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꿈꾸는 자와 꿈꾸지 않는 자, 도대체 누가 미친 거요? 장차 이룰 수 있는 세상을 상상하는 내가 미친 거요? 아니면 세상을 있는 그대로만 보는 사람이 미친 거요?
- 미겔 데 세르반테스,『돈키호테』에서
며칠 전 공부 모임의 한 회원이 말했다.
“선생님, 선생님이 우리들에게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라고 하셨잖아요. 그런데 그렇게 살다 보니까 지인들이 제가 미친년 같다고 해요.”
나는 크게 웃으며 말했다.
“하하하, 아주 잘하고 계시네요. ‘금단 현상’이 일어나고 있네요.”
술에 중독된 사람이 술을 끊거나, 담배에 중독된 사람이 담배를 끊게 되면, 몸에 여러 이상 증상이 나타나게 된다. 삶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세상을 있는 그대로’만 보고 살아간다. 하지만 세상은 보이는 게 다가 아니다.
인문학 공부를 하게 되면,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게 된다. 자연스레 ‘장차 이룰 수 있는 자신, 세상’을 꿈꾸게 된다.
하지만 이 세상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이때 ‘깨어있는 사람의 언행’은 미친 사람처럼 보일 수가 있다. 이상적인 기사가 되어 천하를 주유하던 돈키호테도 울부짖게 된다.
“꿈꾸는 자와 꿈꾸지 않는 자, 도대체 누가 미친 거요? 장차 이룰 수 있는 세상을 상상하는 내가 미친 거요?”
마약에 취하듯 이 세상의 온갖 쾌락에 취해 살아가는 사람들 눈에는 깨어 있는 사람들이 정상으로 보이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고대 중국의 성인 공자는 “군자와 함께 할 수 없다면 차라리 광자(狂者)와 함께 하겠다”고 말했다.
군자는 중용(中庸)의 길을 꿋꿋이 걸어가는 사람이다. 중용은 항상 본성(本性)을 잃지 않고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삶을 말한다. 하지만 대다수 사람들은 본성을 잃어버리고 살아간다. 그렇게 살다가 공부를 하여 화들짝 깨어나더라도 본성을 찾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본성을 찾아가는 많은 사람들이 일시적으로 미친 사람 취급을 당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그 시련의 시간을 견디고 나면 자신의 본성을 회복하게 된다. ‘미친 사람’을 겪지 않고, 올바른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 있을까?
공자는 그런 사람들을 ‘향원(鄕員)’이라고 했다. 그들은 군자의 언행을 흉내 내는 사람들이다. 공자는 그들을 경멸했다. 그들은 군자가 될 가능성이 아예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위선에 취해 한평생을 살아간다.
나도 얌전하게 잘 살다가 30대 중반에 돈키호테가 되어 이 세상을 쏘다녔다. 다들 미친놈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 뜨거운 용광로에서 단련된 나는 이제 나의 영혼을 되찾았다는 생각이 든다.
진짜 제정신으로 살아가는 맛! 어제 마을협동조합에서 활동하는 분들과 술자리를 가졌다. 희열(bliss)의 향연이었다.
숟가락은 밥상 위에 잘 놓여 있고 발가락은 발끝에
얌전히 달려 있고 담뱃재는 재떨이 속에서 미소 짓고
기차는 기차답게 기적을 울리고 개는 이따금 개처럼
짖어 개임을 알리고 나는 요를 깔고 드러눕는다 완벽한
허위 완전 범죄 축축한 공포, 어째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 이성복, <어째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부분
시인은 모든 게 안녕한 이 세상에서 ‘완벽한 허위 완전 범죄 축축한 공포’를 본다. 그런데 ‘어째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확실한 건, 우리가 이 미친 세상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고석근]
수필가
인문학 강사
한국산문 신인상
제6회 민들레문학상 수상.
이메일: ksk21ccc-@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