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동 용 (수필가/인문학자)
50년대 전쟁세대, 60년대 베이비 붐, 70년대 경제 기적, 80년대 민주화 운동, 90년대 거품 빼기, 2002년 월드컵, 2023년 누리호와 함께 펼쳐진 우주시대 개막, 우리는 정말 많은 것을 경험했습니다.
지난겨울 TV에서는 연일 김미선이라는 스케이트 선수가 화제였습니다. 작은 체구에도 불구하고 기적처럼 건장한 체구의 외국 선수들을 이겨 냈기 때문입니다.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을까요? 얼마나 많은 고통을 감내하며 연습을 했기에 저 정도일까요?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을까요? 그 선수의 귀여운 눈웃음은 이제 꿈에도 나타나 위로를 해 줍니다. 이제 그는 이길 일만 남았습니다. 승리의 기쁨을 누릴 일만 남은 것입니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예견하는 것은 섣부를 수 있지만, 그래도 하고 싶습니다. 희망찹니다. 즐겁기만 합니다. 이 시대에 살고 있어서 기쁘기 한량없습니다.
희망을 상실하고 있는 자들을 접할 때마다 들려 주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아직 기회가 많다고. 지금이 기회라고.
얼마 전에는 석사를 마치고 박사를 시작한다는 제자가 앙탈지게 반항을 했습니다. 열심히 노력하며 살라는 말에 귀엽게 저항을 했습니다. ‘사는 게 힘든데, 왜 자꾸 힘내라고 하는가?’ ‘살기 싫은데, 왜 자꾸 사는 데 목숨을 걸라고 하는가?’ 이런 질문은 질문을 위한 질문일 뿐입니다. 정답을 정해 놓고 듣고 싶은 대답을 종용하는 형식입니다. ‘나는 이런데, 너는 왜 그러냐?’ ‘나는 너와 다르다!’ ‘살기 힘들다!’ ‘살기 싫다!’ 이런 게 이미 정답을 형성하고 다른 말은 듣기 싫었던 것입니다. 이럴 땐 그저 위로보다는 공감해 주는 게 상책입니다.
그러고 나서 또 며칠이 지나서는 80이 다 된 제자가 실망스런 목소리로 말을 꺼냈습니다. ‘인생 다 갔다!’고. 그래서 나는 《로미오와 줄리엣》을 읽어 보라고 권했습니다. 감정이 삶을 되살려 줄 것이라고 일러 주었습니다. 그는 그런 일이 무의미할 뿐이라고 말하며 풀이 죽어 있었습니다. 마음은 마음먹기 나름인데 그는 다른 마음을 먹을 마음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사람들이 있기에 나도 있습니다. 오늘도 내일도 이런 이들에게 들려 줄 말을 고민하며 시간을 보냅니다. 기가 꺾인 사람들에게 들려 줄 찬송가를 짓는 마음으로 시간을 보냅니다.
오늘도 우이천을 따라 걷다 보면 수많은 사람들을 만납니다. 여유로운 사람들의 얼굴을 보고 있노라면 마음이 흥겨워집니다.
한 평생을 수유리에서 살았습니다. 물이 흐른다는 이 이름이 너무도 정겹습니다. 누구는 가난한 동네라고 흉보지만, 내게는 천국이 따로 없습니다.
늘 북한산이 등 뒤에서 버텨 주고 있습니다.
항상 인수봉이 환하게 이마를 드러내 놓고 빛을 발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들이 언제나 희망을 가지라고 응원해 주고 있습니다.
이번 2023년 봄학기를 키르케고르의 《유혹자의 일기》로 채웠습니다. 유혹하는 철학자의 진심이 읽혀져서 너무 행복했습니다.
유혹은 악마의 것으로 치부되어 왔지만, 철학자는 유혹도 기술임을 증명합니다. 최초의 유혹자는 에덴동산의 뱀이라고 알려져 왔지만, 그 뱀이 철학자임을 해명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변증법입니다. 이성理性은 기적이 맞습니다.
“향락하라. 쓸데없는 말일랑 하지 말고.” 철학자는 이렇게 명령합니다.
그는 젊음과 청춘과 아름다움에 대한 찬가를 불러 댑니다.
남자로서 철학자는 여자를 향해 진심을 드러냅니다. 철학자가 쓴 일기 속에는 선구자의 마음이 소개되고 있어서 경이롭고 놀라울 뿐입니다.
선구자는 용감했습니다.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선택하고 걸었습니다. 아무도 들려주지 않은 답을 들려 주었습니다.
대부분은 부끄러워 숨겼을 마음을 그는 꽃봉오리처럼 높이 세워 놓고 보여주었습니다. 그런 아름다움을 견뎌 냈기에 불멸이란 영광을 꿰찰 수 있었습니다. 덴마크의 철학자로서 고전의 반열에 오를 수 있는 영광이 그에게 주어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