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기행] 선비의 향기를 찾아서

마산합포구 구산면 내포리 '김해김씨 삼세 단비'의 내력

사진=코스미안뉴스 / 경남 창원시 마산합포구 구산면 내포리 김해 김씨 삼세 단비

 

경남 창원시 마산합포구 구산면 내포리에 살았던 김해 김씨들의 선영이 마산합포구 진전면 시락리 소포 산록에 있었는데 1963년 홍수에 유실되자, 김씨 문중에서 내포리에 단을 쌓아 비를 세워서 선대 영령에게 제를 올렸다.

지역 유생인 해산 이은춘(海山 李殷春, 1881~1966)의 유고집 '해산우고(海山愚稿)'를 국역하여 '나는 대한민국의 마지막 선비다'라는 책으로 출간하면서, 내포리의 '김해김씨 삼세단비' 비문을 해산 선생이 지어 주고 글씨까지 써 준 것이 확인됐다.
 
이를 확인하기 위해 해산 선생의 행적을 찾아 나섰다. 마산합포구 진전면 시락리와 구산면 내포리를 수차 방문하여 노인들을 인터뷰한 결과, 해산의 육필 비명을 찾아낼 수 있었다. 비는 구산면 내포리에서 욱곡리로 넘어가는 고개 아래 좌측에 위치하고 있다.

 

金海金氏 三世 壇碑銘

處士 金海金公 諱 重謙之位
 配 恭人 東萊鄭氏
處士 金海金公 諱 碩銓之位
 配 恭人 密陽朴氏
贈通政大夫 金海金公 諱 弘增之位
 配 淑夫人 慶州金氏

時當六月炎天 金鐘鈺 瓚坤 二君 奉其世譜 背汗添衣 訪余于鄙先室龜陽齋 請其壇銘 曰 吾家中祖三世封塋 在於昌原郡 鎭田面 時洛里 小浦山麓 而置其位土與禁養山 年年奉享于時祭也 于今百有餘年矣 不意 去年癸卯洪水之亂 先塋所在山全部陷落 三世先塋一時流失 年年時祭 元無奉享之所 爲其後孫者 豈不痛嘆乎 閤宗僉詢商議 設壇竪碑 以爲奉享之計 屬其碑銘於余 余累累辭絶曰 余本非其人 况又老衰 精神昏瞀 忘先失後者多矣 何敢當之 然屬之益甚 不獲已遂 奉審世譜 而叙之曰 右三世公 駕洛國 首露王之後 判圖判書 諱 管 號 靖醒軒 諡 文貞公之十三四五世孫也 文貞公生 諱 文淑 號晦明齋 是生 諱 伉 號 遯翁  是生 諱 湑 號 退坪 是生 諱 克一 號 慕庵 諡 節孝 是生 諱 孟 號 南溪 是生 諱 大有 號 三足堂 是生 諱 鉎 號 四時堂 是生 諱 一態 號 茅庵 是生 諱 秋逸 通政大夫 是生 諱 秀澤  是生 諱 重謙 幼有誠孝 七歲父病 斷指注血回生三日 有旌閭 墓在昌原鎭田小浦洞 壬坐 配墓合墳 是生 諱 碩銓 墓同原 配墓合墳 是生 通政大夫 諱 弘增 墓同原 配墓合窆 鳴乎 自諱重謙洎諱弘增三世封塋 盡沒水禍 爲其子孫之道 豈不寃盃乎 然天之行也 誰怨誰0 設壇竪竭 在於自盡其誠誠之所 在天必感之 况先靈乎 係以銘曰 鳴乎 惟公 駕洛靈源紫溪華閥 一時水亂 封瑩流失 難表遺跡 設壇竪喝 在天之靈 降斯席設 
 

甲辰 六月 晦日
全州 李殷春 謹撰  


김해김씨 삼세 단비명


처사 김해김공 휘 중겸지위

배 공인 동래정씨

처사 김해김공 휘 석전지위

배 공인 밀양박씨

증통정대부 김해김공 휘 홍증지위

배 숙부인 경주김씨

 

때는 6월 불볕 더위다. 김종옥과 김찬곤 두 사람이 그들의 족보를 갖고 땀 범벅이 되어 옷을 적신 채 비선실 구양재(현재 창원시 마산합포구 구산면 마전리 전주이씨 덕천군파 재실)에 있는 나를 찾아와 비석에 새길 글을 부탁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집안 중세조 세 분의 묘가 창원군 진전면 시락리 소포 산록에 있었다고 한다. 묘에 딸린 토지와 산지기를 두고 해마다 시제를 봉행한지 백년이 넘었는데 작년 계묘년(1963년) 홍수 때 선영이 있는 산이 전부 무너져 삼세 선영이 한꺼번에 떠내려가 없어졌다고 한다.  
 

