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흥렬의 인문학적 글쓰기] 거꾸로 놓고 보기

곽흥렬

에디슨이 들어서 세상을 뒤엎어 놓았다. 그의 등장으로 말미암아, 여태껏 고이 간직해 왔던 한낮의 고요며 저물녘의 평온이며 깊은 밤의 침잠, 이런 소중한 것들과 결별하고 말았다. 역설적이게도 그가 발명한 전기의 원리 때문이다. 오늘날 인류가 사용하는 온갖 문명의 이기 가운데 이 원리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것이 과연 존재하기나 할까 싶다. 

 

전기제품이란 두 가지의 뚜렷한 속성을 지녔다. 그 가운데 하나는 밝음이며 다른 하나는 시끄러움이다. 휘황찬란한 조명등은 대낮처럼 밤을 밝히고, 어디를 가나 잠시의 안온함도 용납하지 않을 만큼 소란스러움이 끊임없이 귀청을 괴롭힌다. 그런 까닭에 어찌 보면 에디슨은 천하에 용서받지 못할 죄인인지도 모른다. 특히 밤 시간대에 발생하는 이런저런 문제들이 대부분 그가 떠안아야 할 몫이 아닐까 한다.

 

이렇게 말하면 위대한 발명왕을 두고 너무 심하지 않느냐며 대거리를 하고 나설 사람이 많을 줄 안다. 하지만 흥분을 좀 가라앉히고 지금 하는 이야기를 들어보면, 더러는 나의 이 같은 견해에 고개를 주억거리실 분도 없진 않지 싶다. 

 

무엇보다 그는 사람들의 수명을 단축시키는 장본인이다. 오늘날 평균 수명이 예전보다 훨씬 길어졌는데 무슨 뚱딴지같은 소릴 하느냐고 반문을 해 올지도 모르겠다. 물론 여부가 없는 말씀이다. 의료기술의 발달과 생활환경의 개선으로 지난날에 비할 바가 아니게 수명이 길어진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으리라. 문제는 이런 외적인 상황들을 고려하지 않고 단순 계산만 할 경우 사정은 달라진다는 사실이다. 

 

우리의 생체시계는 낮과 밤의 역할 구분으로 기막히게 조절되고 있다. 추위가 닥치면 겨울잠을 자는 동물이 동면에 들어가듯, 밤이 되면 잠을 자도록 설계되어 있는 것이 사람의 바이오리듬이다. 

 

낮은 활동을 통한 소비의 시간이지만, 밤은 휴식을 통한 재충전의 시간이다. 휴식으로 얻는 재충전이 없다면 어디서 삶의 에너지를 구할 것인가. 아무리 몸에 좋은 보약일지라도 오밤중에 청하는 단잠만은 못하다. 그러기에 밤은 신이 마련해 준 더없이 값진 선물이 아닐 수 없다. 우리에게 이 밤이라는 신의 선물이 주어지지 않았다면 내일의 건강한 삶을 기약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사람이 잠을 자지 않으면 몸이 먼저 알아차리고 시위를 한다. 간밤에 무슨 일로 숙면을 취하지 못하고 맞았던 다음 날을 생각해 보라. 하루 종일 멍한 상태에서 일이 제대로 손에 잡히지 않아 실수를 연발한 경험을 누구든 한두 번씩은 갖고 있으리라. 

 

자연의 섭리를 거부하고 밤낮이 뒤바뀐 생활을 지속하면 틀림없이 이런저런 질병이 찾아온다. 삼교대 근무를 하는 직장여성들을 대상으로 조사해 얻은 한 통계 자료는 밤잠의 중요성을 웅변하고 있다. 생리불순이며 피부 노화 촉진 같은 문제는 그만두고라도, 임산부의 경우 조산의 위험성과 저체중아 출산율이 일반여성보다 몇 배나 높아지며, 특히 암 같은 치명적인 병의 발생률이 급격히 상승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잠과 생명현상의 상관관계를 규명해 보기 위한 생쥐 대상 실험에서, 잠을 제한한 쥐의 수명이 그렇지 않은 쥐의 수명보다 현저히 줄어드는 것이 과학적으로 입증되고 있다.

 

씻지 못할 중한 죄를 저지른 범법자에게 가장 가혹한 형벌은 잠을 재우지 않는 것이다. 사람이 며칠씩 잠을 자지 못하면 헛소리를 해대다가 끝내는 정신이상이 되어 버린다고 한다. 이것 하나만 봐도 잠이란 것이 숨탄것들에게 얼마나 중요한 건지 충분히 헤아리고도 남는다. 

 

여기서 문제는 잠의 질이다. 같은 잠이라도 자정이 넘어 든 잠의 경우 그 숙면 도에 있어 자정 전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의학적인 연구 결과가 나와 있다. 이로 미루어 보면, 밤잠과 낮잠의 차이는 더 긴 부언이 필요치 않으리라.

