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명희의 인간로드] 고독한 혁명가 ‘강태공’

전명희

나는 삼천여 년 전 인간 ‘강상’이다. 상나라의 마지막 왕인 주임금이 독살스럽고 음란 무도한 애첩 달기에 빠져 있던 시절에 태어났다. 주임금은 술로 연못을 만들어 고기를 매달아 놓고 남녀가 숨바꼭질하며 노는 걸 보며 즐겼다고 한다. 국정을 돌보지 않고 나라를 도탄에 빠트린 주임금은 정신을 못 차리고 계속 폭정을 이어갔다. 민심은 크게 동요하고 국정 운영 능력이 상실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이 어지러운 시절에 태어난 나는 산시성 기산현 반계 동해 바닷가 근처에 살았다. 햇살은 바다 위에서 말없이 반짝거리고 드넓게 펼쳐진 평원을 가로질러 흐르는 강은 도도하다. 태곳적부터 쌓아온 퇴적물들이 만들어낸 비옥한 땅에는 곡식들이 춤을 추어 사람 살기 좋은 곳이다. 

 

나의 조상은 우임금 때 물과 땅을 정리하는 치수사업을 도왔는데 그 치수 사업이 아주 잘 되었다. 그 공로를 인정받아 여(呂)의 땅을 많이 받아 제후가 되어 사람들을 다스렸다. 내 조상들의 공로로 인해 사람들은 내 이름을 여상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여상이라는 이름도 가졌지만 지금 나는 가난한 집안의 가장일 뿐이다. 먹을 것, 입을 것을 걱정하며 하루하루 근근이 살아가고 있다. 나는 몰락한 집안의 자손으로 물려받은 건 여상이라는 빛나는 이름과 밥걱정해야 하는 가난뿐이지만 가난도 즐기면 가난이 아니기에 마음은 늘 평화롭게 살았다. 

 

가난 때문에 돈 버는 기계로 살아가기에는 세상은 배우고 싶은 것들이 많다. 하늘의 태양은 어떻게 움직이는지 별들은 또 어떻게 생겨나고 사라지는지 그 이치가 궁금했다. 내가 사는 이 땅은 어떤 원리로 생겨났는지 더 너른 곳으로 가면 누가 살고 있는지도 매우 궁금했다. 또 어떤 산과 들이 펼쳐져 있는지도 궁금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나는 사람도 몹시 궁금해 이 세상에는 어떤 종류의 사람들이 있는지 그들은 어떻게 살아가는지 사람대접은 받으며 살고 있는지가 모든 것이 궁금해 궁리하며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가난한 나는 세상 이치를 궁리하며 공부에 몰두했지만, 나의 공부를 알아주는 사람은 없었다. 그래도 괜찮다. 알아주는 이 없어도 공부하는 즐거움은 그 어떤 즐거움보다 크기 때문이다. 나는 그 와중에도 결혼하고 자식까지 두었다. 내 아내는 글공부만 하는 나를 위해 밖에 나가 나 대신 일을 해서 집안을 먹여 살려야 했다. 여자가 벌어야 얼마나 벌겠는가. 시원치 않은 벌이에 집안 살림은 나아지지 않았지만 그래도 아내는 묵묵히 집안을 이끌어 갔다. 나는 늘 아내에게 미안했다. 아내는 착하고 부지런한 여인이었지만 나는 공부에 빠져 사느라 아내를 살뜰하게 보살피지 못했다. 하루는 아내가 일을 나가면서 내게 말했다. 

 

“멍석에 깔아놓은 보리가 비에 젖지 않도록 단속해 주세요”

 

