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아의 산티아고 순례기] 오 세브레리오를 향하여 부는 폭풍

이수아

오 세브레리오로 가는 데는 세 개의 길이 있다. 하나는 고속도로 옆으로 가는 것으로 낮은 지대의 길이다. 지름길이지만 달리는 차들 곁으로 가야 한다. 다른 하나는 제법 높은 700m 오름길을 가야 하는 것이고 마지막은 완전 산악지대로 세 개의 언덕을 넘어서 가는 길이다.

 

제이드와 죠지의 오스트레일리아 안내 책자는 마지막 길에 열광적으로 찬사를 보내고 있다. 지난주의 여정을 감안하여 우리는 더욱 도전적인 길을 택하기로 결정했다. 마지막에 1,400m의 ‘오 세브레리오’를 올라야 하는 큰 선택이다. 

 

하르트무트는 처음으로 생긴 그의 발바닥 물집 때문에 말없이 고통을 겪고 있었다. 그래서 어제 저녁에 우리는 ‘마지막 밤’을 즐기는 순례자들과 함께 중앙 광장에서 아주 맛있는 햄버거를 먹으며 중간 난이도의 길을 택하기로 합의했다. 

 

그리고 우리는 어떻게 걸으면 효과적인가 하는 전략적 계획을 세웠다. 오늘 산꼭대기에서 약 5km 아래 있는 라 파바까지만 가기로 했다. 사실 오늘은 28km를 가야 하는 날인데, 이미 오 세브레리오를 향해 출발은 했지만, 나머지 대부분은 내일 우리가 좀 더 기운을 회복한 후에 걷기로 하고 남겨두었다. 우리 일행들은 매우 현명한 사람들이다. 

 

빌라프랑카 데 비에르자를 떠나면서 길이 갑자기 험난해졌다. 어제 밤에 위협적이었던 폭풍은 실망스럽게 그칠 줄 모르고 하늘도 꽉 막혀 버렸다. 오름길은 가파르고 끝이 없었다. 그러나 이번만은 강인함을 느끼고 싶어 굳은 결심을 했다.

 

이것이 단짝인 데이비드에게 바치는 순례여행의 시작이었다. 그리고 이것은 틀림없이 나의 결심을 더 단단하게 했다. 나는 끊임없이 펼쳐진 45도 경사의 길을 천천히 오르는 좋은 방법을 알아냈다. 그리고는 멈추지 않고 약 한 시간 이상을 계속 걸었다. 첫 번째 언덕의 꼭대기에 올랐을 때 나는 다른 사람들이 따라올 때 까지 좀 기다려야 했다.

 

우리의 고행을 위로하는 듯 경치는 무척 아름다웠다. 그러나 고압철탑으로부터 들려오는 거대한 바람소리가 거기 있었다. 이 거대한 고압철탑의 바람소리는 이상하게 내 뇌리 속을 흔들고 있었다. 나는 이 이상하고 신비한 소리가 다시 듣고 싶을 때가 있을 거라는 예감이 들어서 녹음했다. 우리는 아주 영리한 도마뱀 한 마리를 만났다. 그놈은 길을 가로질러 길가의 나뭇잎 속으로 들어갔다. 도마뱀의 벼슬은 아주 밝은 청색과 녹색 그리고 검은색이었다. 녀석은 내 폰 카메라의 줌 기능을 얕잡아보고 작은 가지 위에서 불안정한 자세로 포즈를 취했다.

 

어제 밤에 높은 고도에서 자라는 밤나무 군락 숲에 대해 읽었지만, 이런 환경에서 나는 미처 그 아름다움을 느낄 준비가 되어있지 못했다. 숨 막히는 그리고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넓고 평화로운 광경이었다. 우리는 퍼질러 앉아 인생에 대해 생각했다. 힘들게 올라가니 큰 보상이 있었다. 이번에는 다음 계곡을 향해서 길고 완만한 경사의 내리막길로 접어들었다. 우회로를 따라 약간 둘러서 가니 매혹적이고 오래된 마을이 나왔다. 거기는 자력으로 만들어 먹는 다과가 있는 곳이었으나 실망스럽게 초인종을 눌러도 아무 대답이 없었다. 

