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중평
김씨에는 2 갈래의 족성(族姓)이 있다. 한 갈래는 소호금천(少昊金天)이고, 다른 한 갈래는 김일제(金日磾)이다. 소호금천씨는 동이족 갈래이고, 김일제는 흉노족 갈래이다. 동이족은 번조선과 가깝고, 흉노족은 진조선과 가깝다.
『維基百科』는 김일재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소개한다.
秺侯 金日磾, 本名 日磾,無姓,為匈奴 休屠王的太子。休屠王領地位於匈奴右翼,在今甘肅 武威一帶。休屠王的族屬不詳,一說可能是東胡部落屠何之後,一說出自義渠;還有一種說法認為休屠王是希臘-巴克特里亞王國 歐西德莫斯王朝王室的後裔,「日磾」則是希臘人名「季米特里奧斯」(Δημήτριος)的對音。
본명은 일제(日䃅), 성은 없고, 흉노 휴도왕(休屠王)의 태자다. 휴도왕의 영지(領地)는 흉노의 우익(右翼), 지금의 간쑤(감숙, 甘肅)성 우위(무위, 武威) 일대에 있었다. 휴도왕의 인종은 분명하지 않은데, 일설에 의하면, 동호(東胡) 부락에 살았던 휴도왕의 후예라고 한다. 일설에 의하면, 의거(義渠)에서 스스로 나왔다고 한다. 그리스(希臘)-박트리아 왕국(巴克特里亞王國) 에우시데모스(德莫斯) 왕조의 후예라는 설도 있다. 일제는 그리스 인명 디미트리오스(季米特里奧斯)의 대음(對音)이다.
(노중평의 주) 위 문장에서 관심을 끄는 대목은, 2가지이다. 첫째는 동호(東胡)라는 말이다. 동호는 단군조선 시대에 흉노계 조선족을 말한다. 다음엔 김일제가 희랍 인종이라는 설이다.
김씨의 순수 혈통 중엔 자주 서구인의 흰 피부와 풍채(風采)를 가진 사람들이 보여, 이 희랍 인종설은 근거가 있는 것으로 생각되는 설이다. 신라인들이 일본으로 건너가서 가부키에 출연하는 배우가 얼굴을 백색으로 화장하는 데, 그들이 백인임을 나타내기 위하여 하는 화장으로 생각된다.
东胡,分支自原始蒙古族的一支古代蒙古族,與原始突厥族、通古斯族、漢族有通婚關係,是一个古老的游牧为主的民族與部落國家,曾居住在今时的蒙古國東部、中華人民共和国内蒙古东部、东北西部。可能在商代初年便存在,在西周時首次出現文獻記載,到秦末漢初時被匈奴滅亡,存在了大约1000年。
둥후(东胡)는 원시 몽골족에서 분화해 나온 고대 몽골족으로, 원시 튀르크족(原始突厥族), 퉁구스족(通古斯族, 동이족), 한족(漢族)과 통혼 관계를 맺고 있으며, 고대 유목민 중심의 민족이자, 부족 국가로서, 오늘날 몽골 동부, 중화인민공화국 내 몽골 동부, 동북 서부에 거주했다. 상(商)나라 초기에 존재했을 가능성이 있으며, 서주(西周) 때 처음 문헌에 나와, 진나라 말기에서 한나라 초(秦末漢初)에 흉노에 의해 멸망하여, 약 1000년 동안 존재했다는 기록이 있다.
(노중평의 주), 동호는 진조선과 번조선이 BC 238년에 진(秦)에게 멸망하고, 막조선이 한(漢)에게 멸망한 이후에, 동호라는 이름으로 삼조선의 대역(代役)을 했던 조선의 후예라고 말할 수 있는 인종이다. 동호는 국가 명칭으로 부르기도 하고, 인종 명칭으로 부르기도 한다. 동호의 동(東)은 옛 조선의 동쪽이라는 뜻이며, 호(胡)는 이적(夷狄)이라는 말로, 북쪽으로 쫓겨간 조선이라는 말과 같은 말로 볼 수 있는 말이다. 동호가 후한을 침범하는 이야기가 『회남자』에 나오는데, 이때의 동호는 조선의 후예로 볼 수 있다.