해마다 시제을 지냈는데 이제 지낼 곳이 없게 되었으니 그 후손된 사람으로서 어찌 통탄하지 아니하겠는가. 그래서 집안에서 의논하여 단을 만들어 비를 세워 제를 올릴 계획이라고 말하며 그 비에 새길 글을 내게 부탁했다. 여러 번 사절하면서 나는 그럴만한 사람이 못된다고 하였다. 더욱이 늙어 정신이 어두워 이것 저것 잊어버린 것이 많아 감당하지 못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부탁이 더욱 심하여 족보를 받들어 살펴보고 글을 짓는다.

위 삼세 공들은 가락국 수로왕의 후손으로 판도판서였던 김관, 호 정성헌, 시호 문정공의 십삼, 십사, 십오세 손이다. 문정공이 김문숙을 낳았으니 호는 회명재다. 이 분이 김항을 낳았고 호는 둔옹이다. 이 분이 김서를 낳았고 호는 퇴평이다. 이 분은 김극일을 낳았으며 호는 모암이고 시호는 절효공이다. 이 분이 김맹을 낳았고 호는 남계였다. 이 분은 김대유를 낳았고 호는 삼족당이다. 이 분은 김생을 낳았고 호는 사시당이다. 이 분이 김일태를 낳았고 호는 모암이다. 이 분이 김추일을 낳아 통정대부가 되었다. 이 분은 김수택을 낳았다. 김수택은 김중겸을 낳았는데 어릴 적부터 효성이 지극하여 일곱 살에 부친이 병들었을 때 손가락을 끊어 피를 내주어 삼일 동안 회생하게 하였다. 정여각(효자문)이 있으며 묘는 창원군 진전면 소포동 임좌에 있다. 부인과 합분을 하였다. 이분이 김석전을 낳으니 같은 산에 묘가 있고 부인과 합분이다. 이분이 통정대부 김홍증을 낳으니 묘는 같은 곳에 있고 부인과 합폄이다. 

슬프다. 김중겸으로부터 김홍증까지 삼세의 묘가 모두 물난리에 매몰되었으니 그 자손된 도리로 어찌 원통하고 답답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하늘이 한 일이라 누구를 원망하고 누구를 나무라겠는가. 단을 설치하고 비를 세워 그 분들에게 진실로 정성을 드릴 장소를 마련하면 하늘이 반드시 감응하고 조상들도 감응할 것이다. 이어 비명을 쓰노라.

아! 공들은 오직 가락국의 훌륭한 뿌리를 갖고있는 자계서원(紫溪書院)을 가진 빛나는 문벌이라. 한 때의 물난리를 만나 묘소가 유실되니 남기신 자취를 표시하기 어려워 단을 설치하고 비를 세웠으니 하늘에 계신 영령께서는 여기 설치한 이 자리에 내려오소서.

갑진년(1964) 유월 그믐날
전주 이은춘 삼가 지음   

이 비명을 지은 해산 이은춘은 1881년 경남 창원군 구산면 마전리에서 태어났다. 퇴계와 한강 정구의 학맥을 계승한 선비로 남명 조식의 후학들과도 교분이 깊었다. 구한말 조선에서 태어나 대한민국에서 1966년에 생을 마감한 우리 시대의 마지막 선비 이은춘의 발자취를 따라가다 보면 싸리비로 맑게 쓸어낸 새벽 마당 같은 명징함을 만나게 된다.

유고집 ‘나는 대한민국의 마지막 선비다’에는 풍류, 우정, 세상살이, 유교행사, 잔치, 죽음 등을 소재로 한 주옥같은 한시 103수가 실려 있다. 상량문, 기문, 행장문, 통문 등 산문 9편은 선비정신이 깃든 담담한 수필들이다. 마지막에 첨부한 만장록은 해산 이은춘이 운명하던 날 제자들과 친지들이 남긴 이별의 만시 모음이다. 증손자 이봉수가  5년여의 시간을 공들여 번역해 낸 이 시대에 보기 드문 수작이다.

작성 2023.04.11 09:55 수정 2023.04.12 0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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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