아내는 당부하고 또 당부하며 일을 나갔다. 나는 걱정하지 말고 다녀오라고 했다. 나는 공부에 몰두한 나머지 비가 오는지도 몰랐다. 아내가 돌아와서 소리치며 망연자실했다. 멍석에 깔아놓은 보리는 이미 물에 다 젖어 있었고 반이나 떠내려간 상태였다. 곡식을 잃은 아내는 너무 화가 난 나머지 집을 나가 버리고 말았다. 억척스럽게 집안을 이끌어가던 아내가 떠나버린 것이다. 오죽이나 힘들었으면 나갔을까 이해는 하지만 나는 기다린 김에 조금만 더 기다려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나는 위수 호숫가에 앉아 낚싯대를 드리우는 시간이 많아졌다. 세상 이치도 깨달을 만큼 깨달았으니 세상 두려운 것이 없었다. 주왕의 폭정은 계속되고 서백은 구금되었지만, 세상일이란 것이 다 때가 있기 마련 아니던가. 나의 낚싯대는 시간과 함께 삼천육백 개가 쌓여가고 있었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내 낚싯바늘은 휘어져 있지 않고 수면 위에서 세치나 떨어져 있다. 나는 물고기를 낚는 것이 아니라 세월을 낚고 있었다. 그렇게 켜켜이 쌓여가는 낚싯대만큼 어지러운 나랏일도 조금씩 정리되어 가고 있었다. 어느 날 나는 호수에 낚싯대를 드리우고 그 옆에서 칼을 두드리고 있었다. 누군가 내게 다가오더니 칼을 두드리는 이유를 물었다.

 

“어리석은 백정(下屠)은 소를 잡고, 뛰어난 백정(上屠)은 나라를 잡는 법입니다.”

 

나의 대답을 들은 그는 기뻐했다. 자신을 도와 천하를 다스릴 인재를 찾고 있었다며 천군만마를 얻었노라고 했다. 그의 이름은 서백이다. 서백은 애첩 달기에 빠져 폭정을 일삼던 주임금을 토벌하고 천하를 평정하자는 제의를 했다. 드디어 나에게도 때가 온 것이다. 도 닦듯 공부하고 궁리한 것들을 세상을 위해 펼칠 기회가 찾아왔다. 나는 서백의 책사이자 스승이 되어 서백과 함께 나라를 위해 일하기로 했다. 가난에 못이긴 아내도 떠나고 무위도식한다고 사람들이 흉보기도 했지만, 낚시로 마음을 달래며 산 지 칠십이 넘어 세상으로 나가 뜻을 펼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서백과 힘을 합쳐 마침내 주임금의 정권을 무너뜨리고 서백을 문왕으로 추대했다. 나는 문왕 밑에서 병법가이자 정치가로의 입지를 다지며 승승장구했다. 그러나 인자하고 덕 있는 문왕이 죽고 문왕의 아들이 무왕으로 등극했다. 나는 무왕을 도와 천하를 평정했다. 무왕은 내게 재상 자리를 주었다. 나는 비로소 주나라의 재상이 되었다. 내가 재상이 되어 부임하는 날 마을 사람들이 몰려들어 축하해 주었는데 그 속에 집 나간 아내도 있었다. 아내는 폭삭 늙은 얼굴로 자신을 다시 받아달라며 용서를 빌었다. 가난하지만 신념을 지키지 못한 아내를 용서할 수 없었다. 나는 그릇에 담은 물을 바닥에 쏟았다. 그리고 말했다.

 

“엎어진 물은 다시 담을 수 없는 법이다”

 

나는 나의 딸을 무왕에게 시집을 보냈다. 나는 천자의 장인이 된 것이다. 권력의 중심에 있는 나는 예와 명분을 중요시하는 정치를 펼쳤다. 그리고 병법을 발전시키고 다른 나라가 침략하지 못하도록 국력에 힘을 쏟았다. 또한 나라를 다스림에 있어 불필요한 제도나 예의를 간소하게 고쳤다. 상공업을 발전시키고 어업과 소금업에 대한 잘못된 제도를 뜯어고치니 이익이 많이 나 나라 재정에 보탬이 되고 백성들의 살림이 날로 윤택해졌다. 이를 본 많은 제후들이 제나라로 귀순했다. 나를 재상으로 앉힌 무왕이 죽고 어린 성왕이 왕위에 올랐다. 성왕은 나에게 주위의 제후들을 징벌할 수 있는 막강한 권한을 주었다. 한낮 낚시꾼에서 재상이 된 나는 그렇게 천하의 강태공이 되었다.

 

[전명희]

서울대학교에서 철학을 가르치다 그만두고

‘밖철학연구소’를 설립해 연구에 몰두했지만

철학 없는 철학이 진정한 철학임을 깨달아

자유로운 떠돌이 여행자가 된 무소유이스트

이메일 jmh1016@yahoo.com

 

작성 2023.06.26 11:24 수정 2023.06.26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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