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천 한천사
맞다. 그리움은 환각적이다. 그래서 고질병이다. 나는 녀석이 그리웠다. 매일 그리웠다. 나는 내 그리움의 증거를 컴퓨터 바탕화면 위 ‘자인헌’폴더에 잔뜩 가지고 있다. 800만 화소의 갤럭시노트2 핸드폰 사진 파일에도 들어 있어서 언제든지 녀석을 불러내어 볼 수 있다. 녀석에겐 견공처럼 한결같은 충성심이 없는데도 나는 녀석이 그리웠다. 금요일 오후, 자인헌에 도착해서 문을 열고 청소를 하고 있으면 어떻게 알았는지 귀신처럼 나타나 내 곁을 맴돌면서 반가워한다. 그리고는 밤새 문 앞에 앉아서 내 곁을 떠나지 않는다. 그러나 절대복종의 섬김은 녀석에게 없다. 나에 대한 녀석의 소통은 철저하게 자유를 전제한다. 그래서 녀석의 도도함은 가끔 변덕스러움으로 오인되곤 하지만 그런 이기적인 도도함이 나를 환각으로 빠트리곤 한다.
나는 녀석을 부를 때 그냥 ‘고양아’라고 한다. 딱히 이름을 짓지 않은 것은 녀석을 존중하기 때문이다. 녀석은 녀석의 권리대로 소백산의 너른 품에서 자유롭게 살아야 마땅하기 때문이다. 녀석과 나의 만남은 순전히 우연이었다. 자인헌이 소백산에 있었고, 녀석이 소백산에 살아서 그래서 만났을 뿐이다. 우리는 둘 다 소백산 광신도였다.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딱 그만큼의 거리를 두고 매일 안부가 궁금하고 매일 그리운 사이다.
고양이가 대답하고 인간이 묻다
어느 날 녀석이 새끼를 두 마리 낳아 데리고 왔다. 말갛게 쳐다보는 눈동자가 어찌나 사랑스럽던지 세상의 근심이 다 사라지는 것 같았다. 변두리 삼류작가의 고달픔도 새끼들의 순수 앞에선 잊어버리곤 했다. 녀석의 야생은 소백산에 빛나고 나의 이성은 소백산에서 존엄해지는데 녀석은 가끔 아수라백작처럼 두 개의 얼굴을 드러내며 내게 말했다.
너의 짝퉁 마음에선 막장냄새가 나…….
들키고 말았다. 나는 소백산에서 은밀하게 은둔자의 삶을 꿈꾸려는 마음을 녀석에게 들키고 말았다. 그런 마음을 짝퉁이라고 몰아붙이는 녀석에게선 단독자의 냄새가 났다. 내가 한때 경배했던, 그리고 지금도 나도 모르게 경배할지도 모를 ‘은둔자’에 대한 동경의 마음이 다 짝퉁이라니 할 말을 잃은 나는 차라리 녀석을 경배하고 싶었다. 녀석의 말이 내 가슴에 박혀 파르르 떨렸다. 다 들키고 만 마당에 털어놓자면 그건 짝퉁이 맞다. 그래 짝퉁마음이다. 진짜는 어디에 있는지 나도 모른다. 나는 늘 짝퉁을 진짜라고 믿으며 살았다. 그래야 편하니까. 그런데 녀석에게 들키고 나서 생각해 보니 무無마음이 상팔자다. 그러고 보니 나는 소백산에서 녀석을 만난 건 수지맞는 장사다. 아니 대박이다. 녀석은 소백산을 한 발짝도 떠나 본적이 없는데 결코 소백산에 한 번도 얽매여 있지 않았나 보다. 지겨운 밥벌이를 어서 끝내고 소백산으로 돌아와 녀석과 막걸리 잔을 주고받으며 천천히 늙고 싶다. 자꾸 어긋나는 삶의 뼈마디들을 다시 끼워 맞추며 나는 미당선생처럼 주문을 왼다.
-문 열어라 꽃아 문 열어라 꽃아
-문 닫아라 고양이야 소백산 문 닫아라 고양이야
소백산을 고양이에게 맡기고 나는 풍기를 지나 예천 길을 달렸다. 들판에 곡식이 익어 가는데 마음이 허허롭다. 짝퉁마음의 흔적을 지워야 한다. 예천 증거리 아래를 지나며 ‘한천사’의 이정표가 눈에 들어왔다. 그래, 저 곳에 가야한다. 나를 기다리는 ‘참’이 있는 곳, 그곳의 부처를 만나야 한다.
한가로운 마을 끝, 주마산 아래 한천사가 나직이 몸을 누이고 있었다. 유서로 따지자면 천년이 넘었지만 절은 돌아와 거울 앞에선 누님처럼 작고 소소했다. 부석사가 의상대사와의 깊은 인연으로 지어졌다면 인근의 예천, 봉화, 풍기에 있는 작은 절들이 다 의상대사와 인연을 두고 부석사를 호위하고 있다. 한천사도 마찬가지만 구구절절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한천사의 내력보다 한낮의 태양아래서 마당에 김장배추를 심고 있는 보살님의 침묵이 더 애잔했다. 보살님의 손끝에서 심겨진 백여 포기가 넘는 배추들이 절식구들의 겨울을 위해 열심히 제 몸을 익히고 있었다. 마치 선정에 든 수행승처럼…….
주승은 명상에 들었는지 보이지 않고 철조약사여래좌상이 대적광전을 지키고 있었는데 자세히 보지 않아도 보물임이 틀림없어 보였다. 가장 오래된 철불이란 타이틀이 사람의 마음을 끄는 게 아니라 천 년 전 신라인의 얼굴이 거기 있어서 마음을 끌었을 것이다. 나는 두 손을 모아 합장을 했다. 일배를 하고 나니 턱 밑까지 차올랐던 한숨이 빠져 나갔다. 이배를 올리고 일어서자 그리움에서 환각이 사라졌다. 다시 손을 모우고 삼배를 마치니 허허로움이 연기처럼 풀어졌다. 나는 내 가없는 소백산과 소백산 고양이를 위해 앉아 명상에 들었다. 세월을 이길 수 없을 나이쯤이면 나는 서울과 말끔하게 이별을 하고 소백산 자인헌에 들어앉아 고양이가 될지도 모른다. 그때 나는 환각으로 지은 그리움을 버리고 한천사의 철부처님처럼 천년을 그렇게 앉아 있을지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