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아의 산티아고 순례기] 뜨거운 물에 들어가기

이수아

새벽 3시를 조금 지나서 일어났다. 이제 이런 일이 일상이 되었다. 지난여름 이후 불면증은 내 생활의 일부가 되었다. 문제는 잠에 떨어지는 데에 있지 않고 오히려 수면장애에 있었다. 나는 다양하고 높은 수준의 성공적인 치료를 시도했었다. 그래도 운이 좋아야 밤에 겨우 4시간 정도를 잘 수 있을 뿐이었다. 

 

순례길에서 좋은 공기를 마시고 운동을 하면 자연치료가 될 것을 기대했다. 지금까지는 아직 이렇다 할 진전이 없었다. 그러나 일이 어떻게 진행될지 바라보는 것이 행복이라고 생각했다.

 

아침 식사를 하면서 창문 밖을 내다보니 간밤에 눈이 제법 온 것을 알았다. 오늘 길은 높은 지대가 포함되어 있다. 그래서 그 높은 곳이 어떠할지 걱정하는 소리가 들렸다.

 

다시 우리는 대략 7시 30분에 비슷하게 출발했다. 그리고는 또 다른 긴 악어꼬리를 만들었다. 나는 모자를 편안히 눌러 쓰고 많이 듣거나 보지 않으면서 걸으니 홀로 무척 행복했다. 

 

내 마음은 이리저리 방황하며 생각 속을 돌아다녔다. 만약에 우리가 먹다 남은 고추를 숙소에 있는 병아리 같은 투숙객들에게 뿌리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황당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끔직한 일이다. 이때 나뭇가지에서 엄청난 눈이 쏟아져 내려 내 모자 위에 쌓였다. 나는 퍼뜩 정신을 차렸다. 아마 하늘에서 나의 못된 생각에 벌을 내린 것인지 모른다.

 

첫 번째 마을에 가니 누군가 눈 위에 ‘HOOLLAAA!!!’라고 새겨 놓았다. 이것은 그를 아는 사람들이 나타나면 안토니오가 절규하는 외침이었다. ‘HOOLLAAA!!!’는 순례자들에게 가슴 따뜻한 전염성이 있는 것으로 반복적인 메아리가 되었다.

 

날이 밝고 45분쯤 지나 겨우 준비운동 정도 했을 때, 첫 마을에서 커피를 마시기 위해 쉬는 것은 너무 일러 보였다. 그래서 나는 다음 목적지를 향해 4km 정도 더 걷기로 했다. 그곳에 이르니 ‘100m 전방에 가게’라는 표시가 있어 언덕을 약 10분 정도 야생 거위처럼 따라 내려갔더니 이번 철에는 장사를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결국 2km를 더 가서야 나는 커피와 옥수수로 만든 팬케이크인 토티야를 구할 수 있었다. 길고 끝없이 쏟아지는 눈과 진흙탕의 연속인 하루였다. 밤새 내린 눈은 4-6인치 정도 쌓였으며 산길을 오르는 동안 눈과 진눈개비는 계속 내렸다.

 

정말 기막힌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양모 양말을 벙어리장갑처럼 끼는 것이었다. 안 하는 것보다 낫지 않은가. 양모 양말을 손에 끼니 훨씬 나아졌다. 나는 앞서가는 순례자들을 따라가기 힘들다는 것을 알았다. 왜냐하면 길이 진흙탕으로 뒤범벅되어 미끄럽기까지 해서 잘 걸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 아무도 밟지 않은 새 길을 걷는 것이 오히려 나았다. 이것은 또 다른 문제를 야기했다. 우선 깊은 눈 위에서 발을 더 넓게 뛰어야 하니 더욱 힘들었고, 두 번째는 눈으로 뒤덮인 찬 물웅덩이를 발견할 수 없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우리 그룹 중 한두 명은 날씨 때문에 여기서 버스를 탔다. 그리고 일부는 돌아서는 것을 다른 순례자들이 재촉하여 돌려 세웠다. 꼭대기까지 400m가 남았고 최종 목적지 까지는 15.5km가 남았다. 끝이 없어 보였다. 내가 식당 바에 도착했을 때 가능하다면 이것이 오늘의 마지막 종착지가 되기를 바랐다.  

 

여기 있는 숙소는 수도원을 개조한 것으로 온수와 난방이 없다고 소문이 나 있어 대다수 사람들은 다시 4km를 더 걸어 언덕 아래에 있는 다음 마을로 향했다. 나는 너무 지쳤고 발은 젖어 버렸다. 지난번 내가 점심을 먹고 커피와 브랜디를 마셨던 수도원 숙소는 온수와 난방이 있었다. 바로 그거다 하고 결론을 내렸다.

 

수도원은 꽁꽁 얼어붙어 있었다. 그러나 주인은 우리를 위해 난방 스위치를 켰다. 큰 방에 28개의 침실이 있었으나 오로지 우리 7명 전부였다. 우리가 도착했을 때 어떤 여인 한 명은 침낭에 박혀 온종일 나오지 않았다. 아마 그녀는 며칠을 그러고 있었나 보다.

 

거기에는 미국인 두 명이 하나의 침낭 속에 들어가 몸을 녹이고 있었다. 저녁 늦게 그들과 이야기해 보니 그들은 순례길 초입에서 우리와 만났던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여기까지 오는데 4주가 걸렸다고 한다. 나와 동행하는 친구는 이제 제이드, 죠지, 하르트무트가 전부다. 첫 번째 관심사는 샤워였다. 남녀가 분리된 각각의 욕조가 있어 너무 반가웠다.

 

제이드와 나는 온수가 있다는 말이 맞는지 좀 의심스러웠다. 그래서 완전히 옷을 벗고 샤워를 하기 전에 내가 기니피그가 되어 실험을 해보기로 했다. 샤워의 압력은 괜찮았다. 몇 분간 찬 물이 나오더니 너무나 기쁘게도 결국 따뜻한 물이 쏟아졌다. 샤워기를 멈추게 하는 후크가 없어 샤워를 준비할 동안 그냥 수도꼭지에 걸어두었다.

 

그런데 갑자기 엉망이 되어버렸다. 샤워꼭지의 압력 때문으로 추측되는데 샤워기는 몸부림치는 뱀처럼 사방으로 뜨거운 물을 뿜으며 나뒹굴었다. 나는 처음에 어쩔 줄을 몰랐다. 너무 흥분한 상태였지만 다음과 같은 순서로 일을 처리했다.

 

1) 수건과 옷이 젖지 않도록 끄집어내는 것

2) 빨리 옷을 벗어 나머지 옷들이 젖지 않게 하는 것

3) 꿈틀대면서 뜨거운 물을 이리 저리 뿌리는 샤워 헤드를 고정시키는 것

 

나는 놀라서 계속 비명을 질렀다. 제이드가 이 우스꽝스런 광경을 보고는 곁에 서서 배꼽을 잡고 크게 웃었다.

 

 [이수아]

줄리아드음대 졸업

스코틀랜드 국립교향악단 단원

스코키시체임버오케스트라 수석 첼리스트

스코틀랜드청소년오케스트라 상임고문

Mr. Mcfalls Cahmber 창립맴버

이메일 :  sua@sualee.com

 

작성 2023.04.21 10:50 수정 2023.04.21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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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