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은 제 발로 찾아가지 않으면 저절로 오는 법이 없다. 산은 택배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산행 버스가 중부고속도로를 지나 영동고속도로에 들어서니 도로는 주차장 수준이다. 오늘부터 6일까지 3일 동안 연휴인지라 강원도로 향하는 차들이 꼬리를 물고 있다. 천천히 가니 한편으로 많은 것들이 시야에 들어온다. 아까시나무와 이팝나무는 짙은 녹음 속에서 군데군데 하얀 구름꽃을 피우고 있다.
만종분기점에서 중앙고속도로로 빠져 나오니 비로소 버스가 제 속도를 내기 시작한다. 중앙고속도로는 직선으로 길을 내다보니 터널 속과 다리 위만 달리는 느낌이다. 똬리를 튼 5번 국도상의 죽령(689m) 고갯길을 4.6km의 터널을 뚫어 40분 걸리던 고갯길을 5분 만에 통과하게 됐으니 오죽하겠는가.
죽령 터널을 빠져나오니 드디어 차창가로 소백산 줄기가 눈앞에 드러난다. 여기를 지날 때마다 항상 경이로움으로 소백산을 바라본다. 겨울이면 언제나 하얀 눈을 이고 있는 소백산은 비로봉(1,439m), 국망봉(1,421m), 제1연화봉(1,394m), 도솔봉(1,314m) 등의 많은 봉우리들이 연봉을 이루어 웅장하면서도 부드러운 산세로 장관을 연출한다. 소백산은 대설원의 부드러움과 장쾌함이 돋보이는 겨울 산의 대명사이다.
하지만 5월이 되면 소백산은 천상화원을 연출한다. 정상 비로봉에서 동북쪽의 국망봉, 신선봉, 연화봉 능선을 따라 철쭉이 무리지어 피어나 수천 그루의 주목과 어우러지며 산을 꽃단장한다. 오늘 산행은 꽃단장한 소백을 보기 위함이다. 철쭉이 만개한 5월에서 6월 초순에 오르면 비로봉 정상부를 울긋불긋 물들인 천상화원을 감상할 수 있다.
소백산의 대표적인 등산로는 삼가야영장-비로봉-연화봉-희방사 코스다. 소백산 주봉인 비로봉 남쪽에 자리한 삼가 주차장은 비로봉을 최단거리로 오르는 들머리다. 삼가 주차장에서 비로봉까지 5.5km라는 이정표가 있는 야영장 입구에서 시멘트 포장길을 따라 2km 가량 올라서면 비로사가 나온다.
소백산은 천년고찰을 품고 있는 한국 불교의 성지이기도 하다. 국망봉 남동쪽에 초암사, 비로봉 남쪽에 비로사, 연화봉 남서쪽에 희방사, 산 동쪽의 부석사, 북쪽엔 천태종의 본산인 구인사가 있다.
비로사를 통해 비로봉으로 오르는 길은 아름다운 오솔길이자 정상인 비로봉을 오르는 가장 짧은 길이다. 비로사에서 등산로는 달밭재까지 북동쪽으로 이어지다 재에 이르러 능선을 타고 북서쪽으로 치닫는다. 양반바위부터 비로봉까지는 제법 오르막을 타고 올라야한다. 그래도 철쭉나무 그늘 아래 바위가 거의 없는 부드러운 흙길을 밟고 오르는 산길이 즐겁기만 하다.
화사한 연분홍 철쭉이 키 큰 아름드리 소나무와 전나무의 안내를 받으면서 식장을 들어서는 신부 모습 같다. 큰 나무 밑에는 둥글레와 애기나리들이 끊임없이 조그맣고 하얀 얼굴을 내밀어 들러리를 서 준다. 오솔길이 끝나는 곳에 이르면 짙은 수목에 가려졌던 하늘이 열리기 시작하면서 비로봉 정상이 보이기 시작한다. 시야가 트이니 약간은 지루했던 오솔길 산행이 탄력을 받기 시작한다.
산행 들머리에서 2시간 만에 정상인 비로봉(毘盧峰, 1,439m)에 도착한다. 비로는 석가의 진신을 높여 부르는 칭호인데 금강산, 오대산, 속리산 등 국내 명산의 최고봉이 모두 비로봉이다. 비로자나(毘盧遮那)는 부처의 광명이 세상을 두루 비추어 가득하다는 뜻으로, 부처의 진신은 진리 그 자체다. 비로봉 역시 소백산 그 자체로 손색이 없다.
소백산 능선을 기준으로 북쪽은 단양, 남쪽은 영주 지역인데, 두 지방자치단체 간 소백산에 대한 애정과 집념이 대단해서 정상에는 정상석이 2개나 있고, 철쭉축제도 일주일 사이로 따로 열린다.
소백산은 자주 비교되는 근처 태백산보다 100m 정도 낮지만, 고봉들이 줄지어 서있어 산세는 그보다 더 장엄하고 계곡이 길며 그윽하여 수려한 맛도 한층 더하다. 하지만 분수령을 넘나드는 칼바람은 웬만한 돌멩이는 모두 날려 버릴 정도로 드세다. 동부에서 서남 방면으로 뻗어 내린 소백의 능선이 늘 북풍을 맞받기 때문이다.
