다. 그리고 가장 추운 날이었다. 눈과 우박이 내리고 햇볕과 푸른 하늘이 교차하는 시간이었다. 거센 바람을 막기 위해 나는 여행용 메리노 양모 외투와 방수 재킷을 입어야 했다. 이들을 모두 껴입고 배낭까지 메고도 한 번도 덥다고 생각된 적이 없었다.
나는 홀로 출발했다. 3시간을 걸어가니 마을이 나오고 카페가 하나 있었다. 순례길에서 대충 비슷한 속도로 가는 사람들은 여기서 다 만난다. 추위로부터 벗어날 수 있어 즐거웠다. 사람마다 추위를 이기는 방법이 따로 있었다. 어떤 이는 술로 추위를 녹이고 또 다른 사람들은 커피로 몸을 녹였다. 그래도 음식이 제일 반갑다. 여러 잔의 밀크커피를 마시고 나서 우리들의 작은 테이블에는 제이드, 죠지, 올란도가 둘러 앉아 기분이 제법 흥분된 상태였다.
4일차 되던 날 나는 올란도를 처음 만났었다. 그는 암석과 돌멩이가 가득한 산악지형의 제일 높은 곳에서 껑충 껑충 뛰어 내려가면서 나를 휙 지나쳤다. 앞질러 가면서 뒤돌아보고는 “이게 너무 쉬워!”라고 외치면서 금세 사라져 버렸다. 그때 나는 아주 조심스럽게 지팡이를 짚고 천천히 내려가고 있었다. 그렇게 제멋대로 달려 내려가는 그를 보면서 혹시 내가 미끄러져서 돌이라도 굴러 그가 다친다면 다가올 몇 주 동안이 걱정스러웠었다.
저녁에 로그로뇨에 일찍 도착하였을 때 올란도는 호스텔 카페로 와서 글을 쓰고 있는 나에게 블로그 주소를 물었다. 돌아가서 그것을 읽었나 보다. 얼마 후 그는 다시 내게로 와서 내 이야기에 흥미를 느낀다면서 그 자신도 피부암을 앓았다고 했다. 유별나게도 암은 눈에 발병했지만 운 좋게 일찍 발견하여 빨리 치료를 했다고 한다. 어떻게 그렇게 빨리 발견했느냐고 물었더니, 그는 도무지 믿을 수 없는 대답을 했다.
그의 사생활은 제쳐두고라도 약 20년 동안 일어난 일련의 사건들이 너무도 기이했다. 이런 일들이 그에게 특이한 결정을 하게 만들었다. 그 결정은 기적적인 상황의 연결이었고 결국 그의 암 진단에 이르게 되었다.
나는 너무 놀랐다. 우리는 비록 병이 무서운 것이지만 병 그 자체로부터 굉장히 가치 있고 긍정적인 면을 찾아낼 수 있다는 대화를 나누었다. 이점에 대해서는 우리 둘은 동의했다. 그의 처신과 태도에 나는 무척 깊은 감명을 받았다.
그 다음날 그러니까 어제, 아침 식사 때 그를 만났고, 몇 킬로미터를 더 가서 점심 때 우연히 다시 만났다. 날씨가 점차 변할 것 같아 우리 일행은 올란도를 그 카페에 남겨두고 떠났다.
내가 얼마나 놀랐는지 상상해 보라. 나제라에 있는 숙소에 도착했을 때 나는 올란도로부터 한 통의 이메일을 받았다. 우리의 자선기부 사이트에 그가 400파운드를 기부했다는 것이다. 감격해서 눈물이 앞을 가렸다. 룸메이트들이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고, 내 감정이 복받친 이유를 알고 나서는 안도하는 모습이었다. 낯선 사람들의 자비심은 경이롭고 놀라운 것이었다.
이 일이 있고나서 잠시 후 숙소의 무선망이 나에게 소식을 전했다. 남편 고든의 친구 그레미 던이 “당신이 나를 사랑함을 보여주세요!”라는 주제로 열었던 고든을 위한 파티의 비디오를 여러 개 보내왔다. 그 파티는 작년 2월 16일 에든버러성에서 열렸었다. 전 세계에 있는 고든의 가족과 친구들이 모여 노래와 춤으로 한바탕 어울려 그의 폭넓은 생을 축하하는 멋진 밤이었다.
나는 약간 걱정하면서 순례여행에서 처음으로 이어폰을 귀에 꽂고 비디오 영상을 틀었다. 그것은 내게 경탄스럽고 너무나 가치 있는 것이며 또한 도전적인 것이었다. 수건으로 얼굴을 가리고 엉엉 울었다. 팜프로냐에서부터 두 번째로 숙소의 동료가 된 오시는 가장 섬세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세련된 매너로 나를 달랬다.
30km의 힘든 순례길을 걷고 난 후에, 자비로운 기부와 비디오 영상을 접한 그 감격을 말할 수가 없었다. 내 마음은 완전히 무너져 버렸다. 그래도 나제라 주변을 산책하며 관광을 하는 것은 제대로 했다. 우리는 결국 여러 순례자들을 모아 군단을 이루었다. 그리고는 와인과 스페인 요리 타파스를 찾아 나섰고, 지역에서 추천할 만한 장소에서 거대한 순례자의 만찬을 즐겼다. 아쉬웠지만, 나는 너무 피곤하여 바깥에 머물러 바르셀로나와 마드리드의 축구경기를 볼 수는 없었다.
[이수아]
줄리아드음대 졸업
스코틀랜드 국립교향악단 단원
스코키시체임버오케스트라 수석 첼리스트
스코틀랜드청소년오케스트라 상임고문
Mr. Mcfalls Cahmber 창립맴버
이메일 : sua@suale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