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 전 텔레비전의 개그 프로그램에 “테니스”를 외치며, 테니스를 하고 싶다는 소망의 표현으로 시청자들의 웃음을 자아내는 개그맨이 있었다.
이 프로그램을 읽으며 미국의 하버드 대학교 로버트 D.퍼트넘 교수의 저서 『나 홀로 볼링』이 떠올랐다. 이 책은 정치사회학 연구의 모범서로 핵심은 ‘사회적 자본’인데 엄청난 새로운 논증 자료를 제시해가며 미국 사회를 분석한 명저로 그동안 미국 학계ㆍ언론계에서 명저로 평가하여 데이비드 리스먼의 『고독한 군중』, 존 갤브레이스의 『풍요한 사회』, 토크빌의『미국의 민주주의』, C. 라이트 밀스의 『파워 엘리트』 같은 명저들과 같은 반열에 올려놓는 ‘21세기 최고의 신고전’이라는 호평을 받았다.
이 책의 해심 주장인 사회적 자본이란 개인들 사이의 연계, 그리고 이로부터 발생하는 사회적 네트워크, 호혜성과 신뢰의 규범을 가리키는 개념어로 사회적 유대에 중요한 가치를 부여하여 네트워크가 개인과 집단 사이에 가져다주는 생산성에 주목한다. 사회적 유대와 결속이 해체되어가는 미국 사회의 개인주의적 고립의 증가 현상을 '나 홀로 볼링족'들을 통해 미국 사회 공동체가 파괴되고, 미국인들의 '사회적 연계와 연대'의 단절 양상을 실증을 들어 다양하게 보여주고 있다.
'나 홀로 볼링'은 사람들이 함께 어울려 치는 볼링이 아니라 혼자서 볼링을 하는, 이른바 사회적 유대와 결속이 해체되고 개인주의적 고립이 나날이 증가하는 미국 사회의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미국인들이 공동체로부터 단절되어 가는 생활현상을 압축한 이 책은 21세기에 미국의 시민적 참여와 사회적 연계를 회복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책의 내용은 시민적 참여와 사회적 자본의 변화 경향에서 정치참여, 단체 활동, 종교적 참여, 직장에서의 연계, 일상생활에서의 사회적 연계, 이타심, 자원봉사, 자선심, 호혜성, 정직, 신뢰, 소규모 단체, 사회 운동, 인터넷 등으로 기술하였고, 사회적 참여의 쇠퇴 원인을 시간과 돈의 압박, 잦은 이사와 도시의 팽창, 기술과 대중 매체, 세대에서 세대로, 무엇이 시민 참여를 죽였는가로 설명하였다.
그리고 크리스틴 A. 고스의 사회적 자본의 기능에 대해 교육과 어린이의 발전, 안전하고 유익한 동네, 경제적 번영, 건강과 행복, 민주주의, 사회적 자본의 어두운 면을 설명했으며, 마지막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에서 역사의 교훈: 금박 시대와 진보의 시대와 사회적 자본가를 위한 실천 의제에 대해 논점을 제시한다.
요약하자면, 미국인들의 일그러진 자화상을 ‘나 홀로 볼링=공동체의 붕괴’로 보고, 행복한 미래의 자화상을 ‘더불어 함께 볼링=사회적 자본 확대’로 해석하여 “상부상조, 협조, 신뢰, 제도적 효율성 같은 사회적 자본의 긍정적 결과를 극대화하고, 파벌주의, 인종주의, 부패 같은 부정적 결과를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으로 사회적 자본을 “결속형과 연계형”로 구분하고, 연계형 사회적 자본을 중요성을 부각시키고 있다.
결속형 사회적 자본이란 “나와 같은 특성을 지닌 사람들, 예컨대 학연ㆍ혈연ㆍ지연 등으로 묶인 사람들 사이에서 형성되는 것으로 내부 지향적이며 네트워크의 배타적 정체성과 동질성을 강화하는 경향”을 말하며, 연계형 사회적 자본이란 “외부 지향적이며 다양한 사회적 계층을 망라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정체성과 호혜성의 네트워크를 만들어 내는데, 공동의 대의명분을 가진 운동에 참여한 경우가 그 전형적인 사례”를 들 수 있는 공적인 사회적 자본을 의미한다. 그 저서의 일부 내용 중 중요 구절을 들면 다음과 같다.
“미국인은 이제 선거에도 무관심하고 지역사회의 학교 운영회의나 공공 업무 관련 회의는 물론 교회에도 잘 참여하지 않게 되었으며 심지어 타인에 대한 믿음, 정직성과 상호 신뢰, 그리고 개인의 일상적인 사교까지 줄어들어 사회적 자본이 크게 감소하였다. 그 결과로 나타난 현상이 사회적 유대의 해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나 홀로 볼링’이다.” -p.699
“사회적 자본의 적자액은 학업 성적, 안전한 동네, 공평한 세금 납부, 민주주의 정부의 업무 수행 능력, 일상생활의 정직성, 심지어는 우리의 건강과 행복까지도 위협하고 있다.” -p.605
우리나라의 경우 미국과 다르게 상부상조의 전통이 남아있어 각종 결혼식과 상조에 개인별 사회적 자본을 지출하여 사회적인 유대를 강화하고 있어서 ‘나 홀로 볼링’ 현상은 미국사회에 비해 현저하게 적다고 본다. 오히려 우리사회는 “나 홀로 테니스”가 많다. 직장, 친구, 친지, 이웃 등 학연, 지연으로 얽힌 유대를 위해 개인이 지출하는 사회적 자본이 많고, 취미 클럽, 헬스, 친목 단체 등에 매월 지출하는 사회적 자본이 많은 걸로 알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지출 때문에 많은 가정에서 필요 이상의 지출을 감내해야 하는 어려움이 뒤따르기도 한다.
갈수록 우리사회도 노령인구의 증가, 출산율의 저하, 만혼풍조, 잦은 이혼율, 청년실업률의 증가, 독신가정의 증가, 다문화가정의 증가 등 사회적 자본이 축소되는 공동체의 붕괴 현상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갈수록 개그맨의 “나 홀로 테니스”를 외치며 허공에 테니스채를 휘저으며 외로운 몸짓은 개그가 아니라 우리의 자화상인지도 모른다. 함께 테니스 칠 사람이 없어 종로나 탑골 공원, 종묘 근처를 배회하거나 무작정 지하철을 타고 온양온천과 춘천을 왕복하는 노령인구, 그리고 노량진, 신림동에서 취업을 위해 공부하는 청년 실업층, 막노동 일자리를 찾아 헤매는 구로동, 17만의 불법체류자들, 서울역과 영등포의 노숙자들, 우리사회 곳곳에서 테니스를 치고 싶다고만 외치고 있고, 선거철만 되면 지방자치제의 장과 의원, 그리고 국회로 입성하기 위해 국민을 외면하고 ‘나 홀로 테니스’를 외치는 사람들이 우리 사회에도 늘어나고 있다.
학교와 문단에서 ‘나 홀로 테니스’를 치겠다고 외치는 관리자와 교사, 문학단체의 간부들의 개그를 어떻게 보고 해석할 것인가? 다 같이 생각해 볼 문제이다.
[김관식]
시인
노산문학상 수상
백교문학상 대상 수상
김우종문학상 수상
황조근정 훈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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