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주 신륵사
- 그것은 무엇인가.
도착했을 땐 밤이었다. 낮의 격정은 밤으로 숨어버리고 초연하게 흐르는 남한강의 물소리만 들렸다. 강변의 가을이 그러하듯이 바람은 소슬하게 불어왔고 신륵사는 고요하게 서 있었다. 나는 어둠속을 헤치며 낮과 단절된 신륵사의 부처를 만나러 바삐 발걸음을 옮겼다. ‘바삐’라는 말에는 늘 ‘뒤늦게’와 ‘멸절’이 숨어 있어서 나는 조심스럽고 황망했지만 신륵사의 밤은 바삐 움직이지 않으면 놓쳐 버리고 말 ‘천년의 종소리’나 ‘여강의 고요’가 유별하기 때문이다. 예부터 자존심 강한 여주사람들은 맑고 푸른 물살의 남한강을 ‘여강驪江’이라 불렀다. 강원도 원주에서 흘러나오는 섬강蟾江과 용인에서 발원한 청미천淸渼川이 만나는 곳이 바로 여주이고 그래서 남한강을 여강이라고 했는데 그 여강에 있는 신륵사는 지금 깊은 어둠속으로 천천히 들어가고 있었다.
강변의 숲은 바람에게 몸을 맡기고 밤의 고요를 즐기고 있었다. 차오르는 달은 여강과 속살거리느라 물결 속으로 잦아들고 있었는데 신륵사 대웅전 부처님은 말없이 여강만 바라보고 계셨다. 부처님의 말없는 눈빛 속으로 밤은 깊어가고 여강의 물결도 깊어 갔다. 나는 홀로 신륵사의 한없이 맑고 부드러운 어둠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그러다가 어둠속에서 타오르는 ‘그것’에 대한 오래된 의문 하나가 무의식을 뚫고 올라오고 있었다. ‘그것’은 어둠보다 눅지게 내게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언어의 행간에 놀아난 나의 이성은 ‘그것’에게서 멈추고 앎의 관습에 칼을 들이댔다. 나는 기왕의 앎이라면 ‘그것’에 대한 정당하고 명쾌하고 절대적인 끝의 종착까지 들어가 ‘그것’과 마주하여 마침내 도저한 신념을 얻고 싶었다.
‘오! 유혹적인 가짜인생이여’
하마, 육감적인 세상을 껴안고 뒹구는 늙은 창부의 담배연기처럼 무례하고 모욕적인 ‘가짜’ 들의 틈에 끼어 ‘복제된 행복’만 부르짖다가 멸절할지 모를 일이다. 이 위험하기 짝이 없는 롤러코스터 같은 인생을 들쳐 업고 나는 ‘그것’에게로 귀의하고 싶었다. 그러고 싶었다. 진정 ‘그것’의 신념으로부터 대자유의 주인이 되고 싶었다. 이토록 우아하고 겸허하고 아름다운 여강의 신륵사 부처님께 나는 ‘그것’의 궁극을 묻고 또 물었다. 참을 수 없는 맑은 어둠 속에서 온전하고 정직하게 나는 나를 바라보며 위대한 ‘그것’에 닿고자 부처님께 두 손을 가지런히 모았다. 껌딱지처럼 들러붙은 가짜를 떼어내느라 기진맥진한 마음을 겨우 추스르고 나니 여강의 바람이 대웅전으로 불어와 혼자 껄껄껄 웃으며 말했다.
‘애초에 가짜도 진짜도 없는 것을…….’
이런! 여강의 바람이 내 이성의 뒤통수를 한 대 갈기고는 어둠속으로 달아나 버렸다. 바람이 달아난 극락보전 앞마당으로 켜켜이 쌓이는 어둠을 밟으며 나는 몇 번이고 탑돌이를 했다. 그저 탑을 돌고 돌았다. 생각 같은 건 다 내려놓고 돌고 또 돌다 보니 어둠의 문이 보였다. 엉뚱하고 무심하게 서 있는 그 문으로 나의 마음이 먼저 걸어갔다. 저 곳으로 걸어가다 보면 ‘그것’의 종착에 닿을지 모른다. 나는 신륵사에서 금생에 태어난 것을 후회하지 않으며 스스로의 ‘인간’에 대한 사랑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이 맑고 적요한 어둠처럼 말이다.
아마, 천 년 전 원효도 그러했을 것이다. 여강의 바람을 감싸준 맑은 어둠을 사랑한 위대한 스승 원효는 이곳에 절을 지어 천년후의 나에게 ‘그것’의 사랑을 전해주었을 것이다. 일찍이 고려의 나옹선사가 갖가지 이적을 보이면서 입적하여 그 ‘도’가 사람들의 마음을 열었고 조선의 성군 세종대왕이 사후 영릉으로 삼았으니 신륵사는 역사와 어깨를 나란히 하며 그 장구한 시간을 구도하고 있었을 것이다. 여강을 끼고 도는 여주의 너른 땅은 신륵사에서 신념의 한 획이 완성되고 중생은 안심을 얻어 여주를 부흥했을 것이다. 그래서 여주 사람들은 가없이 착하고 순박했나 보다.
나는 여강의 물결을 타고 흐르듯이 서 있는 강월헌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나옹선사의 당호인 ‘강월’를 따서 나옹선사의 화장지에 세워진 강월헌은 어둠속에서 여전히 초연하게 서 있었다. 속절없이 아름다운 강월헌의 여강은 스스로의 무정설법이었다. 진리에게서 두어 발짝 떨어져 바라보는 진리의 모습이 이러할까. 부처의 모습이 또한 이러할까. 나는 생각했다. 설혹 ‘그것’이 내게 멀리 있다 해도 나는 안타까워하지 않아도 될 일이다. 이렇게 문득 만나는 맑은 어둠이 나를 깨워 줄 것이며 흐르고 흐르는 여강처럼 나의 마음도 흐르고 흐르다 보면 문득 ‘그것’을 만날지 모른다. 말없는 부처의 미소가 나에게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 그것은 일체의 온갖 관념을 다 여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