东胡與漢族、濊貊、肃慎一同被称为古东北四大民族。在被併入匈奴帝國後,東胡後来分支出為鮮卑與烏桓。現代語言學者一般認為东胡语言是一種古代蒙古語,属蒙古语族 [2],今蒙古族可能為東胡後裔。
동호(東濊)와 한족(漢族), 맥(貊), 숙신(淑慎)과 함께 고대 동북 4대 인종으로 불렸다. 흉노제국에 병합된 후에 동호(東后来)는 선비와 오환(烏乌)으로 나누어 갈라져 나갔다. 현대 언어학자들은 일반적으로 둥후 언어가 몽골어족에 속하는 고대 몽골어라고 믿고 있으며, 오늘날 몽골족은 둥후의 후손일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노중평의 주) 동호는 진조선의 후예이고, 맥은 막조선의 후예이고, 숙신은 단국의 후예이고, 한은 존재하지 않는 허구의 인종이다. 선비 또한 진조선의 후예이다. 오환은 한국 시대에 풍이족을 구성한 조이족의 후예로 볼 수 있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로는, 중원에서 삼조선에서 시작된 역사가 진과 한을 거쳐 오는 동안에 국가가 모두 없어지고, 없어진 국가를 구성했던 인종만 남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기이한 것은 이들 인종이 모두 삼조선의 후예라는 점이다.
이들 인종 가운데에서 김씨 성은 어떻게 나오는가? 맨 먼저 나온 김씨는 소호금천에서 나오고, 다음에 나온 김씨는 김일제에서 나온 투후 김씨이다. 투후 김일제 김씨의 성을 보기로 한다.
元狩二年(前121年),漢朝派遣霍去病進攻隴西,大敗休屠王與昆邪王部眾。休屠王與昆邪王屢次被漢軍打敗,伊稚斜單于大怒,欲召見二王並將他們誅殺,二王遂決定降漢。漢武帝擔心是詐降,派霍去病率軍前去接應。後來休屠王反悔,昆邪王便率部襲殺休屠王,合併其部眾,聯同昆邪部共四萬餘人投降漢朝。
겐수이(元狩-한무제 4년 때의 년호) 2년(BC 121년, 막조선이 한무제에게 멸망하기 13년 전), 한나라(漢朝)가 곽거병(霍去病, BC140年—BC 117年)을 농서(隴西)로 보내 공격하였다. 휴도왕(休屠王)과 곤사왕(昆邪王)은 한군(漢軍)에게 차례로 격파당했다. 휴도왕과 곤사왕은 한군에게 여러 번 패배하여, 이치(伊稚斜單于,?— BC 114年)는 화가 나서 두 왕을 불러 죽이려 하자, 두 왕은 한나라에 항복 하기로 결정했다. 후한 무제(漢武帝)는 거짓 투항을 두려워하여 곽거병(霍去病)을 보내, 군대를 이끌고 대응하게 하였다. 후에 휴도왕이 번복하자, 곤사왕은 부대를 이끌고 휴도왕을 습격하여, 그 부락의 무리(部眾)를 합하여 곤사부(昆邪部)와 연합하여 총 4만여 명이 한나라(漢朝)에 투항하였다.
(노중평의 주) 진조선과 번조선이 BC 238년에 진(秦)의 시황(始皇)에게 멸망하고, 이어서 진조선과 번조선을 멸망시킨 진이 새로 일어난 한(漢)에게 BC 207年11月17日 멸망하였다. 한이 진에게서 천하통일의 과업을 물려받았다고 볼 수 있다. 진조선과 번조선이 진에게 멸망한 해로부터 31년 후였다. 이때 중원은 한의 차지였고, 한이 상대하여 멸망시켜야 할 상대는 막조선과 선비(鮮卑)와 동호(東胡)가 속해 있는 흉노가 남아 있었다. 선비와 동호는 진조선의 후예로 볼 수 있는 나라들이었다. 이런 나라를 지나 역사에서는 부중(部眾)이라 하였다. 그러나 나라는 조(朝)라 하였다.
