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와 불안 속에서

이 동 용 (수필가/인문학자)




키르케고르의 유언은 “나를 버리라!”라는 말이었답니다. “펙트 미히 벡!”이라는 독일어를 직역한 것입니다. 동사 ‘벡페겐’은 ‘쓸어 가다’, ‘쓸어 버리다’, ‘일소하다’, ‘소통하다’ 등의 뜻을 지닙니다. 특히 어근을 형성하고 있는 ‘페겐’은 흔히 청소할 때 사용되는 용어입니다.


게다가 ‘페게포이어’라는 단어는 일반적으로 ‘연옥’으로 번역됩니다. 빗자루로 쓸어 모은 쓰레기들을 불 속에 던져 넣어 태운다는 뜻입니다. 세상을 청소한다는 그런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살벌합니다. 자기 자신이 불에 타서 불꽃이 되는 것은 끔찍하기 짝이 없습니다.


신은 자신의 모습을 드러낼 때마다 ‘두려워하지 말라’라고 말했습니다.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는 존재라면, 굳이 그런 말을 해야 할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키르케고르도 ‘두려워하지 말라’라고 가르쳤습니다. 말은 같지만 의미가 다르고, 형식은 같지만 내용이 다릅니다.


신이 자기 자신은 두려워해야 할 대상이지만 그래도 두려워하지 말고 믿어 달라고 요구를 했던 것처럼, 철학자는 사람과 사람의 삶은 두려움에 휩싸여 있지만 그래도 두려워하지 말고 믿어 달라고 가르쳤습니다. 


사람과 사람의 삶을 신앙의 대상으로 삼을 수 있느냐가 관건입니다. 그것이야말로 인문학적이고 생철학적이며 실존철학적인 이념이 되는 것입니다.


신학은 세상을 폄하하고 하대하지만, 인문학적이고 생철학적이며 실존철학적인 이념은 신학적인 세계관을 품은 상태에서 세상과 세상의 원리를 옹호하고 변호하려는 태도로 일관한다는 데 진정한 의미가 있습니다. 


세상에는 버릴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이것도 물론 신의 편을 드는 신학의 입장에서 보면 한결같이 이교도적이고 무신론적인 이념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입장을 바꿔 놓고 보면, 다 납득이 갈 만한 이야기들입니다. 키르케고르보다 이백 년 전에 파스칼은 “신이여, 저를 버리지 마소서!”하는 말을 남겨 놓으며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누구의 유언이 더 옳은 소리일까요? 그런 질문이 흑백논리인 것입니다. 둘 다 나름대로 매력이 있는 소리입니다. 둘 다 품어 주면 될 일입니다. 둘 다 한없이 좋은 사람들입니다.


십자가에 매달려 죽음을 맞이한 예수조차 이런 말을 유언으로 남겨야 했습니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번역하면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마태복음 27:46) 신이 사람의 아들로서 세상에 왔다가, 사람으로서 남긴 마지막 말입니다. 버려짐의 의식 속에서 신은 죽음을 맞이했던 것입니다. 그런 완전한 고독 속에서 예수는 신으로서 다시 부활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죽음은 완전한 버려짐의 의식입니다.


‘버림 받는다’나 ‘버림 받지 않는다’나 둘 다 맞는 말입니다. 둘 다 이해할 수 있습니다. 


모차르트도 완전히 버려질 때까지 창조에 매달렸습니다. 그런 올곧은 정신이 스스로를 불멸이 되게 했습니다. 


키르케고르는 “나를 버리라!”고 말하며 인간의 편에 섰습니다. 세상 속에 남겠다는 의지의 표현입니다. 천국을 버리는 그런 용기가 그를 불멸이 되게 했습니다.


자유는 사람의 문제입니다. 신에게는 자유가 문제되지 않습니다. 신은 전지전능할 뿐입니다. 하지만 사람은 다릅니다. 늘 구속이 문제이고, 불편함이 일상입니다. 그래서 자유가 미덕이 되는 것입니다. 구속에서 해방되고 자유를 직면한 정신은 어쩔 수 없이 다시 불안을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철학자는 이때 이런 말로 위로해 줍니다. ‘두려워하지 말라’고.


살고 싶으면 ‘줄타기 광대처럼 날렵하고 숙련된 모습을 보여 주어야’ 하고, 또 ‘필요로 하는 것을 스스로 만들어 낼 줄도 알아야’ 합니다. 스스로 모든 것을 만들어 내는 주체가 되면 됩니다. 


불안도 도구처럼 다룰 줄 알면, 모든 것은 쉬워집니다. 그때는 불안에 떨지 않아도 됩니다. 불안도 애정으로 품으면 좋은 친구가 되어 무한한 자유를 알게 해 줄 것입니다.


작성 2023.07.24 09:31 수정 2023.07.24 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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