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가 만나게 될 얼굴을 마주보기 위한 얼굴을 준비해야만 한다.
- 토머스 스턴스 엘리엇 Thomas Stearns Eliot (1888-1965, 영국의 시인)
오늘 아침 다음과 같은 인터넷 기사를 보았다.
‘“왜 쳐다봐”...처음 본 남성 10분간 폭행한 고등학생’
‘자정이 조금 넘은 시간, 친구와 함께 주택가를 걷던 ㅇ군은 마주 오던 60대 남성 쪽으로 다가가더니 다짜고짜 때리기 시작했다.’ ‘그 남성이 길에 널브러지고서야 ㅇ군은 폭행을 끝냈다. 경찰 조사에서 ㅇ군은 그 남성이 자신을 쳐다보자 기분이 나빠 때렸다고 진술했다.’
‘본다고 사람을 때려?’ 이 기사를 보는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생각하겠지만, 우리도 누가 자신을 봤을 때 기분이 나빴던 기억들이 떠오를 것이다. 시선은 권력이기 때문이다. 짐승들은 길을 가다 마주 오는 다른 짐승과 눈이 마주치게 되면, 서로 잠시 바라본다.
그러다 약자는 눈을 내리깔게 된다. 약자는 먹이가 되거나 강자의 눈빛을 피해 슬금슬금 도망가게 된다.
우리에게는 짐승의 본능이 있다. 아마 ㅇ군은 평소에 어른들의 눈빛에 대하여 불만을 품고 있었을 것이다. 교사가 그를 바라볼 때 그는 눈을 내리깔아야 했을 것이다. 그는 자라나면서 얼마나 많은 어른들의 눈빛을 피해왔을까?
어떨 때는 불량스러워 보이는 ㅇ군의 눈빛을 어른들이 피해왔을 것이다. 그의 무의식에 꼭꼭 눌러왔던 어른들에 대한 분노가 그날 폭발했을 것이다. 그에게 폭행을 당한 ‘60대 남성’에 대해 생각해 본다. 나도 60대라 어느 날 그런 봉변을 당할까 봐 두렵다.
나는 자주 공원에 간다. 강의를 오고 가며 공원의 벤치에서 쉬게 된다. 그때마다 나는 60대 이상의 남성들의 눈빛을 자주 의식하게 된다. 그들은 나를 한참 쳐다본다. 그들은 사람을 오래 바라보는 것이 예의에 어긋난다는 것을 모르는 듯하다. 나는 그 눈빛 속에서 그들의 오랜 ‘집단주의’를 본다. ‘한 사람’을 그 자체로 인정하지 않는 전체주의.
나는 그들의 눈빛이 마냥 나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낯선 사람하고도 대화를 하고 싶어 하는 것 같다. 하지만 막상 그들과 대화를 해보면, 대다수 사람들은 ‘왕년의 자랑’을 늘어놓기 바쁘다.
대화가 아니라 독백을 한참 하다가 간다. 그러니 젊은 세대들에게 꼰대 소리를 듣게 된다. 그들과 달리 요즘 젊은이들은 남에게 무관심한 듯하다. 대개는 남의 눈과 아예 마주치려 하지 않는 것 같다. 그런 젊은이들은 잘살고 있을까? 인터넷에 나온 기사다.
‘“명문대 가야” 닦달 후회 검사했더니 병원 가야’
‘저녁 식사는 홀로 편의점에서 하고, 인간관계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만 하는데 아이가 우울증에 걸릴 수밖에 없다.’
‘서울 강남에서 최근 10대 청소년 3명이 잇따라 극단선택을 하면서 상대적으로 부유한 강남에도 사각지대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실감하며 착잡한 표정을 짓고 있다.’
20세기의 위대한 시인 엘리엇은 말했다.
“우리가 만나게 될 얼굴을 마주보기 위한 얼굴을 준비해야만 한다.”
인간은 타고나기를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존재’다. 홀로가 되면, 견디지 못한다. 홀로는 ‘함께’가 되어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홀로가 없는 함께’가 되어서는 안 된다. 그건 히틀러의 파시즘, 전체주의다.
우리 사회를 이끌어가는 기성세대는 젊은이들이 왜 그리도 자신들을 강하게 거부하는지를 알아야 한다. 60대 이상이 갖고 있는 함께와 젊은이들이 갖고 있는 홀로가 서로 아름답게 만날 수는 없을까?
4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추억과 욕망을 뒤섞고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운다
겨울이 오히려 우리를 따뜻하게 해 주었다.
망각의 눈으로 대지를 덮고
마른 뿌리로 약간의 목숨을 남겨 주었다.
- T.S. 엘리어트, <황무지> 부분
나는 2월을 가장 좋아한다. 기다림이 있어 좋다. 3월에 피어날 새싹들을 상상하며 산길을 거닌다. 겨울 산에는 ‘마른 뿌리’들이 묻혀 있다. 그들 곁으로 흐르는 물소리가 들린다. 뿌리들이 기지개를 켠다.
하지만 막상 봄이 오면, 곳곳에 피어나는 꽃들이 슬프다.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다. 4월에는 이 세상이 ‘황무지’임이 선명하게 보인다. 인간 세상에는 언제 꽃이 피어났던가?
[고석근]
수필가
인문학 강사
한국산문 신인상
제6회 민들레문학상 수상.
이메일: ksk21ccc-@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