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일의 책] 바다로 가는 택시

김창환 지음

구르지 않는 것은 택시가 아니다.
인생도 굴러야 제 맛이 난다.
 


바다로 가는 택시! 제멋에 취해 대관령에서 폼 나게 살다가 잘나가던 대기업 연구원 자리 때려치우고 감자농사, 돼지똥거름장사. 밥장사를 하면서 전국을 유랑하던 역마살 낀 강원도 촌놈, 그 마저도 다 말아먹은 뒤 쪽박 차고 통영바다까지 흘러들어와 택시기사가 된 ‘낭만택시’ 김창환이 부르는 희망노래다.

고단하고 힘든 삶이지만 인생퇴출은 없다. 열 번 넘어지면 열 번 일어서는 인생역전 만이 있을 뿐이다. 이왕지사 사는 인생 재밌게 신나게 통쾌하게 살고 싶은 통영 택시기사 김창환! 어설픈 택시기사가 기를 쓰고 시내를 뺑뺑이 도는 것은 기다리는 사람이 있어서가 아니다. 구르지 않는 것은 택시가 아님을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다로 가는 택시를 타는 사람들은 절망감에 빠져 있다가도 희망을 덤으로 얻어가며 더불어 즐거워질 수밖에 없다.

낭만택시 김창환의 글 속에는 때론 가슴 뭉클하고 때론 속 시원하고 때론 웃음이 묻어나는 삶의 조각들이 녹아 있다. 솔직하다 못해 카타르시스를 안겨주는 그의 글은 고개가 끄덕여지는가 하면 어느새 눈물방울이 떨어지기도 하고 배꼽을 쥐고 뒤로 넘어갈 듯 웃기기도 한다. 그가 퍼트리는 희망바이러스에 감염되지 않을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팔순이 넘은 노모와 무르팍 쑥 삐져나온 추리닝의 그녀와 토끼 같은 딸아이, 그리고 누렁이 개 한 마리를 데리고 통영 미륵도 둔전마을에서 바다를 바라보며 살아가는 이야기가 보석처럼 알알이 빛나고 있다.

둔전마을 언덕길을 터덜터덜 걸어 내 집이 있는 산 밑으로 오르는데 빗물에 젖은 거미줄이 얼굴에 척 감겼다. 웃음이 났다. ‘별 게 다 사람을 우습게보네.’ 혼자서 미친놈처럼 킬킬거리며 마당에 섰다. 아직 집은 고요했다. 누렁이 녀석도 추적거리는 비가 싫은지 집에서 나오지도 않고 머리만 빠끔 내밀고 아는 체 눈인사만 하더니 귀찮은지 자리에 누워버렸다. 처마에 서서 담배 하나 물었다. 평소 같으면, 허탕치고 들어온 날은 빈 지갑의 미안함에 잠시 처마에 서성이다가, 에라 모르겠다 하고 되레 보무당당하게 쿵쾅거리며 들어갔었는데, 오늘은 영 그럴 기분이 아니었다. 처마 밑 의자에 멍하니 앉아 있다가 꾸벅꾸벅 졸다가 일어나 보니 먼 산의 실루엣이 드러나고 때마침 밝아오는 아침 햇살에 거미줄에 매달린 물방울이 보석이 되어 빛났다. 세상에서 내가 본 목걸이 중에 가장 아름다운 목걸이였다. 사진을 콕 찍고 신이 나서 마누라를 불렀다.

“당신 이리 와봐, 내가 당신 줄 진주 목걸이 하나 구했어!”
푼수 같은 신랑에 푼수 같은 각시라더니,
“어디, 어디?”
하며 급히 밖으로 나오더니 사진기를 들여다보고 실실 웃었다.
“맞아, 진주 목걸이. 거미가 나 줄려고 밤새 만들었나 봐.”
등신 같은 가스나다. 이 썰렁한 농담에도 화들짝 놀라며 웃어주니 참으로 등신 같은 가스나다. 둘이서 호들갑을 떨어가며 과장되게 웃었더니 눈물이 났다.

작은 기쁨도 크게 만들어 삶의 활력소로 사용하는 천진함이 그의 장점이자 그가 살아가는 방식이기도 하다. 인생유전 끝에 척추 계통에 병을 얻어 불편한 몸이지만, 그가 내뿜는 특유의 에너지는 가족과 주변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고 용기를 북돋아 준다. 그리고 긍정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 막다른 길에서도 조급해 하지 않고 천천히 걸어가는 그의 모습에서 세상의 지치고 고달픈 사람들은 위안을 얻을 수 있다. 그의 펜끝을 따라가다 보면 솔직함에 반하고 재밌는 소재에 무릎을 탁 치게 된다.

내 똥차가 퍼져서 정비소에 처박아 놓고 오디오 상태 양호한 새 차를 배정받았다. 덕분에 요한 쉬트라우스의 왈츠에 흠뻑 취해있다. 손님이 없어 빈차로 다녀도 나 오늘 무지 행복하다. 기분 죽인다. 멀리서 손님이 손을 든다. 저 손님이 타면 이 음악을 꺼야 할 것인지 말 것인지를 불과 삼초 이내에 판단하여야 한다. 앞에 술 취하여 흔들거리는 젊은 남녀 둘을 어쩌지? 에라, 미안하지만 그냥 가자. 신나는 떠버리 폴카가 끝날 때 까지만 승차거부다.

“야, 택시, 택시! 이 씨발롬아~”
“오~ 예! 나, 씨발롬 맞아!”

천천히 백여 미터쯤 지나자 신나는 폴카가 끝나가고 말끔한 차림의 남녀 손님이 손을 든다. 볼륨을 약간 줄이고 섰다.

“아저씨, 옥포!”

신나게 날아갔다. 테이프 한번 왕복으로 돌아가는데 사십분, 그 음악에 취한 채 운전하고 차비 사만 원 받고 돌아섰다. 기분 째지는 날이다. 폼 나게 돈 번 날!

이 책은 총 6장으로 되어 있다. 1장 〈바다로 가는 택시〉는 세상의 온갖 인생들을 실어 나르는 낭만택시기사의 솔직담백한 이야기가 실려 있고 2장 〈앉은뱅이의 역마살〉에서는 인생유전 끝에 통영까지 흘러와 살아가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3장 〈들마루와 별이야기〉는 강원도 촌구석 신림에서 어린 시절의 가난하지만 행복했던 날들을 웃음과 해학으로 풀어내고 있다. 4장 〈내 마음의 보석상자〉에서는 마음속에 간직해 두었던 아름답고 슬프고 애잔한 추억을 뽑아내고 5장 〈고향의 끈〉은 잊을 수 없는 고향에 대한 향수를 적은 것이다. 6장 〈촌놈의 순정〉에서는 노모와 그녀와 딸아이와 함께 지지고 볶으며 살아가는 이야기와 그가 꿈꾸는 세상을 그리고 있다.

 

자연과인문 刊 / 김창환 지음

 

작성 2023.05.16 09:46 수정 2023.05.16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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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