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은숙 칼럼] 연명치료에 관한 소고

민은숙

‘내가 몸져누우면 큰 병이 난 줄 알아라!’ 

 

이 말의 주인공은 우리 엄마이다. 평생 보아온 엄마는 앉아서 휴식을 취하는 것이 굉장히 어색한 일이다. 언제나 잰 발걸음에 바지런하게 뭔가를 하고 계신다. 하다못해 할 일이 없다 그러면 아마도, 닦은 것을 재탕하실 수도 있다. 그만큼 끼니도 변변치 못하게 자시는데 지금껏 일정한 시간에 걷기 등 운동하신다. 어미 닭처럼 새끼를 챙기시는 것을 보면, 엄마의 건강 비결은 쉬지 않는 에너자이저인 듯한 동적인 활동일 것이라 미루어 짐작한다.

 

남다른 피가 그랬다. 백구두에 백 양복을 입으셨던 한 멋쟁이였던 외조부, 한복을 곱게 입은 비녀 꽂은 쪽머리 그 당시로는 대단히 늘씬하셨던 할머니도 매일 아침부터 쓸고 닦고 하신 걸로 기억된다. 

 

나는 그들을 닮지 않았다. 난 때로는 숨 쉬는 것도 귀찮은 사람이다. 아마도 외탁이 아닌 친탁을 했나 보다. 그래도 의외로 깡은 살아있다. 무시하지 말라. 큰코다치게 될 수도 있다. 한때는 속리산 문장대를 상품에 눈멀어 1시간 15분 만에 오른 사람이다.

 

2019년 10월 하순에 독감 예방접종 후 길랑바레 증후군이라는 생소한 이름의 병을 엄마가 앓았다. 네이버에 물어보니 친절하게도 프랑스 의사의 이름을 딴 병명이라고 말해 준다. 하지부터 시작되어 기도까지 마비가 급속도로 진행된다. 운신은 물론 물조차도 삼키지 못하는 희귀한 질환을 앓으신 엄마이다. 

 

내가 성인 된 이후로 처음 병상 신세를 지게 된 엄마는 덜컥 겁이 나셨을 것이다. 누가 알려주지도 않았는데도 당신이 보조 기구를 이용하여 병원 복도를 틈나는 대로 걷고 또 걸으셨다. 나가오 가즈히로의 저서 병의 90%는 걷기만 해도 낫는다는 글을 보신 적도 없는 분이다. 기적의 걷기의 힘 덕분일까. 삶에 대한 의지와 자식의 짐이 되기 싫은 열망 때문일까. 모든 것이 합쳐진 효과인지 모르지만, 예상보다 빠르게 회복했다.

 

힘겹게나마 걸음을 걸으시게 된 뒤로 제일 먼저 급하게 하신 일이 있다. 전화로 기관을 알아보시고 마음대로 되지 않는 무거운 다리를 두 팔이 끌고 갔다. 성치 않은 몸으로 해당 기관을 찾아가서 몸소 하신 일은 연명의료 의향서를 작성하고 접수한 일이다.

 

보건복지부의 통계자료에 따르면 연명의료 결정법을 시행하고 난 지난 2년간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에게 연명의료 중단 결정을 이행한 경우는 2018년 3만 1,765명에서 2019년 4만 8,238명으로 증가해 모두 8만 5,076명이었다. 또 담당 의사와 함께 ‘연명의료 계획서’를 작성한 환자는 3만 7,321명인 것으로 나타났다.

 

생애 처음으로 병원에서 몇 달을 투병하신 경험은 당신에게 계기를 마련해 준 것이리라. 치료해서 살 가망도 없다면, 호스 꽂고 침상에 누워 생을 연명하고 싶지는 않다고 하신다. 그런 상황이 발생했을 때 당신의 의향을 존중해 달라고 하신다.

 

연명의료 결정법은 본래 회복 가능성이 없는 환자의 자기 결정권을 존중하여,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보호하기 위해 마련됐다. 따라서 말기 진단받은 환자들은 상급종합병원의 담당 의사로부터 몇 번의 진료 과정을 통해, 자신의 상태와 예후에 대한 적절한 설명을 받을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더불어 환자와 가족 그리고 담당 의사 등이 함께하는 의사결정의 과정을 통해 연명의료 중단 결정을 포함하는 사전 돌봄 계획 수립의 일환이다. 호스피스 완화 의료에 대한 충분한 정보를 갖고 호스피스 전문기관을 찾아야만 한다. 

 

네덜란드에서는 이미 안락사를 허용했다고 들었던 기억이 있다. 뉴스에서 본 적 있는 돌봐줄 사람 없는 말기 암 환자. 동거하는 친구에게 너무 괴로우니 죽여달라고 했다. 가슴 아픈 고통을 지켜보았던 친구는 사랑하는 친구의 소원을 실천에 옮겼다. 그런데, 판사의 결정문을 뉴스에서 보니, 그냥 법 잣대에만 맞춘, 사람을 보지 않은 선언문이었다. 

 

법의 잣대로 차선의 방책, 그러니까 다른 방법으로 대체하라는 것이었다. 과연 그 판사들이 그런 상황이라면 돈도 없고 직장을 구할 수도 없고, 치료비는 비싼, 그들은 과연 다른 방법을 찾을 수 있을까 되묻고 싶다. 행복센터조차 하지 못하고 사회복지서비스가 하지 못했던 일을 소외계층인 그들이 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현대 사회에서 이제는 회복할 수 없는 말기 암 환자가 많아짐을 알고 있다. 주위에서 보면 죽음의 이유는 사고 아니면 암이 대부분이다. 이제는 어떻게 사느냐인 웰빙(well-being)과 함께 어떻게 잘 죽느냐가 중요한 시점에 와 있다. 그리하여 웰다잉(well-dying)에 대한 지대한 관심과 우후죽순 웰 다잉(well-dying)에 관한 세미나와 체험 교실이 생겨나고 있다. 

 

언제부터인가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서 연명치료에 대한 시각이 바뀌고 있다. 우리 삶의 시작과 끝이 아름답기를.

 

 

[민은숙]

충북 청주 출생

제6회 전국여성 문학 대전 수상

2022 문화의 도시 홍성 디카시 수상

제4회 코스미안상 수상

열린동해문학 사무국장

이메일 sylvie70@naver.com

작성 2023.04.05 10:58 수정 2023.04.05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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