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없이 일렁이는 파도 위에 서서

"'딩'나는 건 당연하다. 그건 내가 오늘도 파도에 뛰어들었다는 증거"



 넘실넘실 일렁이는 파도 속에 제 키의 2배가 넘는 보드와 저는 씨름을 하고 있었습니다. 처음 서핑을 배우는 거라 자세도 엉성, 파도 잡기는 시도도 못하고, 그저 파도가 이끄는 대로 흘러가다 보니 저는 계속해서 용왕님과 마주하기 일쑤였습니다. 그날 초보 수업을 들은 사람은 저와 또 다른 사람 한 명. 저와 달리 4번의 경험이 있었던 다른 수강생은 혼자서도 곧잘 탔지만, 저는 일어서지도 못해 강사님과 함께 넘실거리는 시간이 길어졌습니다. 거듭 물에 빠지고, 일어서질 못해 몸은 경직되고, 마음은 조급해지자 강사님은 '괜찮다'라며 다독여주었습니다. 원래 처음부터 잘 일어나는 사람은 흔치 않다면서요. 몸이 긴장되기 시작하면 잘 탈 수 있는 타이밍에도 탈 수가 없다고요. 저도 말로는 괜찮다며, 그냥 물에 떠있는 것도 좋다고 했지만 몸은 거짓말을 할 수 없었나 봅니다. 한 번쯤은 일어서고 싶었고, 파도를 탄다는 느낌을 받고 싶었죠. 결국 그날 저는 겨우 한 번 일어나 파도를 탔고, 그 짜릿함이 좋아 다시 도전해 보기로 결심했습니다.

 기술적인 내용보다 오히려 심적 안정감을 주는 말을 더 많이 해주셨던 강사님 덕분에 그저 물이 이끄는 대로 흘러가는 시간들이 무의미하지 않았습니다. 사실 무의미해도 상관없었습니다. 모든 파도는 동일하지 않기에 경험이 많아야 보는 눈이 좋아진다는 것, 욕심내서 파도로 다가가지 않는 것 그리고 파도가 올 때 그 흐름에 맞춰 파도를 넘길 수 있어야 한다는 것 등등 끝없이 넘실거리는 파도를 통해 위안을 이미 얻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서핑을 할 수 있는 파도는 매번 오지 않습니다. 기다림도 필요하죠. 특히, 제가 갔던 고흥의 남열 해돋이 해수욕장은 만조일 땐 파도가 잔잔하기 때문에 정해진 시간의 간조 때 타야 했습니다. 게다가 그곳은 한번 파도가 오기 시작하면 연속적으로 4~5개 정도가 넘어오지만 또 일정 시간이 지나면 다시 잔잔해지곤 했습니다. 다 함께 라인에 맞춰 끝없이 펼쳐진 지평선을 보며 파도가 오기를 기다리는 사람들을 구경하는 것도 재밌었습니다. 파도에 대한 두려움이 조금 있었는데, 다들 그 두려움을 돌파하려는 모습을 봐서 그런 걸까요, 잘 타는 사람들이 참 멋있어 보였습니다.

 문진영 작가가 쓴 <딩*>이라는 작품에는 이런 말이 적혀 있습니다. (*딩: 서핑보드에 뭔가 부딪혀 난 상처)
 "딩나는 건 당연하다. 그건 내가 오늘도 파도에 뛰어들었다는 증거."

 서핑의 매력은 수없이 겪었던 '딩'에서부터 오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처음부터 잘 타는 사람은 없었을 겁니다. 여러 번의 딩과 또 매번 새로운 파도에 계속해서 부딪히며 자신만의 노하우를 만들어갔을 테니까요. 서핑이 재밌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이렇게 매력적일 줄은 또 몰랐습니다. 운동신경이 살짝 부족한 저는 아마 다음 서핑 때에도 연거푸 짠물을 마시겠지만, 그래도 괜찮습니다. 언젠가 제 타이밍에 맞춰 제대로 설 날이 찾아올 테니까요.


K People Focus 살구미나 기자 ( ueber35@naver.com)

 케이피플 포커스 ,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인용시 표기 의무

■ 제보

▷ 전화 : 02-732-3717

▷ 이메일 : ueber35@naver.com 

▷ 뉴스홈페이지 : https://www.kpeoplefocus.co.kr

작성 2023.06.14 23:16 수정 2023.06.15 15:58

RSS피드 기사제공처 : K People Focus (케이피플포커스) / 등록기자: 살구미나 무단 전재 및 재배포금지

해당기사의 문의는 기사제공처에게 문의

댓글 0개 (1/1 페이지)
댓글등록- 개인정보를 유출하는 글의 게시를 삼가주세요.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