이곳에 오늘은 마음이 평화로운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미세한 바람이 분다. 그리고 그 길을 함께 걸은 사람들은 서로의 낮은 숨결마저도 읽을 수 있는 사이가 된다.
조선 명종때 남사고(南師古) 선생이 소백산에 올라 "이 산은 사람을 살리는 산"이라 감탄하면서 절을 올렸다는 기록이 있다. 그만큼 소백산은 사람과 닮아있다는 뜻이다.
높은 곳에 오르면 일상의 높이에서 볼 수 없는 세상의 다른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산을 오르면서 서로 가까워지는 것은 함께 땀을 흘리면서도 이런 즐거움이 주는 가치를 공유하기 때문이리라. 환희심이 지나친 것일까? 끝 간 데 없는 초록 숲의 바다에 풍덩 뛰어들고 싶다. 살아서 천년, 죽어서 천년이라는 주목군락과 어우러진 비로봉 일대의 철쭉 풍경은 대자연의 신비로움 그 자체다.
나무데크 쉼터에서 등산화 끈도 풀고, 산오름 하면서 죄었던 긴장의 끈도 풀고, 배낭 속의 도시락도 풀고, 허리띠도 푼다. 대간 마루금에서 즐기는 산상 뷔페는 소박하지만 화려하다. 산정의 대평원에서 느긋하게 즐기는 단출한 식사는 세상 어느 만찬도 부럽지 않다. 악명 높기로 유명한 소백산 칼바람마저 오늘따라 유순하기 그지없다. 따사로운 대자연의 평원에서 들이키는 소백산 냉 막걸리 한 잔으로 저잣거리에서 묻혀온 속진을 날려 보내니 폐부까지 시원해진다.
비로봉에서 연화봉까지 3.5km 코스는 연분홍 빛깔로 은은한 향내를 풍기는 철쭉들이 주위 비경과 어우러져 산행 내내 눈을 즐겁게 한다. 여인의 육체처럼 부드러운 능선을 따라 펼쳐지는 대평원의 장쾌함은 어디서나 돋보인다.
제1연화봉에서 유순한 나무데크길을 내려서면 연화봉으로 오르는 가파른 돌길이 기다리고 있다. 불가에서 '청정'을 의미하는 연화(蓮花)를 접견하기 위해 이 정도 수고는 감내해야 하지 않겠는가. 연꽃이 시궁창 속에서 피어나면서도 연잎이 더러워 지지 않듯이 세파 속에서도 번뇌에 휘둘리지 않고 평정심을 잃지 말아야겠다고 마음을 다잡아본다.
연화봉(1,383m)에 올라서면 풍기 쪽으로 희방사가 있는 수철리가 보이고, 죽령 쪽으로는 제2연화봉과 기상 관측소 너머로 죽령에서 이어지는 대간의 도솔봉, 묘적봉의 산군이 버티고 서있다. 저 산그리메는 동으로 벌재와 황장산을 거쳐 남으로 월악산까지 계속 이어진다.
죽령은 신라와 고구려가 밀고 당기던 국경이기도 하다. 고구려 온달장군이 '옛날 잃었던 땅을 되찾지 못하면 결코 돌아오지 않겠다.' 며 출정한 곳이 바로 이곳이다.
연화봉에서 희방사로 길을 잡는다. 약 1시간 정도 급경사 길을 내려오면 만나는 깔딱재는 소백산을 오르는 등로 중에서 가장 험한 길이다. 깔딱재에서 희방사로 내려가는 급경사의 계단길이 끝없이 이어진다. 산에 오르면서 가슴에 품은 아름다운 추억들이 혹여 흐트러지지 않을까하는 조바심에 조심조심 가슴을 쓸어안고 내려간다.
산 아래 절집 희방사(喜方寺)는 신라 선덕여왕 때 창건된 고찰이다. 안타까운 것은 이 사찰에 보관되어오던 국보급 문화재인 『월인석보』권1과 권2의 판본(版本)이 소실되었다는 사실이다.
희방사 바로 아래에 있는 희방폭포는 높이 28m의 영남 제1폭포다. 3면 기암괴석 사이로 떨어지는 폭포수의 굉음에 근처 초목들은 늘 깨어있다. 용소(龍沼)에 발을 담그기도 전에 산행의 열기가 싹 달아나 버린다.
서울로 가는 버스 창가에 기대어 이십여 년 전 죽령에서 소백을 오를 때 옛 기억을 되살려본다. 마침 그때는 철쭉이 지는 계절이었다. 죽령은 과거 죽지령으로 불렸는데 이곳에서 태어나 김유신을 도와 삼국통일을 완성한 화랑이 바로 죽지랑이다. 신라의 득오는 어려운 시절에 자신에게 도움을 주었던 화랑 죽지랑을 그리며 8구체의 향가 '모죽지랑가(慕竹旨郞歌)'를 짓는다.
가는 봄이 그리워
모든 것이 서러워 우네
아름다운 얼굴에
주름살이 지려 하는구나
잠시 나마
만나 뵙게 되었으면
님이여 그리운 마음으로 가시는 길
쑥대마을에 자고 갈 밤 있으실까
소백산의 가는 봄을 생각하니 득오처럼 괜스레 마음이 애잔하고 서럽기 그지없다.
여계봉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