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아의 산티아고 순례기] 병아리와 암탉

이수아

어제 산토 도밍고 데 라 칼자다에서 우리는 프란츠를 다시 만났다. 그와 팜플로냐에서 헤어진 후 처음이었다. 그는 속도를 내어 앞서갔지만, 산토 도밍고에서 하루 쉬고 있었다. 그는 유명한 병아리와 암탉의 닭장이 있는 성당 주변에서 나와 제이드, 죠지 그리고 오시를 만났다.

 

전설에 의하면 산토도밍고 성당은 사형선고를 받은 어느 죄 없는 가난한 순례자 소년을 구해기 위해 기적을 행사했다고 한다. 접시에 담긴 튀긴 암탉을 살려내어 날아가게 했다는 것이다. 

 

비로 인하여 아름다운 시내 관광은 중단되고 우리는 비를 피해 동네 선술집에 들어가서 리오하 와인 한 병을 놓고 더 나은 세상을 위해 모여 앉았다. 프란츠가 팜플로냐에서 아주 친절하게 나를 초대한 후 나도 한 번 저녁을 사기로 했다. 그는 현지 조사를 잘했고 우리는 왕이나 여왕보다 더한 순례자의 만찬을 즐겼다. 우리가 묵게 될 숙소의 통금 시간은 9시 30분인데 숙소 입구에서 담배를 피며 얼쩡대고 있는 사람들 덕분에 그 시간을 몇 분 지나서도 숙소에 들어갈 수가 있었다.

 

편안하게 감각이 없음

 

내가 만약 한 사람의 순례자처럼 된다는 확신이 없었다면, 나는 오늘 아마도 더 나아갈 수 없었을 것이다. 아킬레스건이 아프고 무릎도 쑤시고 뒤꿈치가 새로 아파서 서서히 출발을 해야만 했다. 한 시간 정도를 걷고 나서야 가까스로 몸을 풀 수가 있었다. 

 

점차 커피에 집착하게 되었다. 다음 마을까지 거리를 아는 것이 아주 중요했다. 그것은 자기만의 걸음걸이로 거리를 측정하는 문제다. 만약 내가 6km를 가고 나서 다음 마을에 커피가 없다면 얼마나 실망하겠는가. 

 

오늘 아침 산토도밍고를 출발할 때부터 바람이 보통이 아니었다. 대다수 사람들은 숙소를 비슷한 시간에 출발하여 길 위에는 긴 악어꼬리처럼 순례자의 행렬로 이어졌다. 나는 맨 뒤에 걸어가면서 우리 모두를 덮치는 강풍의 영향을 바라보는 것이 얼마나 재미있는지 알았다. 풍속은 시속 45km나 되었고 바람이 부는 방향에 따라 사람들은 거의 45도로 몸을 굽혀야 했다.

 

어떤 때는 바람머리가 하도 세어 마치 잠긴 대문이 들썩거리는 느낌이며,  어느 한 지점에 서 있어야 하는 처지가 되기도 했다. 나의 스코티지 챔버 오케스트라 동료들이 만약 지금 내가 잠자면서 걷는 예술을 마스터한 것을 알면 대단히 즐거워할 것이다. 나는 꾸벅꾸벅 졸면서 한결같은 속도로 걸어갔다. 이것은 내가 첼로를 마스터하기 위해 밤에 잠자지 못한 시간들을 만회하기 위한 특별한 재주일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나는 이것이 아주 평화스럽게 느껴졌다. 동시에 바람이 몰아치면서 내 얼굴에 바람의 파편들을 튀는 와중에서도 명상을 할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이다. 울부짖는 바람의 느릿한 시간을 나는 마음속으로 녹음하며 걸었다. 방수복 모자를 쓰고 있으니 귓전에 비바람이 요란하게 소리쳤다. 

 

1) 저음은 여러 대의 전투기가 이륙하는 소리

2) 중간음은 이착륙하는 무인기 드론의 소리

3) 고음은 휘파람 합창단 소리

4) 그리고 오래된 레코드판이 삐걱거리며 돌아가는 소리. 얼마나 낡았는지 내 모자를 때리는 것 같은 빗소리의 강열함에 시달렸다. 그것은 아무도 듣고 싶어 하지 않는 나의 엉터리 고음 멜로디에 맞춘 반주 같았다. 

 

이럴 때에는 길과 걷는 속도의 단조로움이 가끔 발과 다리의 고통을 잊게 해주곤 했다. 나는 감히 이런 상태를 ‘편안한 무감각’이라고 불렀다. 난폭한 바람은 온종일 누그러들 줄 모르고 특이하게 나의 사운드트랙 볼륨이 귀를 멀게 할 정도로 올라갔다. 그 이유는 내가 폭풍우를 꾸짖는 고함을 질렀기 때문이라면 이해가 될 것이다.