日磾當時年僅14歲,伴隨昆邪王投降漢朝。因父親投降,漢朝沒有殺害日磾,他與母親和弟倫均淪為官奴,被送到黃門署飼養馬匹[5]。一次,漢武帝游宴看馬,嬪妃都隨侍左右。數十名養馬人牽著馬走過大殿之下,他們都偷偷窺視嬪妃們,唯獨日磾不敢。漢武帝見他身長八尺二寸、容貌威嚴,而且馬養得又肥壯,便對他留下了深刻印象,任命為馬監,後升侍中、駙馬都尉、光祿大夫。以休屠作金人祭天,賜姓金氏
일제(日磾)는 당시 14세의 나이로 곤사왕을 따라 한나라에 투항했다. 아버지가 투항하여 한나라가 일제를 죽이지 못하자, 어머니와 동생 윤균은 관노로 전락하여 황문서(黃門署)로 보내져 말을 사육하였다. 한 무제가 말을 보기 위해 연회를 열었는데, 비빈이 모두 수행하여 시중을 들었다. 수십 명의 말 사육사들이 말을 끌고 대궐 아래를 달려갔는데, 그들은 모두 몰래 비빈들을 흠쳐보며 두려워하였지만, 유독 일제만은 두려워하지 않았다. 한 무제는 그의 키가 8척 2촌이고, 용모가 위엄 있고, 말을 살찌운 것을 보고, 깊은 인상을 받아, 마감(馬監)에 임명하였다. 후에 시중(侍中), 부마도위(駙馬都尉), 광록대부(光祿大夫)로 승진하였다. 휴도(休屠)로 금인제천(金人祭天)을 만들고 김씨(金氏)의 성을 하사받았다.
祭天金人是《史記》和《漢書》中提到的匈奴人用來祭天的金色塑像。
根據《史記》及《漢書》的記載,元狩二年(前121年),漢朝派遣驃騎將軍霍去病出隴西,過焉耆山千餘里,斬殺匈奴八千餘人,並虜獲休屠王的祭天金人,將其作為戰利品帶回長安。
제천금인은 『사기(史記)』와 『한서(漢書』)에 나오는 흉노인들이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금빛 소상이다. 『사기』와 『한서』의 기록에 따르면, 원수 2년(BC 121년)에 한나라에서 표기장군 곽거병(霍去病)를 보내, 농서(隴西)를 나와 건기산(焉耆山) 천여 리를 건너 흉노 8천여 명을 참살하고 휴도왕의 제천금인을 노획하여 전리품으로 장안으로 가져갔다.
(노중평의 주) 제천금인은 몽골인이 하늘에 제사 지낼 때 신주(神主)로 모시는 신상이다. 이 유습은 조선의 조상 숭배 사상이 몽골에 정착한 것으로 생각된다. 곽거병이 흉노의 땅에 쳐들어가 휴도왕의 부중 8천여 명을 참살하고 노획하여 장안으로 가져온 것이다. 김일제는 한무재의 신임을 받아 한의 제2인자가 된 후에는 휴도왕을 제사 지내기 위하여 휴도왕의 상으로 금인을 만들었다. 김씨 성은 이 금인에서 나온 것이다.
그러나 휴도왕보다 먼저 금인이 된 분이 있었다. 그가 소호금천(少昊金天)이다. 소호는 제곡고신(帝嚳高辛)을 말한다. 제곡고신의 금천에는 오행(五行)으로 황(黃) 다음에 금(金)이라는 뜻이 있다. 황제 문중의 서열은 황제(黃帝) 헌원(軒轅) 다음에는 소호(少昊) 금천(金天)이라는 뜻이다. 이렇게 보면 김일제가 소호금천 제곡고신을 계승했다고 볼 수 있다. 제곡고신의 모계족성(母系族姓)은 기성(己姓)이다. 청동기 유물에서 밝혀졌다. 기성의 시조는 번조선의 시조 서여(胥餘, 부여(夫餘)의 사위라는 뜻)로 호칭되는 곤오(昆吾) 땅의 기풍(己豊)이다. 기풍은 단국의 홍제 때 사성(賜姓)하여 소성(蘇姓)이 된 소풍(蘇豊)의 후예가 된다고 볼 수 있다. 기(己)에는 황(黃)을 뜻하는 토(土)의 의미가 있다. 기풍은 청동기 시대에 청동기를 발명한 사람이다. 옛날 번조선의 땅에서 기자(己字) 명문(銘文) 청동기들이 많이 발굴되었다.
이렇게 보면, 김씨의 조상은 기성(己姓)이 된다고 볼 수 있다. 춘추 시대에 산동반도는 단군조선이 창설될 때 기풍(己豊)이 기성(己姓)을 소성(蘇姓)으로 바꾸고 조선 건국의 주류 세력으로 떠올랐다. 이들 중에는 기성에서 금성(金姓)이 된 소호금천의 후예나 김일제의 후예가 섞여 있었을 것을 것이다. 조선이 진에게 멸망하자 이들 김성과 소성과 모성(牟姓)이 소래(蘇萊)로 쏟아져 들어와 우체모탁국(優體牟涿國)을 세웠을 것으로 생각된다.
우체모탁국의 체(體)에는 기풍의 풍(豊)이 들어 있다. 체(體)는 그가 우체모탁국의 시조가 된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