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아의 산티아고 순례기] 높아지는 공황상태

이수아

남아 있는 시간을 고려할 때, 공황상태가 시작되었다. 표면적으로는 ‘시간제 순레자’ 무리들이 모든 숙소의 잠자리를 다 점거해버려 목적지에 도달하는 것에 대한 공황상태였다. 그러나 내면적으로는 나의 순례가 끝나가고 있는데 대한 잠재적 공황상태였다. 그리고 여기에 대한 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어제저녁 우리가 포르토마린에 도착하니 숙소에는 방이 하나도 남아있지 않았다. 시내를 한참 전전하다가 겨우 호텔방을 하나 구했는데 샤워도 공동으로 사용해야 했다. 낮이 끝날 무렵 나는 무릎이 아파서 아주 천천히 걸었었다. 마지막 다리를 건너고 언덕을 넘어 포르토마린에 도착하는 것은 고역이었다. 게다가 숙소를 찾는다고 오래 헤매는 것은 참기 힘들었다. 

 

오늘은 아침부터 화장실 때문에 엉망으로 출발했다. 사용 가능한 화장실이 역겨운 모습으로 고장이 나 있었다. 참 기발한 생각이었지만 해결책은 부득이 욕실에서 실례를 하는 것이었다. 다른 순례자들도 그렇게 했다. 이런 것이 정상은 아니었다. 하지만 대책이 하나도 없었다. 

 

순례여행의 일반적 느낌은 새로운 사람들의 유입으로 인하여 완전히 달라져버렸다. 모든 사람들이 좀 더 일찍 출발했다. 우리가 한 시간 빨리 일어나야 하는데 대해 제이드의 생각은 확고했다. 심지어 7시 30분에 출발하려고 했는데 이미 호텔 로비는 아일랜드에서 온 학생들로 북새통이었다. 

 

길 위에서는 숨 쉴 틈도 없고 사람들을 추월해야 하는 특단의 조치가 필요했다. 마치 전쟁통과 같은 느낌이 시작되었다. 나는 ‘반지의 제왕’에서 오르크를 죽이는 레골라스가 된 기분이었다. 우리는 아주 빨리 ‘시간제 순례자’들을 추월했다. 한 시간 후에 제일 첫 번째 카페에 도착하였을 때 우리는 이미 94명이나 추월했다. 

 

첫 번째 카페에는 학생들이 길게 늘어서서 여권에 스탬프를 찍는다고 탁자를 에워싸고 있었다. 화장실에 뱀처럼 늘어선 긴 줄은 말할 필요도 없었다. 한 아이가 친구에게 전화하면서 흐느껴 울었다. 그 아이는 걷기 때문에 생기 육체적 고통을 느끼고 있었다. 우리의 친구 라울이 진통제를 그 아이에게 주었다.

 

이런 모든 것이 공황상태의 분위기로 만들었고, 우리는 순례여행에서 처음으로 미리 숙소를 예약하기로 했다. 우리는 카페에서 가이드북과 전화에 매달려 귀한 시간을 허비했다. 그러고 나서 순례여행의 마지막 3일 밤을 묵을 숙소 예약을 했다.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렇게 공황상태에 대한 느낌은 치솟고 있었지만, 한편으로 오늘 그레이엄 바 씨의 ‘보석 통로’에서 찾아낼 그 무엇에 대한 기대로 흥분되고 즐거웠다. 하나가 아니고 둘이다. 

 

며칠 전 그레이엄 바 씨 가족은 나와 미구엘을 위해 메시지를 남겨두었다고 말했다. 미구엘은 팔라스 델 리오에서 4km 정도 떨어진 산 훌리안에 있는 오브리가도이로라는 숙소의 주인이다. 결국 우리가 앞으로 가야 할 곳의 숙소를 예약하기로 결정했을 때 미구엘은 내가 전화한 최초의 사람이다. 가까스로 미구엘 때문에 오늘 저녁은 4개 침상을 예약했다. 그리고 아마 나의 메시지도 찾을 것이다. 매우 기뻤다.

 

그날의 두 번째 수수께끼는 사진 한 장이었다. 그것은 그레이엄 바 씨의 장남 맥스의 사진이다. 그는 길에 분필로 크게 쓴 내 이름 옆에서 웃고 있는 사람 바로 옆에 서 있다. 그 사진을 카사몰라라고 하는 새로 단장한 카페에서 약 2km 정도 지나면 찾아보라고 내게 말했다. 거기는 아마 늦은 오후쯤 지나갈 것으로 보였다. 

 

그날의 또 다른 즐거움은 예로부터 내려오는 전통인 순례자들에게 음식과 숙소를 무료로 제공하는 곳을 지나가는 것이었다. 우리에게 숙소는 필요 없을지라도 젊은 자원봉사자가 갓 뽑아낸 커피를 마시기 위해 잠시 멈춰야 했다. 거기서 또 여권에 스탬프 하나를 받았다. 우리는 이제 스탬프를 많이 모아 여권이 아름답게 꾸며졌다.  

