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동 용 (수필가/인문학자)
“양적으로 많다고 해서 그것이 질적인 부분을 구성할 수는 없다.” 이것도 키르케고르가 《불안의 개념》에서 한 말입니다. 철학자는 말귀를 못 알아들었을까봐 다양한 말로 늘 반복적으로 설명에 임했습니다. 그는 독단이 지배하던 시대에서 벗어나고자 했습니다. 결국 그는 선구자의 길을 걸어야 했습니다. 그는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선택했고, 아무도 입에 담지 않던 말을 해야 했습니다. 낯선 말들이라 아무도 제대로 들어주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를수록 그가 남긴 말들은 밤하늘의 별처럼 더욱 영롱하게 빛날 뿐입니다.
키르케고르는 거의 모든 저서를 가명으로 출판했습니다. 자기 자신을 숨겨야 할 이유가 있었던 것입니다.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법의 정신에 저촉된 서적이라면, 또 그 시대의 정신에 반대되는 정서를 품은 그런 종류의 위험한 책을 출판해야 하는 입장이라면, 저자가 누군지는 알리지 말아야 할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일단은 살아남아야 계속해서 싸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주 특별한 상황이 아니고서는 순교는 별 의미가 없습니다. 기득권은 자신이 누리고 있는 특혜와 권력을 자진해서 나눠 가질 마음은 추호도 없기 때문입니다.
자유는 투쟁을 통해서만 실현됩니다. 싸워 이겨야 얻을 수 있습니다. 사람은 이기적인 동물입니다. 목소리를 내지 않으면 문제가 없다고 판단하고 현상을 유지하려고만 하는 것이 기득권의 논리입니다. 울고 부르짖어야 겨우 밥 한 그릇 내놓는 것이 그들의 심보입니다.
‘불안해서 못 살겠다!’ 주변에서 누군가가 한 말입니다. 이 말은 또한 키르케고르가 입에 담았을 법한 소리로 들리기도 합니다. 그의 시대에는 기독교가 법의 정신뿐만 아니라 행정기관까지 점령한 상태였습니다. 《불안의 개념》을 세상에 내놓았을 때는 1844년입니다. 19세기 중반입니다. 아직까지도 중세의 흔적은 세상 속에 뚜렷하게 남아 있었던 것입니다.
종교재판은 유럽을 휩쓸고 지나갔습니다. 마녀사냥도 끊이질 않았습니다. 이런 법의 정신 속에서 수많은 지성들이 죽음을 맞이해야 했습니다. 멀쩡한 사람도 하루아침에 죄인이 되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기 일쑤였습니다. 세상이 흉흉했습니다. 사람들은 혼란스러웠습니다. 하지만 그 혼란이 왜 지속되고 있는지를 깨닫지 못했습니다. 인식이 없었습니다. 세상이 바뀌길 원했지만, 어떻게 해야 세상이 바뀔 수 있는지, 그 해답을 찾지 못했습니다.
키르케고르는 이 모든 것이 기독교의 교회가 원인임을 깨달았습니다. 아무도 교회의 권위 앞에 제대로 맞설 생각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교회 관계자들이 사회의 제1계급으로서 군림하고 있었고, 제2계급은 귀족으로서 제1계급과 일심동체가 되어 사회의 모든 것을 장악했습니다. 귀족 위에 성직자가 있었고, 모든 것을 독점했습니다. 제3계급은 시민계급으로서 저 높은 교회의 권위에 도전할 엄두도 못 냈습니다. 계급의식은 깨질 기미가 안 보였습니다.
교회의 높은 첨탑은 마치 높은 신의 뜻인 양 세상을 내려다보며 하대했습니다. 그 시선 앞에서 사람들은 옴짝달싹하지 못했습니다. 교회 관계자가 특정인을 주목하면 교의학자들이 늑대들처럼 달려들어 수많은 죄목을 만들어 내고야 맙니다. 그렇게 해서 흉측한 죄인을 처형하듯이 당당하게 공개적으로 멀쩡한 사람을 죽음으로 내몰았던 것입니다.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제도였습니다. 이런 일방적인 논리가 당시의 현재와 현실을 형성했던 것입니다.
어리석은 군중들은 현상에 휘둘렸습니다. 누군가가 ‘죄목만 수십 개다!’ 하고 떠들어 대면 그가 죄인으로 지목한 그 자가 ‘죽을죄를 지었구나!’ 하고 생각하기 일쑤였습니다. 남의 말에 휘둘리는 것이 군중입니다. 이때 천재가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양이 늘어나는 것만으로는 질이 구성될 수 없다’고, 그렇게 무고한 사람을 흉악한 범죄자로 몰아가서는 안 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