 

우리는 단 하나 밖에 없는 식당이 있는 계곡 아래로 곤두박질치듯이 내달렸다. 찾기는 무척 어려웠지만 일단 문을 열어놓고 우리를 환영했다. 홀로 오는 손님의 사진을 찍어주기도 했다. 그때부터 해가 구름을 위협하여 한쪽으로 밀어내버렸다. 찬란한 햇빛이다. 폭풍직전의 고요라고 할까. 

 

나는 길이 강 하나를 두고 몇 번을 가로질러 왔다 갔다 하면서 건너가는지 헤아린다고 정신이 팔려 해와 구름이 어떻게 숨바꼭질하는지에 대해 관심을 갖지 못했다. 강을 건넌 것이 전부 일곱 번을 넘었다. 길이 구불구불한데 자동차 도로를 가로지르거나 밑으로 통과하기를 몇 번을 반복했다. 그래서 어제 저녁부터 불기 시작한 폭풍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것이 다시 살아나서 불어 닥칠 태세였다. 

 

첫 비가 내릴 때 나는 운 좋게도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 비옷을 입고 있었다. 하르트무트도 그렇게 했지만, 용감한 호주 사람들은 그들의 속옷이라고 하는 짧은 바지에 러닝셔츠를 입고 앞으로 내달렸다. 폭풍은 알 수 없는 것이었다. 불규칙하게 굉장히 빠르기도 한데, 그냥 보기에는 일정한 모습이 없어 보이기도 한다. 아직 앞에는 푸른 하늘이 빛나고 있지만 동시에 번개가 번쩍이기도 했다.

 

그날까지 내 무릎보호대가 아주 멋지고 튼튼하게 느껴져서 세찬 빗줄기 속으로 힘차게 걸었더니 무릎은 내게 통증이라는 복수를 해오고 말았다. 이렇게 몇 킬로미터를 더 가서 우리는 모두 모여 낡은 외양간 처마 밑에 옹기종기 붙어 앉았다. 그 외양간은 감질나게 문을 열지 않은 숙소 바로 옆에 있었다.

 

지금까지는 우박과 비가 그칠 때까지 이동해야 할 이유가 없어보였다. 죠지는 아직 러닝셔츠와 팬티 차림이었고 완전히 젖어버렸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에게 방수복은 별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열대지방에 있는 것이 아니므로 점차 추워지기 시작했다. 우리는 최대한의 방수복 차림으로 정비했다.

 

갑자기 번개가 치더니 천둥과 함께 우리가 서있는 바로 앞에 벼락이 떨어지는 것을 보았다. 소리가 얼마나 컸던지 나는 비명을 지르면서 손으로 귀를 막고 땅에 납작 엎드렸다. 우리는 틀림없이 폭풍의 눈 속에 있었다. 비가 잦아들기를 기다리는 것 보다 그냥 이동하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비가 약간 주춤할 때 우리는 다시 움직였다. 머리를 숙이고 천천히 뚜벅뚜벅 걸었다. 

 

다른 무리들이 내 옆으로 달려갈 때 나는 뒤에서 어린애처럼 천천히 걸으며 얼마 전 겪었던 내 무릎의 고통을 생생하게 기억해 냈다. 나의 황새 흉내를 내는 동작은 정말 유익한 것으로 판명되었다. 우리는 다시 전략을 짜기 위해 다음 마을에서 멈췄다. 목적지인 라 파바 까지 갈려면 아직 9km가 남았고 마을을 네 개나 더 지나야 한다. 지금 분위기와 상황으로 봐서 거기 까지 간다는 것은 무리였다. 그래서 우리는 약 4km 떨어진 라 파바 직전 마을인 헤레리아스까지만 가기로 결정했다.