 

내 바지가 비록 방수였지만, 이런 비바람에는 속수무책이었다. 다리는 길쭉한 호박처럼 얼어버렸다. 고통을 잊고 전진하기 위해서는 이런 상황에서 벗어나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나 자신은 이것을 ‘뚜벅뚜벅 걷기’라고 명명했다.

 

결코 참을 수 없는 고통 하나는 손가락 통증이었다. 제이드가 준 손가락이 나오는 벙어리장갑에 무척 감사했지만, 지금 그 장갑은 완전히 젖어서 울부짖는 바람과 우박에 노출된 손가락을 엉망으로 만들어버렸다. 나는 이것까지도 ‘편안한 무감각’이라 할 수는 없었다. 그것은 극도의 고통이었다. 그래도 내 손은 지팡이를 짚고 길을 인도하며, 지금 상황에서 속도와 리듬 조절을 위해 너무나 소중한 것이었다.

 

나는 손을 방수복 재킷 소매에 넣어 감싸기를 시도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재킷 소매도 완전히 젖어 피난처가 될 수 없었고, 손가락에 닿으니 오히려 더 차갑게 느껴졌다. 이제 더 이상 지팡이를 짚을 수도 없는 상황이 되었다. 결코 매력적인 모습은 아니었다.  

여기서 엉덩이 고통으로 고생하는 오시가 내게 큰소리로 외쳤다. “손가락을 입에 넣어!” 마지막 깔딱고개를 오르자 마을처럼 보이는 것이 나타났다. 기뻐서 눈물이 날 뻔 했다. 대신 나는 마지막으로 손에게 항복하여 지팡이를 겨드랑이에 끼우고는 손을 소매에 집어넣고 다시 혈액순환이 되게 했다. 지금까지 계속 내린 우박으로 경치는 온통 아름다운 백색으로 변해 버렸다. 그러나 땅은 진흙탕으로 엉망이 되어 위험이 점차 더해갔다.

 

제이드, 죠지 그리고 나는 서로 재촉하며 마을을 관통하여 임시 숙소들을 그냥 지나치고는 모든 순례자들이 격찬을 아끼지 않는 꾸아트로 칸토네스 숙소를 찾았다. 마침 우박이 잦아들며 눈으로 변했다.

 

최종적으로 거기 도착했을 때 우리는 즐겁게 문 안으로 들어가기에 앞서 서로에게 쌓인 우박과 눈을 털어주었다. 하르트무트와 리처드는 우리가 우박을 견뎌낸 최후의 시간을 알지 못하는 듯 벌써 행복하게 침낭 속에 자리를 잡았다. 그것은 일찍 일어난 대가였다.

 

우리가 추위를 녹이고 샤워를 한 후 몸을 말리고 나니 다시 태양이 빛나고 완전히 다른 날처럼 변했다. 저녁을 어떻게 먹을지 의논했다. 숙소 2층에 식당이 있었지만 다음 주에 문을 연다고 한다. 그래서 공동요리가 더 나을 것 같았다. 외식보다 공동요리를 할 때면 줄곧 제이드가 요리를 했기에 오늘 저녁 식사는 내가 맡겠다고 제안했다.

 

제이드, 죠지 그리고 하르트무트와 함께 슈퍼마켓을 둘러보는 것이 즐거웠다. 각자 요리에 넣을 것을 선택하는 임무를 띠고 있었다. 전체 저녁식사는 재벌 그룹처럼 되어버렸다. 부엌은 작고 필수적인 주방기구도 부족했다. 부엌에 칼이 하나 밖에 없어 주머니 속의 칼을 찾아 이것저것 자르는데 도전하기로 했다. 

 

약 열흘 전에 출발한 순례자 무리들은 이제 완전히 일체가 되었다. 갈수록 숫자를 더하고 어떤 때는 온종일 그들을 보지 못하면 혹시 그들이 끼니를 어떻게 해결했는지 궁금하기도 했다. 큰 식탁은 축제 분위가 되어 온통 즐거움으로 가득 찼다. 지금까지 가장 큰 저녁식사였고 우리는 20명의 식사를 준비해서 함께 맛있게 먹었다.

 

[이수아]

줄리아드음대 졸업

스코틀랜드 국립교향악단 단원

스코키시체임버오케스트라 수석 첼리스트

스코틀랜드청소년오케스트라 상임고문

Mr. Mcfalls Cahmber 창립맴버

이메일 :  sua@sualee.com

 

작성 2023.04.14 11:29 수정 2023.04.14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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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