 

낮이 이성의 지배를 받는 시간이라면 밤은 감정의 작용이 승한 시간이다. 밤이 되면 낮 동안 왕성하던 이성이 납작 엎디어 있는 사이 감정의 싹이 독버섯처럼 자라난다. 이성이 차가운 바윗돌 같다면 감정은 폭발을 잠재한 다이너마이트 같은 것. 밤에는 감정의 조절작용이 풀려 이성이 지키고 있던 울타리가 맥없이 무너진다. 감정이란 놈은 원래가 천방지축이어서 언제 일을 저지를지 모르는 사고뭉치다. 그러기에 감정의 지배를 받는, 강도니 폭력이니 성추행이니 하는 등속의 온갖 충동적인 범죄는 대개 밤을 틈타 일어난다. 

 

밤은 환락의 시간이다. 환락은 흐느적거림 혹은 끈적임으로 표상된다. 취객의 혀 꼬부라진 횡설수설에 여인의 앙칼진 목소리가 허공을 가르는 도시의 밤거리, 모자라는 술값을 채근함일까 싸구려 애정 행각을 원망함일까. 이런 살풍경한 정경도 휘황하게 불을 밝힌 밤거리만이 지니는 특유의 색깔이다. 

 

환락은 다분히 일탈로 이어지는 속성을 안고 있다. 우리들 주변에서 일어나는 상당수의 범법행위는 이와 결코 무관치 않아 보인다. 만일 밤이 지금처럼 화려한 치장으로 변신하지 않았더라면 사람들의 나다님도 훨씬 적을 것이고, 당연히 범죄 발생률도 영 덜할 게 아닌가. 무릇 접시든 뭐든 밖으로 나돌면 쉽사리 깨어지게 마련인 법이다.

 

“약한 자여, 그대 이름은 여자이니라.” 셰익스피어는 이렇게 말했겠다. 그렇다면 나는 이렇게 말하겠다. “악한 자여, 그대 이름은 에디슨이니라.” 세상을 시끄럽고 불안스럽게 만든 죄가 여기서 또 추가되어야 할 것이다.(이 글을 읽는 이 가운데 혹 약간의 오해가 있다면, 결코 악의적인 뜻으로 하는 말은 아님을 알아주셨으면 한다.) 

 

무릇 목숨 가진 생명체 가운데 그 어느 하나도 생체 리듬의 지배를 받지 아니하는 존재는 없다. 스스로 감정 표현을 하지 못하는 식물들조차도 잠을 자야 열매를 맺는다. 잠은 모든 살아 숨 쉬는 개체들의 생명수와도 같은 까닭이다. 밤새도록 켜져 있는 가로등 불빛으로 인해 국도변의 벼들이 스트레스를 받아 제대로 결실을 이루지 못함은, 자연의 이법을 거스른 결과의 무서움을 웅변하지 않는가. 하물며 자기 목소리를 낼 줄 아는 동물들에게 있어서이랴.

 

옛사람들의 시구에도 이 자연의 이법 따라 살려는 정신이 고스란히 나타나 있음을 본다.

 

  해 뜨면 일하고 해 지면 쉰다. 

 우물 파서 물 마시고 밭 갈아서 먹으니 

 임금님의 힘이 나에게 무슨 필요가 있으리오. 

 (日出而作 日入而息 鑿井而飮 耕田而食 帝力於我何有哉) 

 

요순시절의 태평성대를 당시 백성들은 이렇게 노래했다. 해 뜨면 일어나 움직이고 해 지면 둥지를 찾아드는 것이 목숨 지닌 존재자들의 지극히 자연스러운 생명현상일 터이다. 하기야 박쥐나 올빼미같이 밤을 주 활동 시간대로 해서 살아가는 야행성 동물이 아주 없는 건 아니지만, 세상에 예외 없는 법칙은 존재하지 아니하는 법. 그 예외를 가지고 큰 줄기를 논할 순 없지 않은가.

 

자연의 섭리 따라 사는 삶, 이것이 무엇보다 우리들 인간의 고유한 본성에 가까이 다가가는 길이 되리라. 이런 생각을 하며, 나는 오늘도 일찌감치 세상사로 지친 몸을 이불 속에 묻는다.

 

 

[곽흥렬]

1991년 《수필문학》, 1999년《대구문학》으로 등단

수필집 『우시장의 오후』를 비롯하여 총 12권 펴냄

교원문학상, 중봉 조헌문학상, 성호문학상, 

흑구문학상, 한국동서문학 작품상 등을 수상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창작기금 받음

제4회 코스미안상 대상 수상

이메일 kwak-pogok@hanmail.net

 

작성 2023.06.16 11:08 수정 2023.06.16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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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