 

나는 다시 뒤에 쳐졌다. 다음 마을인 루이텔란이 2km 밖에 남지 않았다. 헤레리아스는 또 거기서 2km를 더 가면 된다. 내가 기진맥진할 때 2km라는 표시가 더욱 기운을 빠지게 했다. 아마도 심리적 요인 때문일 것이다. 지난번 혼타나스로 가면서는 30km를 걸었고 제이드와 죠지는 부르고스까지 돌아가기도 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마지막 2km 남았다는 이정표가 사람을 죽일 것 같고 심리적 압박은 더해 왔다. 

 

루이텔란에서 죠지가 주차해 놓은 농부의 트럭 뒤에 숨었다가 튀어나오면서 “여기 있어!”라고 소리쳤을 때 얼마나 놀라고 안도했는지 모른다. 그는 나를 어느 집 뒷문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그 집은 스코틀랜드 서쪽 해안 킬라니쉬에 있는 나의 오래된 학교친구 바바라의 집처럼 생긴 오두막이었다. 갑자기 편안해졌다. 

 

숙소는 자그마했다. 경사진 천정이 모든 것을 더 작게 보이게 했다. 체크인을 하는 남자는 머리카락을 면도기로 밀었고 얼굴 한쪽에 칼자국 흉터가 있었다. 약간 무섭게 보였지만 금세 친근하게 느껴져서 따뜻하게 대할 수 있었다. 우리는 6개의 이층침대가 있는 방으로 안내되어 들어갔는데 너무 작아서 마치 회전문을 열고 들어가는 것 같았다. 그러나 젖은 옷을 벗고 나니 얼마나 편안한지 몰랐다. 따뜻한 샤워에 세탁 서비스까지 해주니 너무 좋았다.

 

하르트무트가 그의 발바닥에 난 물집을 드러냈을 때 제이드가 깜짝 놀랐다. 물집이 너무 커서 그녀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치료법인 주사기로 물을 빼내고 다시 축 늘어진 피부를 실로 꿰매어 물집이 더 생기지 않도록 했다. 피부가 다시 깨끗하게 정리되었다. 그녀는 기술과 확신을 갖고 수술을 했고 나는 감히 엄숙한 기쁨을 이야기 했다. 

 

순례자의 식사가 오후 7시에 나왔다. 길고 깔끔한 의자에 14명이 앉을 수 있게 준비를 했다. 새로운 사람들도 보였다. 항상 새로운 얼굴을 발견하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내가 앉은 테이블 끝에는 뉴질랜드에서 온 3명이 있었는데 젊은 부부와 여자의 아버지였다. 호주에서 몇 년 살았다는 미국 시애틀에서 온 여인은 다리 근육 치료를 위해 벌써 이 숙소에서 이틀을 머물렀다고 한다. 나는 독일 라이프치히에서 온 아름다운 동독 자매들 사이에 앉았다. 건너편 테이블에는 익히 보아온 낯익은 얼굴들이었다. 

 

주인은 큰 잔치를 준비했고 그는 음식솜씨와 집 분위기에 자부심을 갖고 있는 것이 확실했다. 그는 여러 음악을 연주 한다고 했다. 나는 식사를 마치고 일찍 일어났다. 마침 시간은 소들이 잠을 자기 위해 떼 지어 거리를 따라 내려가는 때였다. 돼지도 있었다. 내일은 오 세브레리오로 갈 것이다. 보통 일이 아니다.

 

[이수아]

줄리아드음대 졸업

스코틀랜드 국립교향악단 단원

스코키시체임버오케스트라 수석 첼리스트

스코틀랜드청소년오케스트라 상임고문

Mr. Mcfalls Cahmber 창립맴버

이메일 :  sua@sualee.com

 

작성 2023.06.23 11:16 수정 2023.06.23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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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