 

오후에 카사몰라에 도착하여 목마름을 해소하는 맥주를 마시기 위해 멈췄다. 다시 사진 수수께끼로 돌아가면, 우리 모두는 분필로 표시한 자국을 찾으려 시도했지만, 그것이 지난 4일 동안에 지워졌거나 사라졌을 가능성이 있었다. 수 킬로미터를 더 가서 나는 그것이 지워졌음을 인정해야 했다. 

 

산 후리안은 정말 그림 같은 도시다. 그리고 미구엘은 정말 명량한 주인이다. 그의 숙소에 딸린 선술집에는 전 세계로부터 온 수백 개의 맥주 빈 병과 캔으로 진열되어 있었다. 하르트무트는 동독산 브랜드와 호주의 조그만 지방 양조장 브랜드를 보고 기뻐했다. 나는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미국 그리고 나의 조국인 한국산의 여러 브랜드들을 알아보면서 즐거워했다.

 

우리는 맥주를 들면서 미구엘에게 물었다. 혹시 내게 남긴 메시지가 없는지를 물었는데 그가 무슨 말인지 잘 못 알아듣기에 나는 순간 최악의 경우를 생각하여 불안했다. 그러나 내가 그레이엄 바 씨 이야기를 하자 그는 크게 웃으면서 지프로 잠근 비닐봉지 하나를 건네주었다. 그 속에 메시지가 있었다.

 

그것은 식대 영수증이었다. 음식 이름이 ‘고든’이라고 씌어 있고 동그라미가 처져 있었다. 그레이엄 바 씨 가족 중 제일 젊은 루카스가 메뉴판에 이렇게 썼고 그것을 먹었었다. 그 영수증에는 그레이엄 바 씨 가족 전체가 손으로 쓴 메시지가 있었다. 그 메시지들이 나를 기분 좋고 훈훈하게 해주었다.

 

그 바에는 다른 남자 한 명이 앉아 있었다. 그는 시카고 외곽에 사는데 딸의 수학여행에 동행한다고 했다. 그날 저녁 그는 딸을 잃어버렸다고 했다. 딸은 그보다 뒤에 있는 마을인 팔라스 델 레이 어디쯤 친구들과 함께 있었다. 그래도 아주 태연한 그의 모습이 나를 편안하게 했다. 

 

아늑한 화장실에 앉아 피로를 풀 수 있는 이곳 숙소는 매우 즐거웠다. 바 안에 있는 구내식당에서 저녁 식사가 있었다. 순례자의 메뉴는 소박하고 맛이 좋았다. 

 

나는 그레이엄 바 씨 가족으로부터 그들이 산티아고에 도착했다는 문자를 받았다. 우리는 혹시 거기서 만날 수 있을지에 대한 많은 문자를 주고받았다. 나는 다음 단계의 힌트를 받았다. 그 힌트는 ‘수아와 고든’이라고 쓰여 있는 루카스의 사진이다. 그 사진이 붙어 있는 담벼락 아래 돌의자에 그가 앉아 있는 것이다. 그는 양팔을 벌려 우리들 이름을 함께 감싸며 그 가운데 앉아 있을 것이다.  

 

나는 일어나 저녁 테이블에서 나와서 홀로 울 수 있는 개인적인 공간을 찾았다. 방 뒤의 안락의자가 있는 아늑한 곳을 찾아 실컷 울었다. 문제는 내가 울음을 멈출 수 없다는 것이었다. 

 

한두 시간이 지나자 제이드와 남자 친구들이 와서 계속 눈물을 흘리고 있는 나를 달랬다. 어쩌면 여기서 전달하기 어려운 복잡하고 다양한 감정들에게 내가 압도당하고 있는지 모른다. 그것은 아마도 내 순례여행이 거의 끝나감에 따라 이렇게 멋진 친구들을 더 이상 볼 수 없을 것이란 생각 때문일 수도 있다.

 

나는 마음속으로 그레이엄 바 씨 가족은 오늘 산티아고에 도착하여 여행을 마무리했을 것으로 확신했다. 그래도 그들이 너무 보고 싶었고 깊은 감동을 받았다.

 

그리고 완벽하게 끊임없이 이어지는 불가사의한 힘으로 편재하는, 아직도 부인할 수 없는 존재가 내 사랑 ‘고든’이라는 사실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를 실감하면서 그가 그리워 울었다. 나는 완전히 기력이 다하고 감정에 복받쳐 눈이 벌겋게 될 때까지 울다가 다시 벙크룸으로 가서 친구들과 만나 밤새 통곡하고 말았다.

 


[이수아]

줄리아드음대 졸업

스코틀랜드 국립교향악단 단원

스코키시체임버오케스트라 수석 첼리스트

스코틀랜드청소년오케스트라 상임고문

Mr. Mcfalls Cahmber 창립맴버

이메일 :  sua@sualee.com

 

작성 2023.08.04 10:56 수정 2023.08.04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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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